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와 정시, 공정과 정의.
2022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에 따르면 올해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은 40%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연세대, 고려대, 경희대, 한양대 등은 정원의 40%이상을 정시로 뽑겠다고 밝혔으며, 그외 한국외대, 성균관대, 서울대, 중앙대 등도 30% 이상을 정시로 뽑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배경에는 2018년 숙명여고에서 발생했던 시험문제 유출 사건이 크게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나아가 2018년 말에 방영을 시작한 jtbc의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과도한 사교육 행태를 강도 높게 풍자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일부 특권층만이 아니라 모두가 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입시제도에 대한 수요를 이끌어 냈다. 그 결과, 2019년 교육부는 대입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면서 "2023학년도까지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을 40%로 늘리고, 이를 2022학년도에 최대한 조기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이렇게 무작정 정시 비율을 늘리는 방식이 정말로 공정한 입시제도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다. 물론 수능 성적만 본다는 점에서 다양한 요소를 살펴보는 수시보다는 공정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꼭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현재 대한민국의 입시제도는 크게 ‘수시’와 ‘정시’로 나뉜다. 정시는 쉽게 말해서 수능 성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방법이다. 옛날 학력고사처럼 단 한 번의 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성적을 매긴 후, 성적이 높은 순서대로 상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데려가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평가기준으로 수능 성적 하나만을 보기 때문에 선발 과정도 비교적 간단하고 수시에 비해 공정해 보인다. 아무래도 성적이라는 건 학생 개인의 노력이 만만치 않게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시가 마냥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학생들에게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이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자신이 가게될 대학교가 결정된다는 건 어린 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다. 만약 당일 컨디션이 안 좋았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시험을 망친 아이들은 어떡하라는 것인가. 만약 재수를 하기 위해서는 다시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과 거기에 드는 비용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날아갈 수도 있다는 부담감을 안겨주는 건 결코 옳지 못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성과 위주의 입시 정책이 교육의 본질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시험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레 시험 문제를 푸는 기계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딱 두 가지다.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정답을 찾아내는 것. 사전에 따르면 교육이란 ‘지식이나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건 누구나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서 나아가 인격의 성장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통찰’이라는 단계가 수반된다. 내가 배운 것들을 이해하고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서 이러한 교육적 이상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학생들은 그저 답을 외울 뿐,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이 아이들의 세상은 둘 중 하나다. 정답인 것과 정답이 아닌 것. 그 사이에 포함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걸 보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으니까.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유명한 김영하 작가는 문학이란 다양한 감상과 사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자신의 소설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반대했었다. 수학과 과학의 영역이 아니고서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 정답은 단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그렇다고 수학과 과학에서 정답이 꼭 하나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정답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에겐 다양한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이렇게 제한된 시각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저 이미 존재한 생각을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이다. 실제로 마틴경제발전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창의력 지수는 전체 85개국 중 27위에 해당하는 0.596점이었다. 물론 마냥 낮다고 볼 순 없겠지만 학업 성취도 수준을 생각하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교육 현실은 학생 개인의 자존감과 행복도도 떨어뜨린다. 2016년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라는 여성가족부의 통계가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 학생들의 자살률은 OECD 국가를 통틀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당연히 자살을 선택하는 원인 1위는 ‘성적’이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한국의 아이들을 성적은 우수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들로,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고통스러운 교육“으로 표현했다.
