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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Jul 29. 2021

[Review] 결국 둘만 남은 이야기

영화 <우리, 둘>

수작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은 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노년의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지루할 거라고 예단하지 않길 바란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행동해야 할 이유를 준다. 그렇기에 사랑의 힘은 세다.


영화 속에서 마도는 깊고 차가운 물과 같다. 그에 반해 니나는 뜨거운 불이다.  물과 불은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이를수록 점점 극적으로 변해가는 니나의 행동은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오프닝 장면을 보면 두 명의 소녀가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한 명은 숨고, 한 명은 찾는다. 잡힐 듯 말 듯 아슬한 순간이 반복되는 와중에 갑자기 흰색 옷을 입은 소녀가 사라진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검은 옷의 소녀는 사라진 친구를 찾아 소리친다. 하늘엔 어둠이 드리우고, 주변은 까마귀 소리로 가득하다. 


로맨스 영화치고는 제법 으스스한 오프닝이다. 이 장면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건 결국 소녀가 소녀를 찾는 이야기다. 사라진 소녀를 찾기 위해, 남은 소녀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지만, 그녀의 외침은 까마귀 소리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한다. 그리고 이는 곧 앞으로 이어질 마도와 니나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대관절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긴 걸까? 


Synopsis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맞은편에 살고 있는 니나와 마도. 마냥 가까운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20년째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다. 은퇴도 했으니 여생은 로마에 가서 편하게 살자는 니나의 제안에 마도는 가족들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고백의 과정에서 마도는 결국 충격으로 쓰러진다. 이에 니나는 가족으로부터 그녀를 되찾을 플랜을 짜기 시작한다.



(1) 우리, 둘



영화를 보는 방법 중 하나는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 둘>은 기본적으로 퀴어 영화다. 으레 퀴어 영화라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들이 있다. 이를테면 연인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편견과 시선이 없다. 영화 속 등장하는 그 누구도 니나와 마도의 사이를 두고 험담하지 않는다. 일례로 길에서 우연히 만난 부동산 중개인은 레즈비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니나의 물음에 특별한 악감정이 없다고 대답한다.


이는 마도의 자녀인 앤과 프레드릭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얼핏 보면 니나와 마도의 관계를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라기보단 그동안 자신들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는 사실과 그런 어머니가 이제 자신들의 곁을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더 가깝다. 극중 유일한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간병인 역시 마도와 니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니나와 마도의 사이에 끼고 싶지 않다며 한 걸음 물러난 태도를 보였다(애초에 그녀가 빌런이 된 이유도 니나에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핵심은 오롯이 니나와 미도에게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결국 ‘우리, 둘’의 이야기다. <우리, 둘>의 가장 큰 갈등은 동성 연인과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 사이에 있지 않다. 동성애자인 자신들을 세상이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주인공들의 근심과 걱정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갈등의 축이다. 그 근심과 걱정이 결국 마도를 쓰러지게 만들었고,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2) 빛과 어둠



<우리, 둘>을 보는 두 번째 방법은 빛과 어둠에 주목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빛과 어둠은 연출의 주요한 테마로 자리한다. 일례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난 후,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니나와 마도가 어둠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그려진다. 빛 한 점 닿지 않는 그곳에서 그들이 나누는 사랑은 어렴풋한 실루엣과 소리로만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의 사랑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한편 니나와 로마로 떠나기 전, 가족들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기로 한 마도는 자식들을 집에 초대한다. 이 장면을 보면 앤과 프레드릭이 있는 부엌은 환하지만, 마도가 앉아 있는 식탁 주변엔 음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손자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속삭인다. 그러니까 이 영화 속에서 어둠은 비밀이 태어나는 공간인 셈이다. 단, 그곳에서는 비밀이 만들어질 뿐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마도는 결국 그날 앤과 프레드릭에게 니나와의 관계를 말하지 못했다. 


