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5. (D-221)
시간이 좀 남아 이제껏 쓴 글들을 하나씩 훑어본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인데... 왜 이렇게 하나같이 어둡지? 딴에는 일기랍시고 쓴 글들이 죄다 무겁고 슬프기만 하다. 진지한 사람이긴 하지만 이럴 의도는 아니었다만. 이러다간 의무소방원에 대해 오해가 늘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기도 제법 사람 살만한 좋은 곳이라고. 이러한 이유로 오늘은 분위기를 좀 바꿔서 의무소방원의 장점에 대해 각 잡고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의무소방원으로 복무하면서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장에 생각나는 것만 나열하더라도 요만한 여백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우선 현역에 비해 자율적인 분위기와 유연한 선후임 관계가 있다. 개인시간의 충분한 보장과 함께 사회와 격리되지 않은 곳에서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뿐만 아니라 (본인의 성적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본인이 원하는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과 비교적 많은 외박 및 휴가일수 역시 의무소방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여 대답하자면, 의무소방원으로서 근무하는 동안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보람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만약 당신이 어떤 재난 현장을 목격했다면 그 속에서 의무소방원을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소방관들을 도와 각종 재난현장에서 환자들을 구호한다. 부상자들을 처치하고, 필요하면 심폐소생술도 실시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현장으로 달려가 환자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한다. 물론 일반 병사들과 의경들의 노고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자신들이 펼친 노고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가 어려운 그들에 비해 의무소방원은 시민의 바로 곁에서 그들의 안전을 지킨다.
한 번은 집에서 협심증으로 인한 발작으로 쓰러진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한 적이 있었다. 다른 출동들에 묻혀 서서히 그 기억이 잊혀져 갈 쯤 우리가 이송했던 그가 소방서를 찾아왔다. 그가 손에 든 봉지 속에는 간식거리가 가득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제가 살았습니다. 감사하다고, 그 말 하려고 왔어요.'
남자의 한 마디가 가져온 파문이 길었다. 그가 돌아가고, 나는 언젠가 보았던 이국종 교수의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을 떠올렸다. 이국종 교수는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어머니의 그 말씀을 떠올린다고 했다. “별 볼일 없는 수많은 의사들 중에서도 네가 참 하바리인데 그런 별 볼일 없는 네가 네 주제에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 정도의 임팩트를 낸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라.”
‘하트세이버(Heart Saver)’라는 게 있다. 직역하자면 ‘심장을 구한 사람’쯤 된다. 이는 갑작스런 심정지로 쓰러진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처치를 실시하여 구명한 사람들에게 정부에서 내려주는 일종의 인증서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심정지 환자의 소생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동명의 드라마를 통해 더 유명해진 ‘골든타임’이란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은 5분이다. 만약 그 안에 적절한 응급처치를 실시한다면 환자의 소생률은 50%에 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뇌사가 진행되는 건 물론, 소생률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5분 정도가 소요된다. 때문에 주변 목격자들의 신속한 응급처치가 환자 생존에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일반인 심폐소생술 실시율은 12.1%로 주변국에 비해 매우 낮다.
이러한 이유로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에 관한 의식을 드높이고자 도입된 것이 바로 ‘하트세이버’ 제도다. 2008년에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의무소방원들에겐 특박과 함께 명예까지 얻을 수 있는 일종의 훈장과도 같다(때문에 입대 초기의 많은 의무소방원들이 하트세이버를 따기 위해 매달린다. 나 역시도 그랬고).
내 경우엔 작년 8월과 9월에 나간 구급출동에서 각각 하트세이버를 받았다. 그 짜릿했던 순간은 1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동네의 조그만 스크린 골프장에서 발생한 환자였다. 지인들과 평범하게 골프를 즐기던 남자는 갑자기 흉통을 호소하더니 이내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져버렸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남자의 호흡과 의식은 이미 멎어있는 상태였다. 허망하게 풀린 동공의 위로 뒤틀린 눈가가 쓰러지기 직전 그가 느낀 고통을 짐작시켜 줄 뿐이었다. 남자의 하반신에선 샛노란 오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우선 급한대로 가슴 압박부터 시작했다. 반장님들은 AED를 환자와 연결한 뒤 심전도를 체크하셨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내린 AED의 판정은 제법 희망적이었다. ‘전기충격치료가 필요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의 심장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곧이어 전기쇼크 버튼 위로 주황색 불빛이 깜빡였다. 모두 환자로부터 떨어지라는 말과 함께 반장님이 버튼을 힘껏 눌렀다. 짧은 경련이라도 있었던 듯이 환자의 몸이 살짝 들썩이더니 뻣뻣하게 굳었다.
