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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Apr 10. 2019

14화_바르트의 소녀시대 part.3

#콘텐츠 분석: 소녀시대 뮤직비디오

이제 이론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실전이다. 우리는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 몇 편을 감상하고, 분석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조사는 크게 3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우선 공시적인 차원에서 각각의 영상들 속 등장하는 기호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문화적 서브텍스트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다음은 그런 영상들 속의 양상들을 통시적인 흐름 속에서 어떤 변화들을 거치는지 확인할 차례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소녀시대’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포지셔닝 작업을 수행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다만 그 전에 몇 가지 밝혀둘 것이 있다. 모두 알다시피 소녀시대가 데뷔한지 10년이 넘은 만큼 히트곡도 많고 뮤직비디오 역시 많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의 편의와 집중을 위해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우선 분석 대상은 가급적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그 외 뮤직비디오들은 데뷔곡이거나, 기록할만한 대중적인 성과를 낸 경우처럼 주목할 만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중심으로 선정하였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기대했지만 나오지 않는 영상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로 예상하지도 않았던 영상이 분석 대상으로 다뤄질 수도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가급적 공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영상들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 미리 작은 이해를 구해보려 한다.


2007년 <다시 만나 세계>를 시작으로 2017년 <Holiday>에 이르기까지, ‘소녀시대’란 이름으로 많은 곡들이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때문에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각각의 뮤직비디오 영상들을 몇 가지 공통점들을 기준으로 묶음을 지어보는 것이다. 그랬더니 대략 4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나는 이것들을 편의상 ‘1기’, ‘2기’, ‘3기’, ‘4기’로 부를 것이다. ‘1기’는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 그룹으로서 그 포부와 열정이 약동하는 시기다. 이즈음의 히트곡으론 <다시 만난 세계>와 <소녀시대>가 있다. ‘2기’는 걸그룹으로서 대중의 지지를 얻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전성기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성숙기라고 부른다. 이 당시 주요 음원에는 <Gee>, <소원을 말해봐>, <Oh>가 있다. ‘3기’ 역시 2기와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전성기의 장기화를 구축해냈지만, 2기와는 전혀 다른 브랜딩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으로 분리하는 게 옳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 시기를 ‘재도약기’라고 부르며 <The Boys>, <I Got A Boy>, <Mr. Mr.>를 주요 히트곡으로 포함시키려 한다. 마지막 ‘4기’는 2015년 발매된 <Lion Heart> 이후 현재까지를 포괄하는 시기이다. 도전보다는 데뷔 10년차를 맞이한 걸그룹으로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인기의 재확인에 집중한다는 의미를 담아, 나는 이 시기를 ‘안정기’로 부르고자 한다.

‘1기’의 주요 히트곡으로는 <다시 만난 세계>와 <소녀시대>가 있다. 만약 사람의 인생으로 비유하자면 이 시기의 소녀시대의 이미지는 대략 19살~20살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영상 속에서 등장하는 그녀들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걸그룹으로서 자신들의 개성과 열정, 혹은 포부를 드러내는 데에 주로 집중한다. <다시 만난 세계>의 뮤직비디오 장면들을 떠올려보자. 영상 속에서 등장하는 소녀시대 멤버들은 대부분 염색을 거의 하지 않은 검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화장기는 거의 없으며, 입고 있는 무대 의상 또한 흰색 계열이다. 이를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순수성이다. 말하자면 여성적인 매력을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소녀다운 이미지를 강조함으로써 무궁무진한 앞으로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영상 속 등장하는 멤버들에겐 저마다 하나씩 꿈이 설정 되어 있으며, 그녀들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안무 역시 팔과 다리를 모두 사용하는 큰 동작을 구사함으로써 발랄한 포부를 드러낸다.


