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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Aug 22. 2020

[Review]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야

도서 '체리'

연인은 언제 헤어질까. 물론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연인 관계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기대를 하게 되는 순간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모든 관계의 원리는 기브 앤 테이크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 내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그녀는 그 기대에 기꺼이 부응한다. 반대로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나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그래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건 모두 개소리다. 관계라는 건 기본적으로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용어 중 ‘BCG 매트릭스’라는 개념이 있다. 간단히 말해 사업이나 상품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적합한 처방을 내리기 위해 판단하는 척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해당 사업이 앞으로도 시장 내에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면 기업은 투자를 유지하거나 확대한다. 반면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포기한다. 다른 사업에 눈길을 돌린다. 


이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나아가 무심하기까지 한다면 그 관계에는 문제가 생긴다. 물론 처음 한두 번은 잠자코 넘어갈 수 있다. 오늘만 그런 거겠지. 다음에는 안 그러겠지. 하지만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그땐 분노가 폭발한다. 운이 좋다면 거기서도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다. 예컨대 ‘내가 더 잘할게’ 같은 말들로 말이다.



그러나 우린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어쩔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는 상대가 더 이상 내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체념이다. 더 이상 기대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 中


희망이 사라지면 절망이 찾아온다.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1%의 기대도 할 수 없는 삶은 얼마나 무료하고 끔찍한가. 어쩌면 단테가 그려낸 지옥이 무시무시한 이유는 단순히 그곳의 형벌이 잔인하고 고통스럽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무시무시해 보이는 것이다. 



소설 < 체리 >는 이라크 전쟁에 의료특기병으로 참전한 주인공이 전역 후 마약에 빠지고 연쇄은행강도가 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을 쓴 작가 ‘니코 워커’도 이라크에서 250번의 작전을 수행한 참전용사였다. 하지만 귀국 후 그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결국 은행강도까지 저질렀다. 말하자면 < 체리 >는 작가 본인의 경험을 담은 일종의 자전적인 소설이었던 셈이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하나 둘씩.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체리’는 미국에서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가는 게 하나 있다. 영어권에서 체리(Cherry)는 성적으로 ‘처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아마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책을 읽고 나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리고 그 질문의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질문들이 연쇄적으로 떠오른다. 처음 마약을 접했을 때부터? 아니면 파병을 갔을 때부터? 아니면 전역 이후에? 어쩌면 애밀리를 만난 것부터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분명 어느 시점에서든 상황을 개선할만한 방법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마약에 손을 대지 않는다던가, 입대를 하지 않는다던가, 혹은 돌아와서 병원을 다니며 착실하게 치료와 상담을 병행했다던가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건 가정일 뿐이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만 계속 죽어나갔을 뿐이다. 하나둘씩. 거기엔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죽은 사람들만 존재할 뿐이다.


< 체리 >의 주인공인 ‘나’는 의료특기병이다. 이제부터 부르기 쉽게 의무병이라고 하겠다. 보통 의무병을 생각하면 우리는 <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전쟁 영화들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 다친 전우들을 구해내는 구원자들. 하지만 소설 속 나타나는 ‘나’의 모습은 영화 속의 모습들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처음엔 그도 의욕적으로 임무에 임한다. 하지만 그곳의 현실들은 녹록지 않다. 남의 엉덩이에서 고름을 짜는 시시한 치료나 도맡는다. 긴장이 감도는 스펙터클한 총격전은 소설 속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은 사고나 누군가 설치한 폭탄 때문에 죽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마을로 정찰을 나갈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장교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나’를 대단한 의사인 양 소개하지만 겨우 의무병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 의료 처치는 많지 않다. 심지어 가진 장비와 약들도 변변치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진통제 몇 개를 처방해 준 뒤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해주는 것뿐이었다.



결국 ‘나’는 조금씩 무기력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사랑하는 애밀리는 그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상황은 나빠져만 갈 뿐, 문을 발로 차고, 집을 부수고, 사람을 총으로 쏘는 폭력적인 일상은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나간다. 함께 방을 쓰던 사람들 중 벌써 2명이 죽었다. 심지어 얼마 전엔 본부에서 죽은 병장이 애지중지하며 기르던 강아지를 시끄럽게 짖는다는 이유로 죽여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다리에서 조약돌 소녀에게 전투식량을 주었다. 아이는 가슴에 식량을 꼭 쥐고 달려갔다. 그런데 맨발의 사내아이에게 붙잡히더니 머리를 흠씬 두들겨 맞고 급기야 식량까지 빼앗겨 버렸다. 우리가 차를 몰고 떠날 때 조약돌 소녀는 흙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p.165)


어쩌면 내가 소녀를 구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역 후에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물론 이전에도 마약을 하긴 했다. 거기에 더해 군대에서의 기억이 ‘나’를 더욱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주인공은 그런 자신을 무기력하게 관조한다. 소녀에게 그랬듯 스스로를 향해서도 방관한다. 어렵게 재회한 여자친구도 같이 마약에 빠졌다. 팔에는 주사 자국들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물론 마약을 끊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리기 위해 개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또다시 그럴듯한 핑계를 찾아 마약을 구한다. 설상가상 돈도 떨어졌다. 이제 주인공은 마약을 살 돈을 구하기 위해 은행까지 턴다.



소리 없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스스로를 보며 ‘나’는 이라크에서 죽은 동료들을 부러워한다.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이 돌아와 버렸다. ‘나’는 조용히 잊혀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한때는 굳게 믿었던 모든 것이 이렇게 잊혀진다는 것에 애석해 한다.


내게는 아직 희망이 있었다. 마약을 제조할 때는 인생이 너무나 아름답기만 했다.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의 모든 약쟁이가 친구처럼 느껴졌고, 내가 잘못한 일이나 내 실수로 망친 것들. 그리고 지금까지 낭비한 세월 같은 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p.425~426)


무겁고 슬픈 내용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소설을 처음 써본 사람의 솜씨답지 않게 술술 읽힌다. 표현이 다소 자극적이긴 하지만 꽤 재밌는 소설이다.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단순한 의지박약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 하반기에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어벤져스’ 시리즈의 루소 형제와 ‘스파이더맨’의 톰 홀란드가 의기투합한 영화가 개봉한다고 한다. 해당 영화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개봉 전 미리 소설을 읽고 가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492 (아트인사이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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