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가 아닌 쉼표
세 달 전쯤이었다.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팀장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던 약속을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실현했다. 간단히 식사나 하고 말 줄 알았는데 팀장님은 대뜸 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알고 보니 팀장님 지인이 아마추어 밴드 공연을 하는데 그 공연의 티켓을 얻어온 것이었다.
공연은 홍대의 작은 공연장에서 진행되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 육중한 철문을 열자 에어컨의 찬 바람과 함께 묵직한 베이스 소리가 온몸을 덮쳤다. 마지막으로 밴드 공연을 본 게 대학생 때 다녀온 락 페스티벌이었으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지러운 색색의 조명 아래 저마다의 악기를 손에 쥔 다섯 사람이 리듬에 맞춰 몸을 까딱거렸다. 그 움직임에 맞춰 나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잘 모르는 노래였지만 어쨌든 공연은 즐거웠다. 어렸을 때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실용음악과에 가기 위해 매일 연습실에 출석했던 그때. 피아노 한 대가 겨우 들어갔던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때.
100% 완벽한 공연은 아니었다. 한 번씩 실수도 있었다(아마추어 공연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건 그런 실수들을 개의치 않아 한다는 것이었다. 무대에서 실수하면 어쩌나 계속 걱정하던 팀장님의 지인도 막상 무대 위에서는 작은 실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내내 환한 얼굴이었다. 실수가 있더라도 오히려 그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팀장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 서툰 연주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순전히 즐거워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사람들.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해서 그랬을까. 내가 피아노를 쳤을 땐 작은 실수에도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그냥 레슨일 뿐인데도 다신 기회가 없을 것처럼 필사적으로 매달렸다(둔재라도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진짜로 중요한 건 그때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었는데. 만약 그랬더라면 좋아했던 음악을 좀 더 오래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씁쓸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벌써 2025년의 마지막 주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간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석 달 전 일이 떠올랐던 건 대관절 무슨 이유였을까.
여러모로 이번에도 쉽지 않은 한 해였다. 시간 참 빠르다고 하지만, 하루하루를 곱씹다 보면 이 많은 일들이 한 해 동안 있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올해는 일을 참 많이 했다. 이래저래 큰돈이 들어갈 일이 있기도 했고, 요 몇 년 간 건강 핑계로 성실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터라 의도한 바도 있었다. 그러니 나름대로 올 한 해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얼마 전, 개인 사정으로 대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졸업 후 3년 만의 방문이었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캠퍼스는 많이 변해 있었다. 도서관 정원엔 처음 보는 장식물이 세워져 있었었고, 자주 갔던 광장의 간판도 바뀌어 있었다. 자주 갔던 식당, 카페, 빵집, 인쇄소도 대부분 처음 보는 가게들로 바뀌어 있었다. 무엇보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왜 그리 아리게 다가오던지.
어렸을 땐 좋아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 영화랑 책도 많이 봤다. 일주일에 영화 세 편은 기본으로 보았고, 남는 시간엔 항상 도서관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영화든, 책이든 뭐든지 한 편이라도 보면 다행이다. 이는 오랜 취미인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쓰고 싶었던 것들이 참 많았는데, 일주일에 한 편씩은 뚝딱뚝딱 써댔던 것 같은데 이제는 한 달에 한 편 쓰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대신 그 솜씨를 클라이언트들한테 메일 쓰는 데 낭비하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여전한데 내 안의 문장이 이젠 모두 바닥난 것마냥, 애써 정신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아도 멍만 때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무언가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는 것만 같아 괜스레레 씁쓸해진다.
지난해, 나는 20대의 절반가량을 보낸 직장을 떠나 마음 맞는 사람들과 새로운 시작에 나섰다. 올 4월엔 우리 집 막둥이(고양이) 보리를 비로소 산에 놓아주었다(수목장으로 이장했다). 10년간 끌어왔던 한 사람과의 약속도 드디어 끝났다. 참 많은 이별이 있었고, 많은 것들이 달라진 한 해였다. 그러니 이젠 나도 달라져야 한다는 직감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그러고 보니 스물두 살에 군 입대를 앞두고 쓴 일기가 있다. 그 일기의 마지막에 나는 이렇게 썼었다. “부족하지만, 그리고 미진하지만. 어쨌든 내 인생의 1분기는 이제 끝났다. 2년은 2분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지쳐있었다. 공부에도, 일에도, 사람에게도. 그래서 동기를 찾아내기를 나는 바란다. 2분기의 삶 역시 무사히 나아갈 동력을 그곳에서 얻기를 바란다.” 그로부터 1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이젠 2분기의 마지막 문턱 앞에 서 있다.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키키는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된다. 마녀라면 하늘을 나는 건 당연했기에 그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이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지 고민해 본 적 없던 키키는 깊은 슬럼프에 빠진다. 그 모습이 글 한 줄도 쓰기 어려워하는 지금의 나를 보는 것 같다.
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키키는 다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참 많은 질문과, 고민과, 눈물이 있었지만 키키는 기어코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찬란하게 날아올랐다. 나 역시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잃어버린 것들을 대신하여 다시 하나씩 채워보려 한다. 다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려 한다. 당장은 글을 쓰기 어렵겠지만 그 대신에 필사를 시작하려 한다. 그동안 닫아왔던 빗장을 풀고 새롭게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 한다.
다가올 3분기는 매우 긴 여정이 될 거다. 그러니 더 착실한 준비가 필요할 테지. 계속 잃어버리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존재만큼은 잃지 않도록. 내가 계속 ‘나’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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