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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Oct 31. 2018

번외_'장 보드리야르'는 누구인가

부제: 소비의 사회/시뮬라시옹

앞서 우린 본편에서 상징소비이론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학자 한 명을 소개하려 한다. 그의 이름은 ‘장 보드리야르’다. 40년대 말의 전후 복구와 50년대의 경제구조 형성을 거치면서 유럽 경제는 호황을 맞이했다. 이후 유럽은 본격적인 대량 소비사회에 진입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넘치는 상품과 일자리, 이미지 등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장 보드리야르는 실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물건들이 우리의 삶과 어떤 의미관계를 맺는 지를 연구했다. 그는 1968년 출간된 자신의 저서 <사물의 체계>를 통해 각각의 오브제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갖는 역할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는데, 이를 통해 소비는 계급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며, 현대인은 오브제 자체를 소비하기보다는 집단 구성원과의 차별화를 만들어주기 위해 소비 대상을 선택한다는 결론을 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1970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현대 사회를 소비에 의해 확장되는 소비사회로 규정하고, 현대인은 사물 자체를 소비하기 보다는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미, 즉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기호로서 상품을 소비한다고 보았다.


이제 상품은 더 이상 그 사용가치나 교환가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호적 가치’가 더 중요했다. 가령 결혼반지를 떠올려보자. 일단 결혼반지는 액세서리 종류 중 하나로서 몸을 단장하고 꾸미기 위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혼반지는 동시에 수많은 남녀 사이에서 그들이 법적으로 인정받은 부부임을 알리고, 낯선 이성의 접근을 가로막는 역할도 수행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보증하기도 하다.


말하자면, 결혼반지는 실용적 가치보단 기호적 가치로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하는 셈이다. 한편 이렇듯 상품에 내재된 기호적 가치는 인간의 주관적, 심리적 가치와 인간관계의 행동방식(‘결혼반지를 낀 이성에게는 사적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을 규정하며 나아가 사회적 계층의 차이까지도 형성한다.


한편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의 이러한 소비사회적 면모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현대인의 삶이 쏟아지는 상품들에 의해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대인은 조금씩 상품의존적이고, 기능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있었다.


소비는 필연적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조작하는 사회경제적인 구조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 그 말인 즉슨, 소비사회에서 인간의 노동, 욕망, 충동, 인간관계 같은 것들은 상품과 이윤의 논리로만 귀결되며,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가치들은 소외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인간은 기호적 소비 논리의 노예다. 본성, 철학, 심성 등의 내면적 요소는 더 이상 개인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가 입고 있는 옷, 먹고 있는 음식, 타고 있는 차, 살고 있는 집, 그것들에 의한 행동양식 등의 외적 요소를 통해서만 우리는 개인을 파악한다. 가령 평범한 옷차림의 여성과 아름다운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중에서 우아하고 교양있는 사람을 고르라면 당신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아마도 99%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다. 아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보거나 들었을 수도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전달수단으로 사용하는 책의 제목이 바로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는 무엇인가.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재미있는 예시를 들어보겠다. 우리는 종종 TV를 통해 드라마 속에서 악역을 연기했던 배우가 현실에서도 종종 드라마 팬들으로부터 지탄과 추궁을 받았다는 웃픈 해프닝을 접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시청자들에겐 그 배우가 현실 속의 본래 모습보다는 드라마 속의 캐릭터로 더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 때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바로 '시뮬라크르'다. 말 그대로 시뮬레이션 된 것, 그리하여 복제된 것을 이르는 개념이 시뮬라크르다. 한편 시뮬라시옹은 그런 시뮬라크르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작용의 개념이다. 말하자면 앞서 말한 배우가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작업이 곧 '시뮬라시옹'에 해당되겠다.


학창시절 <윤리와 사상>을 공부해봤다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데아란 철학적인 이상향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 이데아에 대한 모사에 불과하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말하자면 현실은 이데아를 지시하는 일종의 기호인 셈이다. 그리고 이 기호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기능을 가졌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기호는 대상과 연관성을 지닌다. 도상적이든, 조형적이든, 상징적이든. 무슨 이유이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이르면 이러한 기호와 대상의 관계는 대대적으로 변화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현대인들은 상품 그 자체보다는 상품에 함의된 의미를 소비한다. 때문에 실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가치를 잃어버린 실재는 그대로 시들어 버린다. 대신 의미가 남아 그 자리를 채운다. 말하자면 이젠 기호가 자기 자신을 지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현대 기호의 이러한 특성은 기호가 스스로 새로운 대상, 또 다른 기호를 성립하는 결과를 낳는다. 기호와 기호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파생되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 파일을 복사, 붙여넣기 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기호의 무한 증식과 복제 속에서 본래 대상과 기호가 지닌 연관성은 자연스레 희미해진다. 가상의 대상이 자연적 대상을 능가해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네오’라는 캐릭터를 통해 키아누스 리브스라는 배우를 파악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 기호의 이러한 특징은 결국 ‘과실재 Hyper Real'을 낳는다. 과실재란 말 그대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효과를 말한다. 가령 우리 인간의 눈은 날아가는 화살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다.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만 초고속 카메라를 통해서 본 현실은 화살의 물결치는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잡아낸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의 체험보다 이렇게 카메라를 통해 기록되고 복제된 현실을 더 실감난다고 여긴다.


이제 기호가 창조한 대상은 자연적 대상보다 더 실재적이고, 탁월하며 이성적이다. 가상이 현실을 지배하는 것이다. 시뮬라크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엔 실체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장 보드리야르는 미래엔 내파로 인해 모든 의미가 소멸 되고 허무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맹목적인 소비에 취한 인간은 더 이상 사유하지 못하고, 무능력하고 무관심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고 말이다.


오늘날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무척 흥미롭다. 그의 말마따나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평범한 소비 행위에서도 의미를 찾는다(실제로 <트렌드코리아 2018>에서는 미닝아웃이라는 트렌드를 도출해 놓았다). 이제 기업들은 상품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 경쟁사와는 구별되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어필해야 소비자들이 몰려든다. 그것이 마케팅과 브랜딩이 중요한 이유다.


한편 시뮬라시옹 이론은 소비자의 체험 욕구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테마파크나 게임, 가상현실 콘텐츠(AR/VR) 등에서 유용한 이론적 단초가 된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그저 착취의 대상이 되겠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 같은 아마추어가 기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된다.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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