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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Jun 16. 2024

[Review]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

도서 '결정적 그림'

예술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보기에 특정 행위나 오브제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꼭 충족해야 한다. 


첫째, 나름의 미적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필요하다. 주로 형식적인 측면이나 기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령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최후의 만찬>은 원근법, 인물들 간의 배열, 구도 등을 통해 나름의 미적 논리를 구성한다.


둘째,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써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원시인들이 남긴 동굴 벽화의 사례를 떠올려 보자. 원시인들이 동굴 벽화를 남긴 데에는 풍요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서, 혹은 주변 지역에 대한 정보를 남기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다시 말해 예술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필요에 의해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부분부분을 뜯어보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가 될 수 있다.



도서 <결정적 그림>은 그림보다 그 뒤에 숨은 이야기들에 주목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거장들의 삶에서 영원한 예술로 남은 결정적인 순간을 조명한다. 저자는 미켈란젤로, 알폰스 무하, 르네 마그리트, 마르크 샤갈 등 22명의 거장들의 사연을 6개의 테마로 나눠 소개한다. 사회적 억압과 권력의 폭력에 예술로 맞서 싸운 이들, 당당하게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 열정과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한 이들, 사랑이라는 예술에 미친 이들,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이들,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끝내 자신의 예술을 관철한 이들.


흥미로운 점은 자칫하면 고리타분해질 수 있는 소재를 단편소설의 형식을 빌려와 풀어냈다는 점이다. ‘소설’이라는 형식이 줄 수 있는 장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가독성이 좋아진다. 극적인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풀어내다 보니 쉽게 몰입한다. 둘째로는 소설이 가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문학 장르와 비교했을 때 소설만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에게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했을 때 저자가 단편 소설의 형식을 빌려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결정적 그림>을 읽으며 독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거장들의 삶에 깊이 몰입한다. 때론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냥 비범한 천재인 줄만 알았던 그들 역시 삶에서 여러 문제를 겪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는 점은 그로부터 수십, 수백 년이 지나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묘한 위로를 안겨준다.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는 ‘뭉크’의 챕터였다. 뭉크는 고작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군의관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이후 더욱 엄격하게 변했다. 툭하면 뭉크와 누이들을 줄 세우고는 훈육이라는 핑계로 뺨을 갈기거나 몽둥이로 엉덩이를 후려치는 등 학대를 가했다. 열네 살이 되었을 때는 누나 ‘소피에’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충격으로 뭉크의 어린 동생들은 실성하거나 실어증을 앓았다.


언뜻 들어도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뭉크는 절망하는 대신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했다. ‘삶은 고통’이라던 한스 예거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자신의 비루한 삶의 감정을 작품에 주제로 내걸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사랑과 고통>(흡혈귀)였다. 독일의 베를린 미술협회는 그의 그림을 두고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허나 오히려 이 일로 인해 뭉크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마침 진보적인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며 기성 예술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던 시기였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뭉크는 이듬해 그의 인생에서 최대 걸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완성했다. 그 작품의 이름은 <절규>였다.


“더 이상 사람들이 독서하고 뜨개질하는 여인을 그려선 안 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려야 한다.”


이후로도 뭉크의 삶은 쉽지 않았다. 1933년, 그가 일흔 살이 되던 해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성 올라프 대십자 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국민 화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의 삶엔 여전히 고통이 가득했다. 비극적으로 끝난 라르센과의 사랑, 여동생의 죽음, 나치의 보복, 실명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뭉크는 80세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고통 가득한 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했다(당시 유럽인의 평균 수명이 50세였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이외에도 자신을 겁탈한 성폭행범을 그림을 통해 영원히 복수한 젠틸레스키,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의 사랑, 종이 한 장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며 가족과 재회하기를 바랐던 이중섭 등의 사례도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책 속에 수록된 130여 점의 명화에는 화가들이 평생을 걸고 표현하고자 했던 가치와 공감, 눈물과 열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저자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위로와 감동을 얻는 동시에 내 삶은 어떤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삶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


회사를 떠나던 날, 함께 일하던 팀장님이 준 편지에 담겨 있던 말이었다. 재밌게도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실 퇴사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 건 건강 상의 이유가 컸다. 2년 전 나를 쓰러뜨린 허리 디스크가 다시 재발했다. 다시 병원을 다니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선 억울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왜 자꾸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런 와중에 팀장님이 건네준 그 말이 내겐 참 위로가 되었다. 지금의 불행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네 삶이라고 해서 특별히 불행할 이유는 없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어쨌건 시간은 계속 흐를 테고 현재는 또 다른 미래와 이어질 테니. 


책장을 덮는 순간 눈앞에 커다란 도화지가 보이는 듯하다. 완성된 부분도 있고, 미처 그리지 못한 부분도 있다.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급하게 지워낸 부분도 있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 나의 삶은 어떤 그림이 될 수 있을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는 것 같다(아래 시는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 22명의 거장들에 대한 나의 답가다).


웃을 일이 생기거든 이리 와서 웃으렴
설탕이 타는 냄새가 사라지면 노래를 마저 부르렴
탁자 위 꽃의 늑골을 누른다거나
강가에 떠 있는 천사들의 눈썹을 흘려보내지 말고
가여운 사월
가여운 사월
노래를 부르렴

내가 붙여 놓은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보렴
감당되지 않는 슬픔은 내가 보낸 것이 아니란다
스스로의 기도를 가혹하게 하지 말고
벽화를 지우며
또 하나의 벽처럼 서서 울지 말고
설탕이 타는 냄새가 사라지면
오븐을 열어 파이를 꺼내어 자르렴
나눌 수 있는 만큼 잘게 잘라
탁자에
강가에
올려두고
꺼진 조명처럼
두꺼운 자물쇠가 채워진 강당처럼
차분하게 노래 부르렴
가여운 사월
가여운 사월
가여운 사월

- 사순절 / 성동혁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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