한편 <소녀시대>에 이르면 <다시 만난 세계>와는 조금 달라진 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선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다양해졌다. 전체적으로 긴생머리를 유지하던 이전 앨범과 달리 각각의 멤버에게 걸 맞는 헤어스타일을 채택한다. 의상도 후드티, 야구점퍼, 원피스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안무도 ‘앙탈춤’이라는 별명처럼 다소 작아지면서 귀여운 매력을 뽐내는 데 집중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노래가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건 바로 <다시 만난 세계>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남성 화자’가 간접적으로나마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시 만난 세계>의 주인공은 오로지 소녀시대 멤버들이었다. 가사는 자신의 꿈을 위한 다짐의 이야기만 그릴 뿐 ‘남성 화자’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그렇지만 <소녀시대>의 가사는 다르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스쳐가는 얘기뿐인 걸.” 이 노래가사의 주된 내용은 사랑에 빠진 어린 소녀가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는 남성에게 건네는 말이다. 가사 속의 화자는 자신은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며 자신 역시 이 사랑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이 여성이 자신의 사랑이 진지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노래가사 속 여성 화자는 철저하게 수동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음반이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한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뮤직비디오 속에서는 앨범 재킷 촬영 장면과 쉴 새 없이 반짝이는 스포트라이트가 등장한다. 때문에 이 뮤직비디오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그저 사랑에 빠진 여성이 남성에게 보내는 불만이 아니라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걸그룹들 중 하나로서 소녀시대가 대중들에게 보내는 당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냥 어리기만 하지 않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현재 나와 있는 다른 어떤 가수들 못지않게 실력과 재능을 갖춘 가수들이다.’ 이렇게 간절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2기에 이르면 소녀시대는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 ‘소녀시대’의 주요 히트곡으로는 <Gee>, <소원을 말해봐>, <Oh>가 있다. 이 3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헤어스타일부터 보겠다. 염색을 거의 하지 않았던 1기와 달리 2기에는 갈색, 금색 등으로 머리색이 바뀐다. 헤어스타일도 단발머리, 파마, 양갈래 묶음머리, 미스코리아 머리 등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선보인다. 화장 역시 과거에 비해 짙어졌다. 무대의상은 주로 스키니진이나 핫팬츠처럼 멤버들의 몸매를 강조한다. 안무도 이러한 의상의 변화에 발맞춰 상체보다는 다리를 주로 사용하는 동작들이 돋보인다. <Gee>의 하이라이트 동작은 게다리춤이고 <소원을 말해봐>에선 아애 뒷짐을 진 채로 다리만 까딱거린다. <Oh> 역시 다리를 들어 올린다거나 엉덩이를 쭉 내미는 등의 동작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향들을 통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유추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영상 속의 소녀시대 멤버들이 ‘대상화’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섹시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로만 소비될 뿐이다. 


영상 속에서 그녀들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떠올려보자. 권력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과 달리, 그녀들은 자신들의 뮤직비디오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비인격체로 취급 받는다. <Gee>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소녀시대 멤버들은 마네킹으로 등장한다. <소원을 말해봐>에서는 램프 속의 지니를 자처하며, <Oh>에선 치어리더다. 마네킹은 원래 의류 등을 파는 가게에서 상품을 전시하기 위해 갖다놓은 사람 모형이다. 애초부터 눈으로 보고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뜻이다. <소원을 말해봐> 속 등장하는 지니에게는 자기 의견이 필요하지가 않다. 그녀들은 그저 남성들의 소원을 이뤄주고 그들이 만족하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소녀시대 멤버들의 섹시한 표정과 안무, 의상, 영상 속에서 등장하는 분홍색 배경과 침대, 화려한 파티 등은 성적인 뉘앙스까지 풍긴다. 남성들의 시선은 1인칭 시점의 카메라로 대변되는데 이러한 연출은 영상을 소비하는 대중으로 하여금 카메라의 시선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효과를 낳는다. 말하자면 <소원을 말해봐> 속에서 펼쳐지는 모든 장면들을 영상을 소비하는 대중을 위해 준비된 일종의 이벤트인 셈이다. <Oh>의 치어리더가 하는 역할은 경기의 흥을 돋우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치어리더는 경기장의 주인공이 아니다. 진짜 주인공은 경기를 하는 (남자)선수들이고, 그녀들은 오로지 조력자의 역할만 수행한다. 한편 선수로 등장하는 남성들은 소녀시대 멤버들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기껏해야 지나가다 손을 한 번 흔들어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남성들의 작은 관심에 소녀시대 멤버들은 열광한다. 아닌 게 아니라 <Oh>에선 이런 가사도 있지 않은가. “오빠 나 좀 봐. 나를 좀 바라봐.”

그리고 뮤직비디오 속의 이러한 구조는 대중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쥐어준다.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그것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당당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정당한 권력을 쥐어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의(정확히는 영상 속에서 그녀들이 소화하고 있는 컨셉이-마네킹, 지니, 치어리더) 존재 목적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소녀시대는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 신화란 아시아 특유의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코드에 바탕을 둔‘현대판 현모양처’다.본래 ‘현모양처’는 가정에 충실하여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도록 노력하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판 현모양처’는 여기서 사회적인 역할까지 강조한다. <소원을 말해봐>에서 멤버들이 입은 제복을 떠올려보자. 제복은 보통 남성들의 전유물로써 권력을 상징하는 기호다. 고로 제복을 입은 그녀들은 ‘능력 있는 여성’이 된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런 제복을 입고서 섹시한 춤을 추며‘너의 지니 내가 되어줄게’, ‘소원을 말해봐’ 등의 가사들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이건 사랑하는 너를 위해 나를 아낌없이 희생해주겠다는 의사 표시다. 결국 뮤직비디오 속에서 나타나는 여성성의 새로운 모델은 이렇게 요약된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만큼 능력까지 갖췄으면서, 가정(혹은 연인관계)에서는 남성적인 체계에 순종하고 그들에게 만족을 주는데 헌신하는 여성. 그리고 그런 여성을 대중들은 마음껏 소비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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