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_아픈 손가락들

2018. 08. 17. (D-158)

by 뮤노

그간 올린 글들을 관리하다 조금 특별한 경로로 나를 찾아오게 된 사람들을 발견한다. 아무래도 어떤 뉴스 기사에 내가 쓴 글들 중 하나가 연관으로 떴던 모양이다. 조회 수가 적지 않아 제법 호기심이 돌았다. 링크를 따라가 보니 오래된 기사였다. 짧은 탄식이 다문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 나왔다. 제목부터가 가슴 속을 메아리 쳤다. "17년째 아들 수발 부부. 20년 만에 간 노래방, 10분 만에 나와."


그 기사는 작년 말 무렵의 어떤 기억을 의식의 맨 꼭대기에 가져다 놓고야 만다. 해가 바뀌었으니 벌써 반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출동벨이 울렸고, 평소처럼 구급차에 올랐다. 신고자는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우리 관내 단골손님이다. 나만 하더라도 벌써 세 번이나 그 집을 방문한 이력이 있었다. 그 날은 네 번째였다. 와상 환자가 있는 집이라 귀찮고 짜증이 나더라도 사정을 봐줄 수밖에 없었다. 이젠 그냥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또 어떤 사유로 병원에 가시려는 걸까. 가래 때문에 기도가 막히셨으려나. 혹은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에 열이 좀 나시는 건가. 밀려오는 찬바람에 코끝이 찡해 자꾸만 재채기가 나왔다. 그는 이 시큰거리는 기분을 과연 알고 있기나, 아니지........ 기억이나 할까.



언제나 그랬듯 간단하게 환자의 바이탈 싸인(활력 징후)을 체크하고 들것에 실어 옮겼다. 어느 병원으로 갈지도 이미 알고 있기에 우리와 환자의 가족들 사이에는 좀처럼 대화가 없었다. 그저 서로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이송하고, 그들은 그런 우리들에게 묵묵히 감사를 표한다. 그 외의 것들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늘은 어떤 일로 가시려는 거예요?"


마치 딴 생각이라도 하다가 돌아온 사람마냥, 멍한 목소리로 참으로 뜬금없는 타이밍에 반장님 한 분이 말을 걸었다. 덩달아 나의 시선도 환자의 보호자에게로 향했다. 분명컨대 그녀는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짧은 침묵 동안 그녀의 측은한 눈길이 아들의 텅 빈 눈동자에 머물렀다. 어색한 분위기가 우리 사이에 감돌았다. 질문을 던진 반장님은 괜히 민망해지는 눈치였다. 그러다 문득, 한숨을 턱하니 내뱉고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요양원에 보내려구요. 매번 말씀 드리기가 죄송해서......."


때로는 사람을 어색함에 송두리째 가두는 대답도 있기 마련이다. 곧이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는 걸 알리는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이 열리자 나는 묵묵히 들것을 밀었다. 의자형으로 접어놓은 들것을 다시 침대형으로 펼쳐놓고,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것을 구급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마도 이번이 내가 그를 이송하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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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이동하는 내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추를 지붕에 이고 가듯 구급차의 바퀴는 더디기만 했다. 보호자는 그저 아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으나, 실은 울고 있었다. 그 아려한 풍경을 나는 앞좌석에서 블랙박스의 화면으로 지켜보았다. 희멀겋고 각진 얼굴의 사내였다. 얼굴 살이 빠지고 너무 오랫동안 누워서 생활해서 그럴 뿐이지, 만약 멀쩡한 몸이었다면 분명 잘생겼을 것이다. 그는 키도 컸다. 그래서 늘 들 것에 타면 밑으로 발이 살짝 삐져나와 구급차에 실을 때마다 애를 먹었었다. 그는 지금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과연 인지하고 있을까.


나는 떠나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나이도 알지 못했다. 다만 젊고 유능했던 그가 오토바이 사고로 그렇게 전신불구가 되어버렸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그에겐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어린 아들과 남편의 다정했던 목소리를 잊어버리기 일보직전인 아내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도 떠올렸다. 아마도 그들 역시, 지금 보호자가 겪고 있는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로써 단골손님 한 명이 줄었다. 나는 좋아해야 하는 걸까. 글쎄,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저 허탈할 따름이다. 어쨌든 돕기 위해 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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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돌봄 노동은 평범한 일상을 앗아갔다. 뇌졸중으로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부인을 3년째 돌보던 할아버지에게 행복한 시간은 잠을 잘 때이다. 뇌경색에 걸린 남편을 7년째 돌본 할머니는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 토로했다. "아무 한 것도 없고 7년 동안 내가 뭘로 이런 세월을 넘겼는지 싶은 기라. 영감 쌔빠지게 뒷수발하고 나면 내 끝이 뭐가 있을까." 17년째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돌보는 중년 부부는 20년 만에 방문한 노래방을 불과 10분 만에 뛰쳐나와야 했다.


지난 4월 청주에서는 70대 노모를 모시던 40대 남성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20년을 넘게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효자는 한 순간에 세기의 패륜범이 됐다. 기자는 17년 째 아들을 돌보며 버텨온 아버지에게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느냐고 물었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자식이니까.” 그래서 그는 요양병원에 손을 벌리지 못하나보다. 그건 곧 가족을 포기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오늘도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익사하는 중이었다.


버티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모두 놓아버리고 잔해의 더미에 깔려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그 가족을 욕할 수는 없다. 감히 그들의 고통을 짐작하는 것조차도 어려운 것이라면 더더욱.


어쩌면 현대인에게 ‘각박해지는 삶’이란 건, 이제 강요받는 대상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그들을 향해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지 싶었다. 그러나 그 말엔 형태가 없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들이 건네는 마지막 감사인사에 얼결에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오늘에 와서, 나는 뒤늦게나마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것 말고는 그 아픈 손가락들을 위로할 방법을 알지 못하니까. 그리고 나는 다른 아픈 손가락들을 생각한다. 오늘도 흐르는 그들의 눈물이 가진 농도를 어림짐작 한다.




*기사링크-https://news.v.daum.net/v/2018061902305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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