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8. (D-107)
지난봄에 있었던 일이다.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소방서에도 밤이 찾아왔다. 야간근무를 서야 하는 의무소방원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에겐 한가로운 휴식시간이다. 오랜만에 야식이나 먹을까 하여 선임과 메뉴를 이것저것 고민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출동벨이 울리며 산통이 깨져버렸다.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신고였다. 나는 방화복을 꺼내 들고 구급차로 달렸다. 요 며칠 새 잠잠하더니만....... 더군다나 우리 관할이라니. 하필이면 그것도 야식을 먹으려던 타이밍에 말이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그 원인이 음식물 탄화이거나 혹은 연막소독이기를 바랬다. 가능하면 출동에서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말이다.
선착대는 구급대와 구조대였다. 휴대용산소가방과 외상처치가방을 들쳐 매고서 반장님들과 함께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건물 입구에는 때 아닌 소란으로 놀란 주민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저녁 날씨가 다소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방화복을 입은 몸에서는 금세 땀이 배어 나왔다. 해당 층에 도착하자마자 메케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복도 역시 주민들로 번잡한 상태였다. 나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서 옥내소화전을 열어 호스와 연결 시켰다.
한편 구조대원들은 연기가 새어 나오는 집을 향해서 열심히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게 웬걸.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려도 집주인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집을 비워두고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았다. 혹은 그 안에서 쓰러져 버려 문을 열어주지 못하는 건지도 몰랐다. 관리실 직원이 가져다 준 전화번호로 구급대원들이 전화를 걸었지만 그마저도 받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더 큰 화재로 번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두 가지였다. 문을 부수거나, 베란다를 통해서 진입을 하거나. 하지만 집주인의 동의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을 부수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내부 상황이 파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온갖 장비를 착용한 구조대원이 베란다를 통해 진입하는 것도 불가능 했다. 사다리차가 들어오기엔 아파트 입구부터 방해요소가 너무 많았다.
결국 문을 부수기로 가닥이 잡혔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마자 흰 연기들이 일제히 밖으로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구조대원들이 뛰어 들어갔다. 다행이도 집은 비어 있었다. 원인은 단순한 음식물 탄화였다. 뒤이어 도착한 진압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안전 조치를 했다. 그 날은 그렇게 다들 마무리가 되는 줄로만 알았다.
문제는 그 다음날부터 발생했다. 뒤늦게 돌아온 집주인이 문을 부순 사실을 가지고 민원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가 요구하는 바는 단순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거나, 아님 열쇠공이라도 부르거나. 시도할만한 방법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부수어 내게 손해를 끼쳤으니 소방서에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당시 상황의 불가피함을 아무리 설명하여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손해를 끼쳤으면 보상하는 게 인지상정이 아니냐면서.
그가 떠난 후, 소방서에는 한바탕의 태풍이라도 휩쓸고 간 듯 기이한 고요가 뒤덮였다. 혀를 차는 이가 있는가 하면 분노와 황당함을 숨기지 않는 이도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직접 문을 부쉈던 직원을 찾았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띠운 채, 묵묵히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려는 안간힘을 쓴 그의 노력이란 사실을 눈치 채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등에는 서운함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고 그는 천천히 움츠러들고 있었다.
씁쓸한 순간이었다. 나는 속에서부터 둔탁하게 차오르는 분노를 선명하게 느꼈다. 턱밑에서는 날카로운 말들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늦었지만 지금에서야 나는 이 모든 걸 ‘기록’으로라도 대응하고자 한다.
소방관들에게 나는 묻는다. 고된 업무의 바다 속에서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밤새도록 지속되는 화재진압? 꼰대 같은 상사의 괴롭힘? 매일 반복되는 훈련? 만만치 않은 업무의 양? 글쎄....... 뭐, 그런 것들도 정답이 될 수는 있겠다.
중앙소방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 교관 한 명이 다음의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보시다시피 화재현장에서 불법 주차된 차량이 소화전을 가로막고 있자 소방관들이 해당 차량의 창문을 깨고 그 사이로 호수를 연결해놓은 것이다. 해당 차량의 차주는 소방관들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불법 주차를 한 이유로 벌금을 물었다. 교관은 쓸쓸한 낯빛으로 우리에게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선진국들이 너무 부럽다고 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량의 유리를 깨뜨리는 것을 망설임 없이 지시할 수 있는 지휘관들과 그 사실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는 당국에 말이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이라 생각했기에 그것들이 왜 부러운 일이 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 간 어설프게나마 소방관으로 살아보면서 똑똑히 깨달았다.
흔히 소방관들이 말하길 ‘소방관은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한다. 타인을 위한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이야말로 오늘날 소방이 지금의 지위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거름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소방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다른 직업에 비해 월등히 좋다. 한편 그러한 인식들은 오히려 소방관들에게 발목을 잡아채는 지뢰로 다가오기도 한다. 가령 소방 업무에 있어서 민원인과의 트러블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소방의 위신을 갉아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부당하더라도 말이다.
나의 선의가 그들에게 ‘권리’가 되고, 나의 성실함이 그들에게 도리어 ‘무기’가 될 때, 소방관들은 주저앉는다.
길에 널브러진 주취자를 구조하기 위해 찾아간 구급대원은 그가 쏟아내는, 세상을 향한 한탄과 비난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와 그의 가족들은 구급대원에게 무시와 멸시를 보내며, 감히 무례를 범한다. 불을 끄기 위해 문을 딴 소방관은 손해배상 요구에 시달리고, 출동 중인 소방차는 불법 주차된 차량들로부터 전전긍긍한다. 할 일을 다 했을 뿐인 어떤 직원은 소방시설 점검을 소홀히 한 건물주의 악성민원을 피해 결국 휴직을 신청했다. 불행한 사고로 소방관들 중 누군가 목숨을 잃을 때마다 ‘그런 일을 하라고 돈을 받는 것 아니냐’며 어느 무지렁이들은 비아냥거린다.
여기는 ‘대접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앞서 ‘20화 <회의록>’에서 나는 어느 웹툰에 등장한 대사를 인용한 적이 있었다. “갑이 어떤 횡포를 부린다 해도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건 갑을 같은 게 없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자기가 갑이 되는 거니까요.” 사람들은 모두 갑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미지’로 먹고 살아야 하는 소방관들은 틀림없는 약자다.
그러니 나는 앞뒤 없는 ‘그’를 향해, 감히 묻는다.
“만약 당신이 부서진 문에 대한 보상을 받길 원한다면,
당신의 부주의로 낭비된 소방력과
출동 중 일반 시민들이 도로 위에서 겪었을 불편,
제 할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로 몰린 소방관의 참담함과
때 아닌 소란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던 주민들에 대한 보상은
과연 누구에게 청구하면 되겠냐고.”
모르긴 몰라도, 당신이 물어야 할 돈이 더 클 걸.
표지사진출처-엠빅뉴스
(http://imnews.imbc.com/n_newssas/fullmovie/fullmovie02/4239007_167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