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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Apr 26. 2019

15화_바르트의 소녀시대 part.4

#콘텐츠 분석: 소녀시대 뮤직비디오

하지만 3기가 오면 소녀시대의 브랜드 포지셔닝은 말 그대로 대변혁을 맞이한다. 이 시기 대표적인 히트곡에는 <The Boys>, <I Got A Boy>, <Mr.Mr.> 등이 있다. 그녀들은 이제 더 이상 어린 애인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성적인 매력을 특별히 강조하지도 않는다. 소위 말하는 쎈 언니, 나아가 한 사람의 ‘멘토’로 거듭나기를 원한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성. 그것이 바로 3기 소녀시대의 브랜드 이미지다.


각각의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헤어스타일부터다. 갈색이나 금발 등 비교적 색깔이 한정되어 있던 1~2기와 달리 3기의 소녀시대 멤버들의 머리색깔은 분홍색이나 빨강, 파랑 등 파격적으로 변한다. 뿐만 아니라 느슨하게나마 헤어스타일에서 통일성을 찾아볼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3기에서는 공통점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각자가 자기에게 걸 맞는 헤어스타일을 자유롭게 추구할 뿐이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스럽기보단 각자의 개성들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보는 것이 더 옳다. 화장 역시 비슷하다. 한편 안무도 많이 바뀌었다. 하체를 주로 강조하던 이전과 달리 상체를 많이 활용하고, 남성아이돌을 연상시키는 듯한 화려한 군무도 선보인다. 무대의상도 이러한 변화들과 일맥상통다. <The Boys>의 소녀시대 멤버들은 원피스나 드레스 형태의 의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무늬가 갑옷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심지어 어떤 멤버들은 셔츠와 넥타이, 바지를 입고 있다. <I Got A Boy>에선 이제까지 고수해오던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히피에 가까운, 자유로운 의상들을 추구한다. <Mr.Mr.>의 한 장면에선 소녀시대 멤버들 전체가 정장차림이다. 이러한 영상들의 흐름 속에서 대중은 그녀들의 과거 모습(여성성)을 찾아보기가 좀처럼 어렵다. 오히려 ‘남성적’이란 말이 그녀들에게 더 어울린다.

그렇다면 진짜 남성들은 각각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어떻게 등장하고 있을까. <The Boys> 속의 남성들은 계몽해야할 대상이다. 반면 소녀시대 멤버들은 그들을 깨워주는 마치 신과 같은 존재다(아닌 게 아니라 <The Boys>의 실제 가사 속에는 “세상 남자들이여 난, No.1 지혜를 주는 Athena.”라는 문장이 있다). 그녀들이 춤을 추는 공간은 자연성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인공적인, 그렇지만 신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쉽게 말해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병든 세상에서 새로운 대안적 신화로 그녀들이 강림한다는 것이다. <I Got A Boy>는 어떠한가. 이 뮤직비디오는 언뜻 보면 사랑에 빠진 여성의 이야기 같지만 정확히는 사랑에 빠진 여성과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다.굳이 말하자면 ‘언니들의 수다’쯤 되는 것이다. 실제로<I Got A Boy>의 가사를 읽어보면 마치 뮤지컬을 연상시키듯 여러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그에 반해 남성들은 그녀들의 대화소재거리에 불과하다(심지어 얼굴도 나오질 않는다).


<Mr.Mr.>에 이르면 이러한 경향은 극점을 이룬다. 조각조각 흩어진 영상 속의 스토리 파편들을 차근차근 재조합해보도록 하자. 파티에서 우연히 한 여성을 만난 남자는 그녀를 따라 이름 모를 공간으로 가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정신을 잃고 만다. 한편 여성은 남성이 정신을 잃은 틈을 타 어떤 수상한 수술을 진행한다. 영상 속 수술실에서 펼쳐지는 흐릿한 장면들은 남성이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간신히 포착한 기억의 조각들로 보인다. 이후 남성은 정신을 차려보지만, 남성을 데리고 온 여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아마도 이 뮤직비디오 속 스토리 원형은 작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아닐까 싶다. 노래 속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나를 빛내줄 선택받은 자! 그게 바로 너 Mr. Mr.” 이러한 뮤직비디오 속의 요소들을 조합해보건대 영상 속의 스토리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한 여성이 자신에게 걸 맞는 남성을 얻기 위해 한 남자를 직접 개조해버린 것이다. 이건 이전의 어떤 소녀시대 뮤직비디오에서도, 심지어 다른 걸그룹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적극성이다.

