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_나의 아버지

2018.07.06. (D-200)

by 뮤노
너의 세상은
지금 아빠의 서툴고 작은 걱정들 들리지 않는 행복한 세상
그렇게 변하길 바래

-SG워너비‘s <탄생> 가사 中-


상병 휴가를 나왔다. 다음 달이면 병장이 된다. 문득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모처럼 만끽하는 늘어진 이 시간이 텁텁하게만 다가온다. 매일 같이 영어 단어를 외우고 글을 쓴다. 전역 후엔 어떤 걸 해야 할까.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현실의 감각이 예민하게 돋아난다. 그러자 막연하게 두렵다. 방금까지도 즐기던 게임은 이젠 지루하고 시끄럽기만 하다. 오랜만에 작업을 해볼까도 싶지만 머릿속은 새하얗기만 하다.


그러던 차에 어머니가 대뜸 내게 같이 카페에 가지 않겠냐고 물으신다. 마침 아버지는 저녁약속이 있다 하시고, 사회복무요원인 남동생이 퇴근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밥은 아침에 해놓은 게 많이 남아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 모처럼의 여유에, 그 제안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웬일로 오늘은 학교를 가지 않았던 여동생까지 더해 우리 셋은 바다를 마주한 근사한 동네 카페로 간다. 동생은 에이드를, 어머니는 카페라떼를, 나는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며칠 전에 나간 화재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나, 뉴스에서 보았던 이런 저런 것들을 이야기 한다. 조금 있으면 수능을 치루는 동생을 위해 고민상담 비스무리한 것도 해준다. 그러다가 우리들 사이에 갑자기 ‘아버지’가 화제로 튀어 나온다. 수능을 반년 정도 남겨두고서,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대책 없는 여동생을 두고 아침에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신 염려를 이야기 했을 때였다. 어머니는 우리는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오랜 꿈을 이야기 하셨다. 그녀가 말하길, 아버지는 사실 국문학과를 가고 싶어 하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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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때였을까. 한 번은 아버지께 대든 죄로 두드려 맞은 적이 있었다. 겨우 화를 푸신 아버지는 나와 동생들을 앞에 세워 두시고는 갑자기 넋두리를 하기 시작하셨다. 조금 있으면 성년이 될 당신의 자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는지, 아버지는 그날 밤이 다 새도록 당신의 젊은 날을 이야기 하셨다. 배를 탔던 나날들, 전날에 과음을 했던 것 때문에 면접에서 곤란했던 일 등등.


그런 아버지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는 언젠가 사촌형이 젊었을 적의 아버지에 이야기하던 걸 떠올렸다. 그가 말하길, 배를 타셨던 아버지는 언제나 장발 머리를 고수하셨다고 했다. 멋도 멋이었겠지만, 한 번 배를 타면 보통 몇 달씩은 나가야 하는 선원이 머리를 깎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나. 어쨌거나 사촌형은 젊었을 적의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 하셨다. 당신의 아버지 못지않게(혹은 그보다 더)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자 정말 멋있었던, 그래서 닮고 싶었던 그런 사람으로.


나의 아버지는 해양대학교를 나오셨다. 어머니가 말하길, 문학도를 꿈꾸고 교편을 잡고파 했던 아버지가 단 1%의 관련도 없는 배를 선택한 건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 나의 조부모, 그러니까 아버지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렸던 13살이었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집안의 막둥이인 동시에 늦둥이였다. 이미 결혼까지 하여 따로 살림을 차린 큰아버지와는 무려 20살 차이가 났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큰아버지의 집에 얹혀살았다. 물론 가족이란 이름이 그들 사이의 끈이 되어주었겠지만 아마도 예상컨대 아버지께 그 어린 시절은 결코 나긋한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유년 시절은 끝이 났다. 아직은 어리광이 더 익숙할 나이에 그는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렸다.


이후 대학에 갈 때가 되자 서울에 있는 대학의 국문학과를 알아보던 아버지에게 작은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지금 네 형편에 서울에 있는 학교가 말이 되니.’ 아버지는 단지 학비 정도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가족이란 이름이 줄 수 있는 인내심은 아마도 거기까지였나 보다. 이제 진짜 성년이 될 아버지는 하루 빨리 독립을 하셔야 했다. 책 속에 파묻혀 사는 낭만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후부터는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결국 당신 형님의 뜻대로 해양대학교를 들어가셨다. 그렇게 20대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다 30대에 이르러 지금의 어머니를 만나 뭍으로 돌아왔다. 이후 두 사람은 짧은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우리 삼남매를 키워냈다. 지금 아버지의 나이는 벌써 50대의 절반을 지나고 있다. 그토록 속을 썩이던 당신의 막내딸은 내년이면 스무 살 성인이 된다.



