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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Oct 16. 2019

번외_'스키마'는 무엇인가

부제: 인간의 기억

오랜만에 번외를 먼저 들고 찾아왔다. 이번에 우리가 다룰 주제는 바로 ‘스키마’다. 


앞선 시간에서 우리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를 가지고 핸드폰 디자인의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나아가 모든 기획과 마케팅의 핵심은 새롭고 긍정적인 아비투스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결론까지 내렸다. 여기서 말하는 아비투스란 곧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그리고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글 한 줄 쓰기도 쉽지가 않은데 패러다임을 만드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기업의 수많은 기획자와 마케터들은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상의 만족을 선사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내놓지만, 그것이 꼭 자신들의 뜻대로만 소비자에게 전달되리라고 확신할 순 없다.


아비투스Habitus는 습관을 뜻하는 영어단어 Habit의 어원이다. 따라서 아비투스를 만든다는 건 곧 새로운 습관을 만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여기서 습관은 반복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르는 사고나 행동을 말한다. 다시 말해,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습관의 전제 조건은 무엇일가. 그 답은 이미 앞에 나와 있다. 바로 '반복적인 메커니즘'이다. 어떤 행동이나 사고가 단순히 두뇌에 저장되는 수준을 넘어 체화되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그것을 습관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 기억의 흥미로운 단면들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의 기억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철학과 심리학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왜냐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기억은 일종의 정신작용이다. 정신작용을 다루는 학문은 고대엔 철학이었고, 이후엔 철학에서 분리되어 태어난 심리학이 그 역할을 이어 받았다. 근대에 이르면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정신작용을 관장하는 두뇌에 관한 연구가 증가하면서 뇌과학 차원에서 정신작용을 다루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각각의 학문들은 인간의 정신작용(기억)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우선 철학은 기본적으로 인식, 존재, 가치 등의 관념을 다루는 학문이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작용 역시 일종의 관념현상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인간의 정신작용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연구하기 보다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추구하는데 집중하였다(이를테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등등).


한편 심리학은 생각하고, 기억하고, 추리하고, 계산하는 등 인간 정신활동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내적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며 그 메커니즘을 유추하고 탐구하는데 집중했다. 이를테면 행동주의 심리학은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획득하는 감정, 경험, 행동양식 등이 주변의 자극에 의한 보상과 처벌의 영향으로 작동된다고 보는 이론이다.


마지막으로 뇌과학은 인간의 정신작용을 일종의 생리현상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인체 내부에서 작용하는 (호르몬과 같은)물질들에 의해서 인간의 정신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짜증스런 감정의 원인은 내장기관에 의한 통증이다’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셈이다.


하지만 1950년대에 이르면 인간의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인공지능과 컴퓨터라는 새로운 분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새로운 발명품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인간의 머리로는 푸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릴 복잡한 수식들을 단 몇 초 만에 풀어내는 이 기계들이 그들의 눈에는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이렇게 생각했다. 컴퓨터는 마치 인간처럼 복잡한 수식을 자기 스스로 처리하고 답을 구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도 컴퓨터의 정보처리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소위 인지과학, 또는 인지심리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은 이 질문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의 마음을 관념현상, 심리현상, 생리현상으로만 파악하던 이전과 달리 부호화(정보를 기억 시스템에 집어넣는 것)-저장(정보를 오랫동안 파지하는 것)-인출(기억저장소에서 정보를 끌어내는 것)로 구성된 정보처리과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인지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리는 각각의 단계를 ‘감각기억’, ‘단기기억(작업기억)’, ‘장기기억’이라고 부른다. 우선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지각한다(탁자 위에 놓인 사과를 발견한다). 이때 감각기억은 감각기관을 통해 유입된 정보를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기록하며, 그 사이 유입된 정보에 대해 정보처리능력을 할당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만약 그 정보가 흥미롭거나, 정보처리의 주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그 정보는 즉각적으로 단기기억으로 이전된다.


단기기억(작업기억)으로 유입된 정보는 본격적인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다. 주체는 감각기관에서 지각한 각종 정보들과 장기기억에서 인출된 정보를 활용해 유입된 자극을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처리한다(저것은 사과로군!).


하지만 단기기억은 용량의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들을 저장할 수가 없다. 저장된 지식 역시 지속시간에 한계가 있다. 만약 단기기억 단계에서 유입된 정보를 의미 있게 부호화하거나 되뇌지 않는다면 그 정보는 신속하게 사라지고 만다.


한편 단기기억은 현재 활성화 중인 지식만을 수용한다. 회사 사무실로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일이 끝나면 직원들은 퇴근을 하고 사무실은 텅 빈다. 단기기억 역시 만찬가지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에는 단기기억보단 ‘작업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르기도 한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스키마를 마인드맵에 비유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장기기억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비유할 수 있다. 작업기억에서 부호화(의미부여)와 시연(반복해서 되뇌기)의 과정을 거친 정보들은 장기기억으로 이전되어 저장된다. 뿐만 아니라 장기기억운 작업기억에서 유입된 정보를 저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작업기억이 필요로 한 정보를 인출해주기도 한다(그러고보니 엄마가 사과를 좋아하셨지?).


그렇다면 장기기억은 수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배열하고 보관해두는 걸까. 장기기억의 구조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이중부호모델, 특정비교모델, 명제모델, 네트워크 기억 모델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네트워크 기억 모델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물론 네트워크 기억 모델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키마 모델, 위계 네트워크 모델, 연상 네트워크 모델, 활성화 확산 모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하나다. 인간의 기억은 닥치는 대로 소품들을 넣어두는 서랍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과 질서를 갖춘 그물망의 형태라는 것이다. 장기기억에서 각각의 정보들은 마디를 형성하고, 수많은 연결고리가 각각의 마디들을 이어준다. 이를 두고 신경과학에서는 마디를 '노드', 연결고리를 '링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노드와 링크로 구성된 거대한 망을 우리는 ‘스키마’라고 부른다. 


따리사 장기기억의 저장원리는 간단하다. 작업기억으로부터 새로 유입된 정보는 새로운 마디(노드)가 되어 기존의 마디들과 새로운 연결고리(링크)를 형성하며 저장된다.  이때 새로 유입된 마디가 기존의 마디와 밀접하거나 유사할수록 연결고리는 짧고 두꺼운 형태를 띤다.


한편 장기기억의 이러한 부분 때문에 인간의 기억은 연쇄성이라는 특징도 갖는다. 쉽게 말해 하나의 기억만 인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기억들은 연결고리에 의해 긴밀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과’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누군가는 과일의 한 종류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누군가는 애플의 로고를  떠올릴 수 있다. 사과에 얽힌 개인사를 추억할 수도,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의 기억이 연쇄적인 망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마케터와 기획자들이 주목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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