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청혼'
오래전 지구에서는 외계함대가 침략해올 거라는 예언이 돌았다. 이에 지구인들은 우주함대를 건설해 목성에 파견했다. 그로부터 30년 후 외계함대가 정말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한편 주인공인 ‘나’는 목성에서 궤도연합군 작전장교로 복무 중이다. ‘나’에겐 연인인 ‘너’가 있고 언젠가 ‘너’와 지구로 가 함께 할 날들을 상상하며 오늘도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전투 준비로 바쁜 궤도연합군에게 지구에서 감찰군을 파견했다. 감찰군은 연합군의 활동을 사사건건 감시하며 통제했다. 심지어 연합군의 사령관인 데 나이 장군의 자리마저 박탈했다. 이에 나는 수수께끼의 적, 그 적보다 더 무서운 감찰군 사이에서 회의를 느낀다. 그런 와중에 외계함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두 번째 전투가 벌어지는데.
배명훈 작가의 소설 <청혼>이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11년 만에 재출간했다. 전작인 <미래과거시제>를 재밌게 읽은 사람으로서 리뷰 기회가 찾아왔을 때 마다할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은 목성 근처 소행성대에서 궤도연합군 작전 장교로 복무 중인 '나'가 지구에 사는 연인에게 보내는 12편의 편지로 이루어졌다. 거대한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쪽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다른 한쪽에서는 말랑말랑한 연애담이 펼쳐지는데 그 조합이 마치 와인과 치즈처럼 찰떡이다(역시 ‘전쟁’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는 ‘멜로’다). 짜임새 있는 전술과 마치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생생한 묘사. 그런 와중에도 가랑비처럼 스며드는 애틋하고 서정적인 러브 스토리는 독자로 하여금 손에서 책을 놓기 어렵게 만든다.
“교전이 끝날 때까지 나는 전장 외부를 비추는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서 있었어. 수천 개의 빛줄기가 쏟아져가고 또 쏟아져오고. 문득 비 내리는 서울 거리를 50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던 때가 떠오르더라. 너의 곁에서 말이야” (64p)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어.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또 있었던가. 번쩍번쩍, 그 거대한 시공간의 장벽을 가로지르며 온 우주를 다 밝힐 듯 요란하게 반짝이는 우주의 빗줄기. 버글러 기동 중인 아군 함선들. 루시퍼 입자에 이끌려 아마도 연옥 입자를 짙게 흩뿌리며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에 양쪽 함선들이 내뿜는 마지막 불꽃. 이걸 너에게 꼭 한번 보여주고 싶다고 말해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우주 어디에서도 다시는 이런 광경이 펼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옳은 걸까. 그야말로 잔혹하도록 아름다운 광경이었어. 빛을 나르는 악마들의 무도회처럼.” (65p)
“왜 우리는 서로의 우주를 배우려 하지 않을까?”
소설 <청혼>은 우주인과 지구인에 대한 재밌는 묘사로 이야기의 운을 뗀다. 주인공인 ‘나’는 우주에서 나고 자란 우주인이다. 이들에겐 ‘위’와 ‘아래’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다. 우주에는 중력이 없어 어느 방향으로든 고르게 힘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구에서 나고 자란 지구인들에겐 우주의 무중력 환경이 낯설다. 중력의 영향으로 땅에 발을 딛고 살았던 이들에겐 발을 딛을 바닥이 없다는 사실이, 위아래가 없다는 사실이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멀미를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지구인들을 보며 우주인들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자주 보였다.
물론 이는 반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라서 우주인이 지구에 갔을 땐 반대로 지구인들이 우주인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너를 만나러 지구에 갔을 때 ‘나’는 처음 느껴보는 중력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결국 너와의 데이트를 위해서는 네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야 했다.
같은 인간이지만 우주인과 지구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살아온 환경이 따르기 때문이다. 중력이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중력의 존재 여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중력 말고도 이러한 장벽의 역할을 하는 게 여럿 존재했다.
궤도연합군의 사령관인 데 나다 장군은 누구보다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비록 떠밀려서 오긴 했지만 사령관으로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허나 그런 그의 진심과 달리 지구는 데 나다 장군을 의심하고 있다. 그가 언젠가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며.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를 지휘하고 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긴 했다. 다시 말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이끄는 함대가 되려 그의 진심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된 것이다.
‘나’와 ‘너’ 사이에도 장벽은 존재한다. 목성에 있는 내가 너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17분 44초가 걸렸다. 여기에 답변까지 받으려면 17분 44초가 또 걸렸다. 한 번 말을 주고받는데 35분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35분 28초가 지난 뒤에는 그리운 그 사람의 마음이 그때 그곳에 한결같이 머물러주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36p)
장벽은 두 사람이 만났을 때도 존재했다. ‘나’가 170 시간을 날아와 지구에 방문했을 때 애정으로 가득 찬 마음을 담아 너를 사랑하노라 말했지만 ‘너’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연인 간의 흔하디흔한 사랑놀음으로 여겼다. 반대로 ‘너’가 ‘나’를 만나러 왔을 때는 일의 파도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나’는 ‘너’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들었고, 결국 기다림에 지친 ‘너’는 때가 되면 찾아오라는 쪽지를 남기고 다시 떠나버렸다.