지금까지 소녀시대의 브랜딩 전략은 ‘현대판 현모양처’였다.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동시에 남성에겐 순종적이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이건 아시아 특유의 가부장적 문화관에 기반을 둔 브랜딩 전략이다. 하지만 3기의 소녀시대는 남성들의 부속물로 전락하기를 거부한다.이제 그녀들은 스스로 주체의 지위에 올라 오히려 남성들을 자신의 부속물로 삼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들을 변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건2011년부터 시작한 소녀시대의 해외진출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2011년 이전까지 소녀시대의 주 활동무대는 국내를 비롯한 일본,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한정 되어 있었다. 하지만 2011년에 전직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였던 ‘테디 라일리’와의 협업(<The Boys>)을 시작으로 그녀들은 본격적인 북미 지역과 유럽지역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제껏 고수해온 소녀시대의 브랜드 신화는 일명 ‘현대판 현모양처’다. 이 신화는 아시아권 특유의 유교문화와 가부장적 문화코드에 기반을 둔다. 한편 유럽지역에서는 이미 19세기부터 여성참정권 운동이 시작되었다. 북미 지역은 1919년에 여성의 선거권을 헌법에 명시하였다. 소위 말하는 ‘페미니즘’이란 용어가 등장한 것도 18세기말 영국에서였다. 만약 이런 곳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순종을 강조하고, 여성을 대상화하여 마치 대중의 전유물로 여기려는 브랜드 신화를 들고 갔다간 대중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힐게 뻔했다. <소원을 말해봐> 같은 곡은 싸구려 클럽의 스트립쇼에서나 어울렸다. 때문에 소녀시대로서는 새로운 브랜드 신화를 짜지 않으면 안 됐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 지역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문화코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The Boys>와 <I Got A Boy>, <Mr.Mr.>다. 그것은 이제껏 아시아 지역의 걸그룹에서는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성이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에 빗대어 설명하고자 한다. 과거 미국에 불었던 서부개척시대에 비유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그녀들의 새로운 신화는 ‘신개척자’로 부르는 것이 옮음직하다.


하지만 이후 ‘소녀시대’는 긴 침묵에 빠졌다. 그동안 그녀들은 멤버의 탈퇴로 인한 구설수에 오르기도, 잠깐의 열애설로 반짝 관심을 받기도 했다. 활동은 주로 유닛이나 솔로의 형태로 이뤄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티서’와 ‘태연’의 솔로앨범 등이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던 멤버들도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마침내 그녀들은 ‘소녀시대’라는 이름으로 <Lion Heart>라는 음반을 발매한다. 신곡 <Lion Heart>의 뮤직비디오는 직전의 <Mr.Mr.>과는 전혀 다르다. 일단 다채롭던 멤버들의 머리색은 갈색이나 금발 등으로 좁아졌다. 그녀들의 의상은 마를린 먼로가 <7년만의 외출>에서 입었던 하얀 드레스나 1920년대 초반 미국의 부유층 여성들이나 입었을 법한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컨셉들은 자연스레 귀부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한편 영상 속에서 ‘남성’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을까. 우선 가사를 떠올려보자. “난 여기저기 뛰노는 너의 맘 길들일래. Lion heart.”라는 가사처럼 남성은 ‘사자’라는 동물로 전제되어 있다(실제로 영상 속에서도 사자탈을 쓰고 있다). 즉, 길들임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당연하겠지만 길들이는 주체는 바로 그녀들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계급적인 위치에서부터 일단 우월하기 때문이다). 영상 속의 스토리 역시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성을 여성들이 함께 응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만 봐서는 3기 때처럼 적극적인 여성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문장을 제외하고서, 나머지 가사들을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가사 속의 내용은 이미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다른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남자친구를 향한 여자친구의 한탄이다. 그녀의 진짜 목적은 건방진 남자친구를 향한 응징이 아니라 그를 어떻게든 달래 자신만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길들인다’라는 주체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정작 연인관계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반응 하나하나에 초초해하며 불안해하는 수동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기에게 걸 맞는 남성을 찾기 위해 개조의 의지까지 피력했던 <Mr.Mr.>와 비교하면 분명히 소극적이다. 심지어 영상 속에서는 바람둥이 상대를 응징하기 위해 더 강력한 남성성을 끌어들이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 안무 역시 이전보다 동작이 작아지고 아기자기해졌다. 심지어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채로 다리를 쫙 핀다던지, 혹은 허리나 허벅지선을 강조하는 동작을 추며 성적 매력을 은근히 강조한다. 이런 모습은 차라리 ‘2기’의 소녀시대에게나 더 어울린다.


아마도 소녀시대의 이러한 변화는 브랜드 포지셔닝의 재전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안정적인 성과를 위해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컴백 후 그녀들의 활동무대는 다시 국내를 비롯한 인근 아시아 국가에 한정 되었다. 뿐만 아니라 데뷔가 오래된 만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보단 그녀들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대중들에게 만족을 주려는 의도 역시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소녀시대의 ‘4기’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안정기다. 바꿔 말하자면 아쉽게도 ’3기‘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적극적인 여성은 물론, 그녀들이 다 함께 활동하는 모습조차도 점차 보기가 어려워질 거라는 슬픈 예감이기도 하다.


(다음 화에서 계속...)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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