어렸을 적엔 음악을 하고 싶었다. 우연히 다시 시작한 피아노에 흠뻑 빠졌었고, 나만의 노래를 만드는 일에도 재미를 들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작곡가’라는 꿈이 생겼다. 한창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유행할 때였으니, 어쩌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입시를 도와줄 학원을 찾아야 했고, 학원을 다니기 위해선 야간자율학습을 빼야 했다. 그러려면 부모님의 굳건한 지지가 필요했다. 장담컨대 그것은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큰 반항이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선선히 음악을 하고 싶다는 내 말을 지지해주었다. 하긴 애초부터 나를 다시 피아노 앞으로 돌려놓은 사람도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엄한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그 분의 상식에서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하겠다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공부하기 싫다는 핑계일게 뻔하였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그 일은 쉽게 해결 되었다. 평소처럼 학교를 가려던 어느 날 아침에 어머니는 나를 조용히 불러 이따 저녁에 학교로 찾아가겠다고 하셨다. 같이 학원을 알아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아직 아버지에겐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은 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다. 당신 아들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를, 그러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 지를. 사실 학원 이야기도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라 했다.


재작년쯤 나온 SG워너비의 <탄생>을 들어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가 제일 사랑한 사람을 닮아있는, 내가 제일 기다린 사람을 닮아있는, 너를 보며 이룰 수 없던 날들. 너 하나로 이루겠지.” 노래를 들으며 나는 그날을 곱씹는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나의 말을 아무런 반대도 없이 선선히 들어주신 아버지의 속사정을 그날에 나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단지 허락을 받았다는 기쁨에 취했을 뿐이었다. 벌써 6년이나 흘러버린 오늘에서야 겨우 짐작할 뿐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가지지 못한 기회를, 아들에게서까지 뺏고 싶진 않으셨던 걸까. 나의 불행은 나로써 끝이다. 내 형님과 다르게 나는 너를 지지해줄 수 있노라. 그렇게 말씀하고 싶으셨던 걸까.



가족이니까 오히려 알지 못한다. 어쩌면 가족이란 이름으로 우린 서로에게 무관심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조금씩 용인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물며 나조차도 나를 모르는데, 같이 지낼 뿐 명백한 타인인 가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문득 훈련소에서 쓴 편지가 생각난다. 어른을 두고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고 체념하는 것’이라 했다. ‘지나간 모든 것들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라고 적었다. 거기에 나는 몇 가지 문장을 더 추가한다. ‘자라나며 외면해왔던 부모의 역사를 조금씩 마주하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한 가능성을 기꺼이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아버지는 하루의 끝에 다다라서야 집으로 돌아오신다. 어디서 한 잔이라도 하고 오신 듯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는 쑥스러운 미소가 한 가득이다. 아버지는 이젠 제대를 바라보게 될 만큼 군 생활을 해낸 아들을 바라보며 이후의 계획을 물으신다. 아직은 불확실한 몇 가지를 말씀 드렸더니 대뜸 공무원 시험을 보진 않겠냐고 물으신다. 공무원을 하더라도 분야를 잘 찾아보면 네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나는 그 말씀이 장난임을 안다. 오랜만에 집에 방문한 아들에게 거는 대화의 노력들 중 하나임을 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학창 시절에 음악을 하겠다던 무모한 나를 묵묵히 뒤에서 지원해 주시지도 않으셨을 테지. 가만히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언젠가 보았던 졸업사진 속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종종 명절날이면 뵈었던 아버지의 가족들은 나를 두고서 점점 그를 닮아간다고 했다.


그 노래는 이렇게 끝이 난다. ‘보이지 않을 때 우린 손을 잡았고, 멈추고 싶을 때 우린 서로를 안았지. 그렇게도 사랑한 우리 시간, 너의 이름으로 다시 이어져.’ 나는 '나'이기도 하지만, 아버지(그리고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가능성’이기도 하다. 가족의 역사라는 건 그렇게 이어진다. 말하자면 아버지에겐 내가 있었다. 그러니 잊지 말자. 나는 아버지의 자부심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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