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_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2018.09.21. (D-114)

by 뮤노

#본 글은 <Last day of June>이란 게임의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가망 없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다.
대관절, 그들이 말하는 ‘희망’이란 과연 무엇일까.

<Last day of June>이란 게임이 있다. 주인공 ‘칼’은 과거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 ‘준’을 잃고, 하반신 불구가 된 남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내가 남긴 그림을 통해서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힘을 이용해 아내를 되살리고자 노력한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이웃 사람들이 되어 그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저질렀던 사고의 원인들을 제거하면서 해피엔딩에 차근차근 다가간다.


하지만 그 끝에서 주인공이 마주한 건, 어떤 식으로든 사고는 반드시 일어났을 것이라는 ‘운명’이다. 우울한 결말을 맞이한 플레이어에게 게임은 조용히 알림을 띄운다. ‘세상엔 결코 바꿀 수 없는 것도 있어요.’


맞는 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것들 말이다. 판타지 속에서도 불가능했던 일이 현실에서 가능할 리가 없다. 그들의 죽음은 결코 무효화 되지 않으며, 우린 그저 남은 하루를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플로베르의 말마따나 샴쌍둥이마냥 죽은 이의 존재를 평생 등에 업고 가야하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해도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아내를 대신해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주인공의 선택으로 살아남게 된 아내는 이후 그들의 아이와 함께 두 사람만의 추억이 담긴 곳에서 주인공을 추억하며 짧은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홀로 남게 된 그녀가 주인공의 부재를 견뎌내야 하는 건 그것 나름대로 고통스런 일이 될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의 결말은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왜? 대관절 무슨 이유로? 아내를 향한 주인공의 위대한 사랑 때문에? 혹은 가장으로서 지닌 책임감 때문에? 글쎄, 정말 그런 것들이 정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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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한 선임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의무소방원에게 가장 고된 출동을 꼽아보자면 무엇일까. 진상환자와 보호자들? CPR? 혹은 밤새 진화해야하는 화재현장? 뭐, 모두 틀린 답은 아니다만 산악사고만큼 고되고 억센 출동업무는 또 없을 것이다. 그냥 오르기도 힘든 산을 각종 장비와 함께, 더구나 거동을 하지 못하는 환자를 들것에 실어 옮겨야 하니 말이다.


내 선임도 그런 불행한 사례들 중 하나에 속했다. 정상의 턱밑에서 거동이 불편해 움직이지 못한다는 환자가 있다는 신고였다. 장비들을 주렁주렁 이고서 지원 나온 구조대원들과 함께 산에 오른 지 얼마나 되었을까. 곧이어 그들은 나무에 기댄 채로 가쁜 숨을 내쉬는 젊은 남자 한 명을 발견했다. 앙상하게 마른 몸이 얼핏 보아도 등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나의 선임은 그를 추억했다. 발목이라도 삐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구급대원 한 명이 아픈 곳을 물었다. 그러자 환자는 머뭇머뭇한 시선으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어떤 이름이었다.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일명 근위축성측색경화증. 운동신경세포만을 골라 사멸하는 질환으로 유명 야구선수의 이름을 따 ‘루게릭병’이라고도 부른다. 그러자 그의 앙상한 몸이 설명되기 시작했다. 루게릭병 환자였던 그는 더 늦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힘으로 등산을 하고 싶어 이 무모한 여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여정은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 미완으로 끝맺음을 내야 했다. 아마도 그가 더 이상 산을 오를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선임의 입을 통해서, 알지 못하는 그 남자의 하산길을 떠올렸다. 그 후로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으니 그의 현재를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물론 내 선임에게 그 기억은 괴롭고 힘든 기억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마른 몸이라고 하더라도 성인 남자를 들것에 실어 산을 내려오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는 내 마음에 특별히 남아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란 무엇인가. 글을 쓰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내게 새겨진 묵은 질문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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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에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나눠주자 이를 괘씸하게 여긴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여성을 통해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다. 제우스는 그녀를 지상으로 내려 보내면서 절대 열어보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상자 하나를 선물한다. 하지만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한 그녀는 결국 상자를 열어보게 되고, 그 바람에 온갖 죄악과 재앙이 인간 세상에 들이닥치게 된다. 하지만 상자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희망’의 존재 덕분에 세상의 혼란은 잠들게 된다.



나는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희망의 본질을 엿본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이 상자에서 나왔다고 해서 인간세상을 덮친 죄악과 재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고통을 견뎌내는 법들을 배웠다. 그 희망이야말로 인류가 지금까지 자신들의 역사를 써내려간 원동력일지 모른다. 희망의 역할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다가올 미래를 낙관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리하여 삶을 유지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희망의 본질이다.



그럼 이제 다시 <Last day of June>이라는 게임으로 돌아가자. 어떤 식으로든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둘 중 한 명은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다. 이것이 이야기속의 유일한 전제다. 그 전제는 결코 수정할 수 없다. 설령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인공은 우울한 현실의 결말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기어코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설령 그것이 스스로의 목숨을 걸어야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감동하는 이유다.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모든 걸 알면서도 돌이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기적’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만 찾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돌이키고자 애를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설령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말이다. ‘칼’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이제부터는 ‘준’의 이야기다. 남겨진 그녀는 이제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로 감동을 줄 것인가. 내가 납골원에서 본 그 무수한 사연의 주인공들은 어떤 삶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아니, 어쩌면 그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고통스러운 삶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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