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4. (D-192)
장마는 지나갔고, 본격적인 여름이다. 이제 막 훈련을 마치고 들어온 직원들의 눈빛에선 피곤함이 역력하다. 근래 몇 차례의 대형화재 참사 후, 예민해진 소방본부는 매일 3시간 씩(주말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현장 인력들에게 자체적으로 훈련을 할 것을 주문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본격적으로 무더워지는 7월이나 8월쯤이 되면 잠시나마 훈련을 중단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본부에서는 별로 그럴 마음이 없는 듯하다. 다만 시간을 좀 조정했을 뿐이다. 결국 이번에도 희생은 현장의 직원들이 하는 가 보다. 걸핏하면 방화복을 껴입고 훈련에 매진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안쓰럽고 감사할 뿐이다.
선풍기 하나씩을 차지하고는 땀을 훔쳐내는 그들을 바라본다. 팀장님은 내게 냉장고에 넣어둔 수박이나 잘라 먹자며 꺼내오라 하신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잠시, 냉장고로 향하기가 무섭게 출동벨이 성급하게 울린다. 반갑지 않은 거동불편 환자다. 대부분이 단순 이송만을 요하는 비응급 상황이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병원에 갈 수 없는 처지라 이송을 차마 거절할 수 없는 사람들. 계륵이다. 반장님들의 투덜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사무실을 나와 구급차에 올랐다. 후끈하다 못해 텁텁하기까지 한 더운 공기가 불쾌하다. 진짜 여름은 여름인가 보다.
기왕 도착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장비들을 챙긴다. 기본처치 가방과 들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파트 입구에는 최근 지어진 아파트들이 대개 그렇듯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환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반장님은 환자에게 문을 좀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환자는 몸이 너무 아파 도저히 움직일 수 없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비밀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녀는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억이 나질 않아요.......”
순식간에 모두가 벙찐 얼굴이 되었다. 혹시 할머니가 사시는 집이 아니세요? 반장님은 정중하게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다른 보호자는 계시지 않으냐고, 질문을 바꿔 건넸다. 짧은 침묵 후에 그녀는 혼자 살고 있노라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마음속에선 작은 의심이 자라났다. 치매 환자일지도 모르겠다. 반장님은 알았다며 전화를 끊은 뒤, 관리사무소의 번호를 찾았다. 강제로라도 들어갈 셈이었다. 때마침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주민이 다가와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 환자의 집은 꼭대기 층에 있었다.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환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현관 비밀번호를 물어보았다. ‘설마’가 실망하지 않도록 똑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환자는 현관 비밀번호 역시 기억해내질 못했다. 슬픈 예감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모양이다. 환자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침착하게 혹시 알고 있는 보호자 연락처는 없는 지 물었다. 대답 대신에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구조대를 불러 현관문을 부수거나, 환자가 직접 문을 열어주거나. 우리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문을 부수는 건 우리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환자 본인에게도 가난한 사정을 생각하면 너무 가혹하지 싶었다. 반장님은 천천히 환자를 달랬다. 그리고 덧붙였다. 힘드시겠지만, 어떻게든 일어나셔서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도와줄 수가 없다고. 잠시 후 환자는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얼마나 기다렸을까. 정적에 지친 귓구멍 속으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틈입했다. 반장님이 기다렸다는 듯 현관문을 두드리며 환자를 불렀다. 조그만 응원이라도 그녀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이윽고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연로한 할머니의 얼굴이 우리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와 반장님이 재빨리 달려들어 할머니를 부축했다. 파리하게 말라붙은 할머니의 눈가엔 눈물 자국이 또렷했다. 엉성하게 흘러내린 그녀의 바지를 추슬러주고, 환자를 들 것 위로 옮겼다. ‘아이고, 아이고.......’ 고작 5미터 남짓의 전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할머니는 자꾸만 신음을 내었다. ‘고생하셨네. 할머니 고생하셨어.’ 반장님이 젖은 목소리로 할머니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녀의 고통을 달랬다.