반면 빛에서는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 니나와 마도는 세탁방에 들린다. 니나는 잠시 담배를 태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마도 혼자 세탁방에 남아 주인을 찾는다. 이때 마도가 있는 세탁방과 달리, 니나와 부동산 중개인이 대화를 나누는 바깥에서는 햇빛이 환하게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니나는 마도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앤이 마도와 니나의 관계를 알게 되는 장면도 비슷한 예다. 잠에서 깬 앤은 마도의 방에 들어가 커튼을 걷는다. 그러자 빛이 쏟아지며 어두운 방을 환하게 밝힌다. 그곳에서 앤은 마도와 니나가 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깜짝 놀란 그녀는 니나를 향해 당장 나가라며 소리치고, 니나는 마치 빛을 피해 달아나는 바퀴벌레 마냥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간다.



(3) 마도와 니나



이렇듯 영화는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이야기를 보다 풍부하게 전달한다. 한편 이와 별개로 영화의 후반부에 이를수록 역전되는 마도와 니나의 위치도 흥미로운 축에 속한다. 이를테면 마도는 빛으로 나가기를 주저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끝내 자신의 비밀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반면 니나는 하루라도 빨리 빛으로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마도가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사이를 말했다는 거짓말을 듣자마자, 다음날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그녀의 남편이 남긴 시계를 팔아버렸을 정도다. 누구보다 마도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니나가 그 시계의 의미를 몰랐을 리가 없다. 다시 말해,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이전의 과거를 청산하고 마도와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도가 쓰러진 후, 모든 게 변했다. 마도가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 니나는 좋은 이웃 행세를 하며 마도의 곁을 맴돈다. 이전까지 보여준 모습대로라면 당장이라도 마도의 집에 쫓아 들어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허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어둠 속에서 마도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만남을 갖거나 뒤에서 몰래 간병인을 곤란하게 하며 간병인이 떠나기를 유도한다. 이후 마도를 되찾으려는 모든 노력이 실패했을 때 니나는 무너지는 심정으로 앤과 프레드릭을 찾아가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고백하지만, 프레드릭은 그런 그녀를 문전 박대한다. 이에 니나는 그녀가 뚫고 왔던 어둠 속으로 울면서 사라진다.


그에 반해 마도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갑자기 그릇을 떨어뜨려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질 않나,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노래를 좇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니나의 집으로 향하기도 한다. 호스피스에 입원했을 땐 니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들의 사랑이 방해받지 않도록 문을 걸어 잠근 것도, 좌절하던 니나를 일으켜 세워 함께 춤을 추던 것도 바로 마도였다.



(4) 열린 문과 닫힌 문



영화를 본 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지막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건 해피 엔딩일까, 새드 엔딩일까. 잘 모르겠다. 그토록 서로를 만나고 싶어 했던 연인이 재회했으니 해피 엔딩이라고 해도 될까? 아니면 결국 로마에 가지 못하게 됐으니 새드 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 속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는 바로 ‘문’이다. 니나와 마도가 함께 있을 때 두 사람의 현관문은 언제나 서로를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덕분에 카메라로 보면 마치 방과 방으로 이어진 커다란 집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층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은 서로의 문을 닫고 남처럼 행동했다.


어쩌면 마도와 니나는 그 문을 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니나는 언제나 작은 구멍을 통해 마도의 현관문을 엿봤고, 늦은 밤 몰래 열쇠로 마도의 집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가로막은 문엔 점차 잠금장치가 더해졌다. 처음엔 간병인이 안전고리를 걸더니, 나중엔 앤과 프레드릭이 아예 현관문의 자물쇠를 바꿔 버렸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재회해 호스피스 정문을 넘어 함께 탈출하지만 그들은 끝내 로마에 가지 못했다. 누군가 니나의 방에 쳐들어와 돈을 모두 훔쳐 갔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꿈꾸던 미래는 좌절되었다. 이에 마도는 스스로 문을 닫는 것을 선택한다.


‘우리’라는 단어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연인에게 있어 ‘우리’란 서로를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연인들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우리’를 꿈꿨지만 결국 ‘둘’만 남게 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우리, 둘>이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문을 두드리는 앤을 뒤로한 채, 페툴라 클락의 ‘Chariot’에 맞춰 두 사람은 춤을 춘다. 이제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오는 7월 28일 극장에서 확인해보자.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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