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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Oct 01. 2019

22화_브랜드는 커뮤니케이션이다 part.2

aka.이름을 바꾸는 이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만약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각자의 말로 대화를 한다면 난장판이 따로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유사한 문화적 배경을 공유해야 한다. 가령 OK를 표시하는 수신호는 남미국가에서는 심한 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이렇듯 상대방이 속한 문화적 배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그 대화는 동상이몽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는 같은 맥락을 공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생과 장난을 치다가 창문을 깬 아이가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화가 난 어머니는 아이에게 ‘참 잘했다’며 타박을 한다. 우리는 어머니의 그 말이 아이를 향한 칭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아이가 창문을 깼다는 상황적 맥락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오해의 소지가 크다.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의 조건들은 기업의 마케팅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설득하는 말하기다. 설득의 목적은 인식을 전환하거나 행동을 유발시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마케팅은? 당연히 자사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조성하거나, 소비자의 구매행동을 촉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커뮤니케이션 대상인 소비자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한다. 소비자가 속해 있는 국가나 문화권을 파악하고, 각각의 소비자가 처한 상황적 맥락을 특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각각의 소비자는 저마다의 위치와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같은 한국인이라 할 지라도 2000년대를 기준으로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과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의 가치관이 다르고, 연령별로 다르고, 성별마다 다르고, 사회 계층에 따르며,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이 때 저마다 다른 특질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의 사이를 관통하여 하나의 단위로 묶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기호학에서 말하는 코드다. 


따라서 시장을 조사한다는 건 곧 특정한 문화코드를 발굴하는 과정이다. 비단 시장조사만이 아니다. 마케팅과 기획의 모든 과정이 문화코드의 범주 안에서 맴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업은 소비자의 문화코드에 부합하도록 브랜드 메시지와 형식을 고안하여 전달한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그 메시지는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 도리어 반감을 살 수도 있다. 아마도 코드를 발견하는 일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소비자의 힘이 세지는 만큼, 그들을 잘 아는 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위의 광고는 새터민 버스기사를 주제로 5G 기술과 접목하여 만든 'SKT'의 브랜드 광고이다. 졸음운전으로 인해 자신이 모는 버스의 승객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까 걱정하는 버스기사의 고충을 자율주행 운전 기술로 해결해줄 수 있다는 취지의 광고다.


하지만 이 광고는 2019년 9월 25일 기준 유튜브 채널에서 ‘좋아요’를 139개 획득한 것에 반해 ‘싫어요’를 94개나 받았다. 댓글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율주행 기술이 가진 사회문화적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버스기사를 비롯해 운송업 종사자들이 날로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현재 처해있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코드를 짚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SKT의 목적은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따뜻한 기술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일자리를 빼앗을 기술을 가지고 광고를 하는 무지렁이 이미지였다.



한편 문화적 코드를 제대로 짚어내 멋진 광고를 만든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동제약의 ‘그날엔’ 광고다. 그날엔은 진통제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에겐 생리통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생리통은 여성들이 한 달을 주기로 겪는 자연스런 통증이다. 하지만 생리통을 앓는다고 해서 모두가 약을 먹진 않는다. 


그렇다면 생리통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도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거나, 혹은 통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그럴 것이다. 보통은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아픈 와중에도 학교를 가거나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경동제약에서는 젊은 20대 여성가수인 아이유를 메인 모델로 내세웠다(보통 소비자는 광고 모델이 지닌 이미지가 자신의 상황과 비슷할 경우 광고에 쉽게 주목한다).


광고의 메인 컨셉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그날엔은 생리통약이다. 생리통은 인체의 시스템상 어쩔 수 없이 겪는 자연스러운 통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생리’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처럼 되어 있다. 기업에서 생리를 겪는 여성에게 부여하는 휴가는 '보건휴가'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고 생리라는 단어를 쓰기 보다는 '마법에 걸린 날', '그 날' 등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생리약 광고는 젊은 여성이 생리통은 약으로 이겨내고 할 일을 무사히 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경동제약은 생리통에 대해서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보다 근본적인 층위로 내려가 통증 그 자체로 접근한다. 우리는 왜 약을 먹을까. 당연히 몸을 낫게 하거나,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약을 먹는다. 생리통을 통증의 차원에서 접근하기로 한 경동제약은 이러한 기본적인 행동원리를 광고 안에서 반영했다. 통증을 가라앉혀 할 일을 제대로 하는 모습을 제시하기보다 통증을 덜어주는 방법 자체에 매달린다. 그래서 경동제약의 그날엔 광고는 스트레칭, 식습관, 운동법, ASMR 등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결론적으로 그날엔의 광고는 생리통약에 대해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낸다. 특정 대상에 대한 소구를 넘어 보다 보편적인 차원에서 공감을 얻는다. 생리통을 겪지 않는 남성도, 아직 겪지 않았거나 더 이상 겪지 않는 세대도 이 광고를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왜냐하면 생리통이 아니라 통증을 대화의 코드로 삼았기 때문이다. 생리통은 모두가 겪는 게 아니지만, 통증은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체라면 어떤 식으로든 앓기 마련이니까.


이렇듯 어떤 코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광고에 대한 인상은 달라진다. 반발을 일으킬 수도, 혹은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 SKT가 전자라면, 그날엔은 후자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을 도출해보자면 코드를 선택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바로 거기서부터 기업과 소비자 간 대화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화(커뮤니케이션)의 작동원리를 더 잘 알기 위해 나는 아마도 언론정보학을 배우나보다.



(그런 고로 이제부터 이 매거진의 이름은 <아마추어 기호학>이 아니라 <대화의 기호>다.)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9Kd7_wUtrk (SKT 광고)

https://www.youtube.com/watch?v=yoT3lOqu7II (그날엔 광고1)

https://www.youtube.com/watch?v=hSIBkXnwNek (그날엔 광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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