이어서 심폐소생술을 재개하라는 안내음이 울렸다. 나는 다시 환자의 가슴팍을 압박했다. 손바닥 끝에서 환자의 갈비뼈들이 생생하게 부러져 나갔다. 손은 그 사이로 심장을 향해 쑥쑥 들어갔다. 다행히도 방금 전에 주었던 전기 충격 때문인지 환자의 호흡이 미약하게나마 돌아왔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이르다. 반장님들은 옆에서 서둘러 이송을 준비했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압박을 하며 병원으로 향하는 5분만큼 긴 것도 참 드물다. 환자는 마치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기라도 하듯, 의식이 침침한 가운데에도 호흡을 하려 애썼다. 반장님은 그런 그의 코와 입으로 신선한 산소를 엠부백을 통해 짜주었다. 가슴 압박은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흔들리는 차에서 하는 심폐소생술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넘의지지 않으랴, 가슴 압박하랴. 불편한 자세의 몸을 지탱하느라 허리는 통증을 호소했다. 현장에서부터 지금까지, 10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진 심폐소생술에 어깨는 역기라도 얹어놓은 양 무겁기만 했다. 이미 힘이 빠져버린 팔은 사실상 체중에 의지해 환지의 가슴팍에 힘을 가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살고자 애를 쓰는 그의 입술을 보자, 철저한 무신론자라 믿었던 내 안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기도가 흘렀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우린 모두 전쟁 중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간호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처치실로 안내했다. 환자를 신속하게 배드로 옮기고서, 이제부터 우리를 대신해줄 그들을 위해 서둘러 몸을 비켜주었다. 더운 날씨에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살에 닿는 속옷의 까칠한 속감이 그리 좋지 않았다. 환자를 데려다주었던 들 것에선 지린내가 진동했다. 구급차 내부는 마치 폭격이라도 얻어맞은 마냥 사용한 장비들로 난장판이었다. 이걸 언제 다 치우지. 돌아가면 들 것부터 세척해서 말려놔야할 판이었다.
하지만 그 막막함의 가운데에서도 처치실을 향해 뻗는 내 시선은 돌리지 못 했다. 처치실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CPR이 이어지고 있었다. 응급실에 있는 모두의 관심이 가림막 너머로 모였다. 보호자들은 침묵 속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째깍째깍, 초조한 가운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남아 있었다. 응급처치는 신속했고 AED의 전기충격 역시 제대로 들어갔다. 이송도 제법 매끄러웠다. 그러니까 사람으로서, 119구급대원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건 끝이 났다. 이제부턴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살려야한다는 책임감보단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더 필요한 순간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구급차로 돌아가고자 발을 떼었을 때였다. 성난 짐승마냥 누군가 내지르는 포효가 낮게 일었다. 고개가 반사적으로 처치실을 향해 돌아갔다.
마치 몽타주마냥 풍경들이 조각조각 깨어져 눈에 들어오던 것이 기억난다. 한 남자가 배드 위에 앉아 있었다. 입에는 인공호흡기를 매달았던 그는 답답하다는 듯 박살난 가슴을 자꾸만 쥐어뜯었다. 그런 그를 의료진이 안심시키며 도로 침대에 눕히고자 애를 썼다. 인공호흡기에 어렴풋하게 맺혀있던 핏방울들이 선명하다(그게 왜 거기에 묻어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명장면이 내 앞에서 재연되고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는 숨을 쉬었다. 스스로 일어나 몸부림을 쳤다. 그렇게 그는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이윽고 겨우 진정이 된 그는 온갖 장비들을 몸에 주렁주렁 단 채로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그는 아마 수술을 받고, 곧 중환자실에 오를 것이다. 어느 순간 일반 병실로 옮기더니 이번엔 퇴원으로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입대 6개월 만에, 그는 내가 처음으로 살려낸 사람이었다.
하트세이버는 그 해 11월에 받았다. 환자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고 일주일 후, 환자의 가족들이 걸어왔다던 전화가 생각난다. 그들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사람의 근황을 전하며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들은 우리더러 ‘좋은 사람’이라고 해주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만, 의무소방원의 생활이 매순간 즐거움의 연속은 아니다. 편한 군 생활을 기대하고 들어온 거라면 큰 오산이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마주하는 건 결코 가볍지 아니다. 군대라는 이유로 부조리에 침묵하고 적응하는 일 역시 유쾌하지는 않다. 일기의 처음에서 내가 그렇게 쓰지 않았던가. 의무소방원은 사회의 가장 약하고 추한 부분을 들여다본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무소방원인 게 좋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걱정과 우려가 섞인 목소리를 보내더라도 직원들과 함께 나가는 출동이 좋다(물론 귀찮은 것도 좀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사람을 구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니까. 내가 도운 사람들이, 혹은 그 가족들이 지나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감사합니다’라는 그 한 마디로도 속물 같고, 실망으로 가득한 내 자신이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까.
시간이 흘러 길을 걷다가 내가 구해낸 그 두 명을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한 번쯤 한다.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들을 알아본다. 특별히 말을 건넬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나는 되게 소심한 사람이거든. 다만 그들을 지나쳐가며 자연스레 떠오를 미소만은 나는 숨기지 않으련다. 살아주어서 다행이오. 당신을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다니, 신께 나는 아직 괜찮은 사람인가 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