더 큰 문제는 정시가 우리의 생각처럼 그다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교육 인프라의 차이가 있다. 앞서 말했든 학생의 성적은 학생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외부의 지원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문제는 주어진 외부 환경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전으로 지방에 있는 학생들과 서울에 있는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서울 지역의 경우 대성, 메가스터디, 종로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대형 학원들이 즐비하지만, 지방은 그렇지가 않다. 개인과외 교사를 구할 때도 아무래도 서울 지역이 더 좋은 대학교 출신의 교사를 구하기가 쉽다. 게다가 이러한 양극화는 비단 사교육 뿐만 아니라 공교육에서도 나타난다. 부모의 수입 수준별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례로 시골에서 1등하던 학생이 강남의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중위권 정도밖에 안 된다는 기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골에 살던 그 학생이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보다 공부를 덜한 것도 아니다. 나 역시 학창시절 야자는 물론 학원도 다녔다. 새벽 1~2시에 귀가하는게 일상이었다. 심지어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가 공부를 했다. 나뿐만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공부했다. 하지만 그 해 우리 학교는 서울대를 딱 1명만 보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만약 100M 달리기라고 친다면, 학생들의 노력은 달리기 속도를 결정한다. 학생을 둘러싼 외부의 환경들은 출발선을 결정한다. 누군가는 100M 전에서 출발하지만, 누군가는 50M 전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많은 노력을 단다고 한들,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정시를 확대하는 교육정책이 매우 불편하다. 첫째, 정시는 현재의 입시지옥을 더욱 가속화 할 뿐이다. 둘째, 정시가 특별히 공정한 입시정책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사교육을 완전히 없애버리거나, 아니면 지방이던 수도권이던 공교육의 질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던가.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정시 100%도 일부에게만 유리한 입시 제도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수시’는 어떨까? 수시의 경우 학업성적(수능+내신), 인성, 잠재가능성, 진로에 대한 준비도 등등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학생들을 선발한다. 아무래도 수능 성적 하나 만을 두고 평가하는 정시와 달리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문제 푸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건처럼 입시비리나 생활기록부 허위 작성, 스펙 몰아주기, 역차별, 금수저 전형 같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수시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당연히 좋지가 못하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문제들을 수시 자체의 문제로 보는 게 옳은 건가 싶다. 내가 봤을 때 진짜 문제는 수시 자체가 아니라 수시를 평가하는 방식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수시를 정시처럼 평가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수시를 평가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고려하는 요소가 다양하다일 뿐이지 다양한 스펙들을 정량적인 방법으로 점수화 시켜 학생들을 성적 순으로 줄을 세운다는 점에서 정시랑 다를 바가 없다. 이를테면 봉사시간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몇점, 교사의 추천서 하나 당 가산점 1점, 상장 하나당 가산점 1점 등등,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러니 남들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스펙을 가지기 위해 앞서 말한 편법들이 버젓이 유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진짜 바꿔야 하는 건 수시와 정시의 비율이 아니라 바로 ‘수시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해결할 건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수시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교육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할 시간,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찾아 개발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는 하는데 왜 잘해야 하는지,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를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학창시절 학교를 다니면서 진로와 관련되어서 어떤 수업이나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냐고. 대부분은 고3 때 실시했던 대학을 선택하기 위한 진로상담을 떠올릴 것이다. 그 외에는 심리 검사나 직업흥미 검사를 받아본 게 전부일 것이다. 운이 좋으면 학교에서 직접 직업 현장으로 견학을 가거나 아니면 직업인들을 초대해 강의를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1년에 한 두번일 뿐이다. 지속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미래는 언제나 그 다음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사활을 건다. 생각해보면 수능날 풍경처럼 이상한 그림이 또 없다. 아침에 우르르 몰려가서 응원하는 건 이해한다. 그런데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멈추고, 소방차의 사이렌을 울리지 못하게 하는 걸 보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싶다. 세상에 어떤 시험이 이렇게 요란법석을 떨면서 진행이 되어야 하나? 수능이 전부는 아니라면서,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면서 이렇게 국가와 온 국민이 나서서 부담을 주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이런 상황에서 수시를 폐지하고 정시 100%를 만들겠다면 축구 팀에서 팀내 에이스들은 모두 보내버리고 어린 선수와 2군들로만 스쿼드를 구성하여 감독에게 우승을 요구한 뒤, 우승을 하지 못하니까 책임을 묻겠다며 경질론을 내세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교육부의 정책은 그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위해 가장 편리한 방법을 좇은 결과로만 보인다. 그래서 아쉬울 따름이다.
결국 우리는 아직도 이 비정상적인 교육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나 보다.
ps.그냥 알쓸신잡을 보다가 우연히 생각나기에;; 모든 생각은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