전체 노인 인구 중 독거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가 훌쩍 넘는다. 구급차를 타면서부터 방문한 환자들의 대부분은 15평 남짓한 좁은 공간(혹은 방 한 칸)에서 홀로 사는 외로운 노인들이었다. 노부부가 함께 거주하는 경우는 차라리 다행인 쪽에 속했다. 오늘 내가 만난 환자는 그 넓은 집에서 홀로 끙끙 앓다가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간신히 119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식들이 있었겠지만 알릴 방법이 없었으니 있는 것만도 못했다. 이따금씩 자식들이 연락할 때가 그녀가 가족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냥 방치되고 있던 것이다.
작년에 만난 어떤 할머니는 허리 수술을 한 이후로 몇 달 째 침대 위에서만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가 일으켜 세워주지 않으면 홀로 움직이는 일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이는 담당 사회복지사뿐이라고 했다. 명절을 맞이해 생필품을 전달하기 위해 만난 어느 불우한 이웃 역시, 그를 만나러 오는 이는 사회복지사들뿐이라고 말했다.
그들 모두 방치되고 있었다.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 가족을 돌보며 더 나은 시대로 나아가고자 열과 성을 다해 발버둥 치던 이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OECD 기준 노인 빈곤율 1위의 국가다. 사는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주는 한 줌의 보조금에 의지해 여전히 변하지 못한 시대의 추함과 비참함을 아직도 견뎌내면서. 그리고 어느 날에 그들은 까맣게 썩어문드러져 김치 썩는 냄새와 함께 우리 모두가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걸 상기 시켜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가족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의 방치는 사회의 개인화와 파편화가 가져온 결과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만큼 각자도생의 시대 역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들의 가족들도 살아남기 위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분투 중일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청년들을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할지도 모르는 불행한 세대로 규정하고 있으니깐. 시간이 지나 사람이 변한 게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몰려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건 구조의 문제다. 막대한 노인 복지 예산을 편성하고. 더 많은 요양원과 보호시설을 설립하며, 더 많은 수의 사회복지사들을 채용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그런 문제. 단순히 그 때가 더 좋았지 라며, 편리하게 넘길 수는 없는 문제. 그래서 너무나 거대하게만 느껴지는, 미처 손 볼 엄두가 나지 못하게.
그렇다면 우리의 무관심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라며 나는 허탈하게 묻는다.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면서 반장님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원래 경기도에서 소방관을 하다 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훨씬 근무 환경이 낙후 되고 복지 역시 떨어지는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긴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 겪은, 오늘 우리가 만난 환자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의 현실은 곧 내 부모의 미래이기도 했다. 그 생각을 하자 그는 도저히 그곳에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불과 며칠 전에 큰어머니가 계단에서 굴러 다친 일이 있었다. 그녀는 며칠 쉬면 낫겠지 싶었단다. 다행이도 다음날, 우연히 큰집을 방문했던 아버지가 그녀를 발견하고 사촌들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데려갔다. 갈비뼈가 부러졌고, 뇌진탕까지 온 큰 부상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그날 큰집에 가질 않았더라면....... 그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나중에 내가 자리 잡으면 같이 서울에서 사는 게 어때요?' 한 번은 내가 농담처럼 그런 말을 건넸더니 어머니는 되려 웃으시며, 자기는 그냥 바다가 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 큰집의 곁에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달콤한 미래에 젖은 그들을 보며 나는 걱정스러웠다. 내가 겪은 환자들의 외로움을 내 가족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진 않았다. 가능하면 나의 곁에 그들을 두고 싶다. 외면하지 않으리라, 나는 결심했으니까. 요양원은 끔찍하다. 그건 환자보단 차라리 보호자들을 위한 시설이다. 그들이 잘 지내고 있으리라 안심 시키며, 무관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지만 씁쓸하게도 나는 벌써부터 망설이고 있지 않은가. 만약 내가 내 부모를 모시고 살기 위해선 무엇을 포기하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인가. 슬프게도 계산 중이다. 나 역시 결국 그 무관심의 원인을 찾아낼 엄두는 내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파도를 따라 일렁이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