1. 버티기만 하는 삶은 이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침 8시 00분.
버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몸을 버스 속으로 구겨 넣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으로 구겨 넣고 있습니다.
눈은 완전히 떠지지 않았고, 다리는 저 혼자 알아서 버텨냈습니다.
출근길은 항상 그랬습니다. 내가 서있기보다, 사람들의 흐름이 나를 떠밀어 가는 느낌에 더 가까웠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버스에서 졸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나는 같은 생각을 되뇌고 있었습니다.
“오늘까지만 버티자. 오늘만 어떻게든 지나가 보자.”
이 문장을 나는
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금요일에도 반복했습니다.
주말이 되면 “다음 주에는 좀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월요일 아침 버스 손잡이를 잡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아진 건 하나도 없다는 걸요.
회사 건물 앞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뛰다시피 건너는 틈에 나도 따라 걸었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그날 아침에도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설득하며, 또 하루를 버티러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버티기만 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때의 나는, 내 삶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거겠지”, “직장인은 다 힘들지”라고 여겼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기의 나는 살고 있다기보다 버티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버티기만 하는 삶은 이런 모습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 쉬어도 회복이 되지 않는다.
주말 동안 잠을 많이 잤는데도 월요일 아침이면 온몸이 납덩이처럼 무겁습니다.
휴가를 다녀와도, 회사 앞에 서면 다시 숨이 가빠집니다.
•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고문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뭐가 되고 싶어요?”
이런 질문을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꿈을 묻는 질문은 설렘이 아니라 압박이었습니다.
• “나는 그래도 나은 편이야”라며 스스로를 무시한다.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을 떠올리며,
“나는 우울증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겠지”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립니다.
그래서 더 늦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업무 능력 문제로만 해석한다.
실수가 잦아지고, 집중이 안 되고, 눈물이 자주 나는데도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 그럼에도 출근은 한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회사에 나오고, 업무를 하고, 사람들과 말을 섞고 있으니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나는 이런 상태를 가리켜 ‘문제’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가 좀 약해서 그렇겠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압니다.
그때의 나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는 것을요.
그 시절, 나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갔다
그때 나는 공기업 정규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인 직장이었고, 주변에서는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처리해야 할 민원과 문서가 쏟아졌습니다.
업무함 숫자는 늘 빨갛게 떠 있었고, 전화를 받으면 목소리를 최대한 밝게 만들었습니다.
“네, 담당자 ㅇㅇㅇ입니다.”
입 밖으로 나온 인사는 친절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손에 힘이 풀리곤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웃어야 할 타이밍에 맞춰 웃고, 고개를 끄덕일 자리에 맞춰 끄덕였습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기억나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퇴근 시간 즈음, 창밖이 어두워질 무렵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어떻게든 넘겼다.”
이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떠오르는 유일한 문장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누워 휴대폰을 붙들고 있다 보면
머리 한쪽에서 이런 생각이 뱅뱅 돌았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그런데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잖아.
그러니까 그냥… 내일도 나가야지.”
그렇게 나는 하루 단위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미 구조 신호였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건 너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미 위험 신호였어.”
버티기만 하던 시절의 나를 객관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경고등이 이미 켜져 있었습니다.
1.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살고 싶다’가 아니라 ‘죽지는 말자’가 먼저 떠올랐다.
2. 좋아하던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드라마도, 음악도, 친구와의 약속도 모두 피곤한 일로 느껴졌습니다.
3. 작은 일에도 과하게 죄책감을 느꼈다.
업무 하나를 실수하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바로 뛰어갔습니다.
4. 감정의 폭이 사라지거나, 반대로 사소한 일에도 쉽게 무너졌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다가도,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5.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과 “그래도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어느 쪽을 택해도 후회할 것 같아서,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때 나는 이 모든 신호를
“다들 그 정도는 겪는 스트레스겠지”라고 평범화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몸이 먼저 멈추었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고, 눈물이 이유 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제야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내가 지금 버티는 수준을 넘어섰구나.”
‘버티기’와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많은 청년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죽을 용기는 없어서, 그냥 버티고 있어요.”
“회사 관두고 싶지만, 딱히 어디 갈 데도 없고요.”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아무 힘이 없어요.”
이 문장들 속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스스로의 고통을 축소시키고,
• 자신의 가능성은 과소평가하며,
• 현실은 과대평가합니다.
그래서 “도망도 못 가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떠날 용기도, 버릴 용기도, 새로 시작할 용기도 나지 않는 상태.
그 상태를 나는 ‘버티기만 하는 삶’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정말입니다.
여기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견뎌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버티기만 하는 삶이 영원히 이어져도 괜찮은지는
한 번쯤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의 ‘버티기’는 어디까지 왔나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멍한 눈으로 흔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회사를 그만둘 용기도,
당장 일을 멈출 여유도 없어서
그냥 오늘도 “일단 버텨보자”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질문 하나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던져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나요, 아니면 ‘버티고’ 있나요?”
둘 사이의 경계는 생각보다 분명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몸과 마음이 먼저 보내는 ‘버티기의 한계 신호’들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질문
이 글을 다 읽으신 뒤,
조용한 곳에 앉아 아래 질문에 짧게라도 답을 적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버티기’는 무엇이었나요?
한 문장이어도 괜찮습니다.
종이에 적어도 좋고, 휴대폰 메모장에 써도 좋습니다.
당신이 지금 어떤 자리를 버티고 있는지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버티기만 하던 삶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