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수용미학
오늘 여러분께 소개할 사람은 바로 ‘움베르토 에코’다. 아마 영화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소설 <장미의 이름>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영화 <다빈치 코드>시리즈의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 교수의 실제 모델이었으니 말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교수로 철학, 역사학, 미학, 문학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유를 넘나들며 위대한 자취를 남겨왔던 그는 기호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다. 제1대 국제 기호학 회의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쓴 <일반기호학>, <기호학과 언어철학> 등은 현대기호학을 이해하는데 결코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를 이야기하기 전에 짚고 넘어갈 사람이 있다. 바로 롤랑 바르트다. 롤랑 바르트는 1960대 중반 자신의 글을 통해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다. 사실 이전까지의 문학 비평이라 함은 작가가 텍스트 속에 남긴 의미를 해석하는데 주로 집중되어 있었다. 텍스트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선 우선 작가의 전반적인 생애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롤랑바르트는 이러한 경향을 거부했다. 그는 텍스트가 이미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저자와 분리되며, 그런 이유로 문학을 이해할 때는 저자를 중심에 두기보다는 텍스트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거세된 여장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발자크의 소설 <사라진느>에 대한 비평인 <S/Z>에서 잘 드러난다. 우선 잠비넬라는 거세된 남자로 성별이 분간되지 않는다(성性이 비어 있다). 사라진느는 자신이 사랑했던 잠비넬라의 비밀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비어있는 존재다. 한편 화자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대상인 로슈피드 부인에게 사라진느의 이야기는 자신이 원했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멀어진다(비어진다).
따라서 화자는 그녀의 관심을 끌려 했던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비어진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랑티가문은 잠비넬라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가문을 번성시켜 왔지만 거세된 성은 사실 가문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랑티가문 역시 비어 있는 가문이다.
바르트는 소설의 이러한 요소들에 주목하여 텍스트 자체가 텅 비어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그는 언어는 그저 사용자의 의도나 사유, 전략을 보여줄 뿐 절대적 진리를 잡아둘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언어는 사라진느 텍스트가 그렇듯 본질적으로 텅 비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텅 비어버린 텍스트에 의미를 채워 넣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그건 바로 독자의 몫이다.
롤랑 바르트의 이러한 관점은 이후 움베르토 에코의 ‘해석기호학’으로 이어진다. 에코의 해석기호학은 텍스트란 원래 불완전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불완전함을 보완해야만 텍스트는 하나의 일관적이고 의미 있는 실체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때 독자의 역할이 드러난다. 독자의 읽기 행위는 저자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가 말하지 않는 것을 이끌어 내고, 빈 공간을 채우고, 텍스트 안에 있는 것을, 그 텍스트가 유래하고 또한 합류하는 상호텍스트성의 조직과 연결시키는 작업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해석이란 불완전한 텍스트에서 완전한 것을 이끌어 내는 활동이다. 이를 위해 독자는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해석이 비로소 텍스트를 완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에코의 기호학의 핵심이다.
롤랑바르트와 움베르토 에코의 이러한 생각들을 우리는 ‘수용미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미학이란 무엇인가. 그건 미에 대한 속성과 가치에 대한 평가다. 프랑스의 철학자 칸트는 미학의 절대적인 측면을 주장했다. 그는 미학을 아름다움과 추함을 인식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정의하며, 아름다움의 기준을 판단이나 주관성으로부터 분리하였다.
반면에 수용미학은 아름다움은 절대적으로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 안에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아름다움의 권력을 작가나 작품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로 되돌려준 것이다. 수용미학에 의하면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회문화적인 특수성과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과도 긴밀하게 이어진다. 포스트 포더니즘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만약 아름다움에 절대적 기준이 존재한다면 다양성은 살아남지 못한다. 따라서 절대적 기준보단 상대적 기준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마케팅의 패러다임은 크게 세 단계에 걸쳐서 변해왔다. 이제는 마케팅 3.0의 시대다. 과거의 마케팅은 소비자를 그저 물건을 팔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인식했다. 기업의 목표 역시 제품의 판매를 통한 이익 증대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소비자는 이성과 감성을 지닌 능동적인 존재로 자신의 욕구에 대해 충분히 지각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은 소비자를 하나의 묶음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특징적인 개인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렇듯 현대에 이를수록 소비자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수용미학의 중요성도 함께 커졌다. 공급자가 맹목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시대는 끝이 났다. 수용자는 이제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그 결과물은 기업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수용미학에서 얻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