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분석: 소녀시대 뮤직비디오
다음은 소녀시대의 브랜드 포지셔닝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기호사각형 도식이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1기부터 2기까지의 소녀시대(다시 만난 세계~Oh)는 뮤직비디오 속에서 남성적 주체를 설정하고 그녀들에겐 인격체, 혹은 조력자의 지위를 부여하여 영상을 감상하는 대중으로 하여금 권력을 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했다. 덕분에 영상 속의 소녀시대 멤버들은 대중의 욕망이 안심하고 투영될 수 있는, 일종의 눈요깃거리로서 대상화 되었다. 그녀들의 신화는 아시아 특유의 가부장적, 혹은 유교적 문화에 기반을 둔 '현대판 현모양처'다. 그녀들은 단지 섹시하거나 귀여운 안무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몸매나 외모를 어필함으로써 그들을 만족시키는 순종적인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3기에 오면 영상 속의 이러한 모습들은 완전히 뒤바뀐다. 이제까지 주변인의 위치에 머무르며 대상화 되던 소녀시대 멤버들은 주체가 된다. 그녀들은 탈인간의 경지에서 자신들을 둘러싼 우매한 대중들에게 소리친다(The Boys). 한편 지금까지 영상 속에서 주체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남성들은 밀려나 계몽의 대상, 혹은 대화의 소재거리로 치부되는 것도 모자라 그녀들의 만족을 위해 개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탈아시아적인 여성 신화다. 이 신화에서 현모양처는 없다. 여성은 더 이상 아름다운 몸매나 외모를 통해 즐거움을 제공하는 눈요깃거리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을 하고 행동할 자유를 가지며 마침내 목적한 바를 이루어내는 운명의 개척자인 것이다. 앞선 글에서 내가 모든 마케팅의 목표는 브랜드 신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썼던 걸 기억하는가. 말하자면 이 신화는 아시아를 넘어서 서구권을 중심으로 글로벌 전략을 구사하려는 소녀시대에게 안성맞춤의 새로운 브랜드 신화였던 것이다.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하나의 소비 시장에서 다른 소비자 시장으로 가면서 광고는 서로 다른 소비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기 마련이다.' 만약 소녀시대가 '현대판 현모양처'라는 아시아적 여성 신화를 그대로 들고서 북미와 유럽 지역에 진출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랬더라면 그녀들은 싸구려 클럽을 전전하며 자신들의 음반을 일일이 홍보해야하는 어처구니없는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21세기에 저토록 젊은 여성들을, 그것도 단체로 남성들의 눈요깃거리로 전락시켰다는 대중문화평론가들의 조롱은 덤이다. 이미 19세기부터 여성참정권 운동을 시작으로 페미니즘 담론을 완성해나간 서구문화권에게 아시아의 순종적인 여성관은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구시대의 유물과 같다. 소녀시대와 음반회사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인식하고 이제까지 유지해온 아시아적 순종적인 여성 모델을 버렸다. 대신 21세기 맞춤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관을 자신들의 이미지로 채택하였다.
그 결과, 소녀시대는 미국의 3대 지상파 방송의 토크쇼와 인터뷰 등에 출연했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긍정적인 칼럼을 실으며 소녀시대에게 관심을 표했다. 뿐만 아니라 빌보드 월드앨범 차트에 <I Got A Boy>가 1위로 꼽히기도 했고, 세계 100대 걸그룹 중 2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그녀들의 페미니즘적 신화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 지역의 여성들을 자극하여 그녀들의 팬덤 속 여성비율을 눈에 띠게 증가시켰다. 그 결과 소녀시대는 핵심 타겟을 남성 대중으로 삼았던 여타 걸그룹과 달리 양성을 모두 아우르면서 보다 광범위한 대중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소녀시대가 걸그룹들 사이에서 장기간 존재감을 과시하며 전성기를 유지한 주요인이다. 물론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말처럼 긴 침묵 끝에 돌아온 소녀시대의 브랜딩 전략에서는 아쉽게도 과거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면모를 더 이상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들이 한국음반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소녀시대의 브랜드 포지셔닝 이동이 그녀들이 해외진출에서 일구어 낸 모든 성과들을 설명해주진 못한다. 다만 분명한 건 브랜드 담화 속에서 기호학의 역할이 있다는 사실이다. 기호학은 복잡한 현상 속 내포되어 있는 문화코드를 규명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뮤직비디오의 모든 요소들은 의미적 장치로써 기능하여 도출된 문화코드에 걸 맞는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소녀시대는 동서양의 대중 모두에게 매력적인 걸그룹이 되었다. 문화적 편견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소녀들이 평정할 시대가 왔다’라는 주요 브랜드 포지셔닝을 소비자들의 하위문화와 세계시장으로까지 확장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문화코드를 기반으로 의미해석을 시도한다. 불과 바로 앞에서 나는 '하나의 소비 시장에서 다른 소비자 시장으로 가면서 광고는 서로 다른 소비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기 마련이다'라고 썼었다. 그러니까 문화코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마케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