외계함대와 궤도연합군 사이에도 장벽이 존재했다. 그들의 장벽은 아득한 거리였다. 첫 전투 당시 두 진영은 30광초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그 말인즉 적의 위치를 레이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30초의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정보를 수신한 30초 후엔 적이 이미 기동하여 그곳에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반면 외계함대는 30광초는 우습다는 듯 능숙하게 궤도연합군을 상대했다. 결국 30초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궤도연합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패퇴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벽을 통해서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배명훈 작가의 전작인 <미래과거시제>는 주인공 은경과 시간여행자 은신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일직선으로만 흐르는 은경과 달리, 시간여행자인 은신의 시간은 3차원의 구처럼 존재한다. 우주인에게 위아래의 개념이 불필요하듯, 시간여행자에게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시간여행자에게 각각의 시간은 언제나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은경과 은신은 어떻게 만나 사랑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상대방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은경이 은신을 다시 만났을 때 그는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은신은 일상 속 평범한 행동들을 서로 다른 속도로 마임하여 자신의 시간을 빠르게, 혹은 느리게 조절했다. 은경은 그 공연의 유일한 관객이 되어 그 시간을 함께 했다. 은신의 시간 안에 은경이 들어간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질 수 있었고, 머지않아 이번엔 은신이 은경의 시간 안에 들어오며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봄꽃처럼 무더기로 피워냈다.
이러한 테마는 <청혼>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소설의 대부분은 첫 전투에서 패배한 궤도연합군이 외계함대에 반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선 아군의 함선이 무작위의 패턴으로 기동할 수 있는 시스템(버글러 기동이라 부른다)을 도입했다. 어차피 적도 30초 후의 아군의 위치를 예측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무작위로 기동한다면 적들이 그랬던 것처럼 30초 후의 아군 위치 정보에 혼란을 줄 수 있었다. 나아가 적의 레이더를 속이기 위해 (함선과 소행선을 구분하지 못하도록)함선을 소행성대에 숨기거나 ‘디코이’라 불리는 교란체도 활용했다.
적의 레이더를 속인 다음엔 곧바로 적을 파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고성능 천체 망원경을 활용해 적의 진영과 움직임을 관측했다. 그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적의 공격 지점을 도출했고 나아가 적들의 뒤에 중력렌즈가 있다는 사실을, 그 너머엔 파멸의 신전이라 불리는 적의 본거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궤도연합군은 외계함대와의 간극을 좁혀갔고, 마지막 전투에 이르러서는 값진 대승을 얻을 수 있었다. 상대를 이해함으로써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든 것이다.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극중 ‘나’가 ‘너’에게 반지를 보내며 한 말이다. 분명 달콤한 말인데 가만히 뜯어보면 뭔가 좀 이상하다. 사랑한다면 옆에 있어야지 왜 저 멀리 있는 별이 된다는 걸까.
여섯 번째 전투를 치를 때쯤 데 나다 장군에 대한 감찰군의 의심은 극에 달했다. 오죽하면 적이 아닌 장군의 기함을 조준하고 전투에 나섰을까. 그러나 데 나다 장군은 기가 막힌 전술로 자신을 겨누고 있던 감찰군의 칼끝을 적을 향해 돌렸다. 그것도 모자라 감찰군을 선봉 삼아 적들과 맹렬한 전투를 벌였다. 자신에 대한 의심을 기회 삼아 지구를 향한 자신의 진심을 증명한 것이다.
허나 전투가 승리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여전히 데 나다 장군과 궤도연합군을 의심했다. 오히려 감찰군이 피해를 입은 것을 명분 삼아 조사군을 파견했다. ‘나’는 그들이 곧 데 나다 장군이 반란군이라는 조작된 진실을 만들거라는 걸 직감했다. 그토록 노력했건만 장벽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존재했다.
조사군이 온다는 소식에 남은 사람들은 목성을 떠나기로 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목적지는 ‘파멸의 신전’이었다. 궤도연합군을 향한 지구의 의심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궤도연합군 전체가 반란군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아가기로 했다. 적을 이해하고, 이해하여 승리하고, 승리하여 지구를 지키고자 했다.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주겠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었다. 별은 묵묵히 빛난다. 별을 바라볼 누군가에게 별이 무슨 의미일지는 모르겠지만, 관심이나 가져줄는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별빛이 닿을 순간을 기다리며 억겁의 시간을 견딘다. 아마도 ‘너’를 향한 ‘나’의 사랑 역시 그럴 것이었다.
최초의 폭발이라 불리는 빅뱅 이후로 우주는 꾸준히 팽창했다. 처음엔 머리카락보다 얇았을 별들 간의 거리가 이제는 빛의 속도로도 수십, 수백, 수천년을 가야 겨우 닿을 정도로 멀어졌다. 어쩌면 사람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닐까?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느 순간 사그라 들었고, 그 대신에 손가락질과 험한 말들이 빈 자리를 채웠다.
“왜 우리는 서로의 우주를 배우려 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손쉽게 상대방의 우주로 날아갈 수 있게 된 시절이 또 언제 있었다고?” 책장을 덮은 후에도 이 한 문장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글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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