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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n 02. 2021

추억이 되는 순간

 아주 오래된 인연이지만 얼굴을 한 번도 뵌 적은 없는 작가분을 알고 있다. 현직 교사이기도 한 그분의 글을 읽을 때면 잔잔한 문장 속에서 요즘 학교와 학생, 그리고 선생님들의 생활을 조금씩 엿볼 수도 있다. 학교에서 이번 연도의 동아리로 포토에세이반을 만드셨다고 했다. 

 요즘 학교에서 동아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활동이 나 학교 다닐 적에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특별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 참여하는 몇몇을 빼면 나머지는 대부분 친구 따라가거나, 남는 자리 따라 신청하거나 했다. 무엇이든 신청은 했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분의 포토에세이 반도 역시나 비슷한 분위기였을 것 같다. 몇몇 외엔 원해서 신청한 아이들이 아니기에 마음을 두드리는 글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부담 갖지 않고 정성껏 아이들이 글을 썼으면 한다시는걸 보면 말이다. 포토에세이반이니 사진에 대한 글을 쓰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아이들에게 추억이 담긴 사진을 한 장씩 가져오라 하셨다고 했다. 선생님 생각엔 아이들이 어릴 적 사진이나 오래된 사진을 가져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여행사진을 들고 왔다고 한다. 


 그분의 글을 읽다 보니 아이들과 내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지점의 차이가 느껴졌다. 아이들은 여행 같은 특별한 경험의 순간이 추억이었다. 반면 나는 이제 누가 추억의 한때를 물어본다면, 특별할 것 없던 가족들과의 한 끼를 나누던 식탁풍경이거나 목적은 잊었지만 다 함께 걷던 어느 날 머리 위로 쏟아지던 햇살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그리고 내일도 있을 평범하고 대단치 않은 지나간 하루의 시간들이 추억으로 먼저 그리워진다는 것이다.

 여러 해 전 미국에 사는 언니네 가족과 우리 세 식구가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첫밤이 지나고 맞은 아침은 음력설이었다. 두 가족, 여섯이 모여 한국도 아닌 라스베이거스에서 떡국을 끓여 아침으로 먹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라스베이거스를 또 여행했지만, 늘 그곳의 추억은 번쩍이는 네온사인이거나 사방에 널린 슬롯머신의 이국적인 풍경이 아니라 떡국을 나눠먹으며 웃던 그 아침이었다.


 그 사진 에세이 수업에 관한 글을 읽으며, 나와 달리 아이들에게 추억이 담긴 시절이 어릴 적이나 오래 전이 아닌 즐거운 경험의 순간들인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아마도 그것은 퇴적된 시간의 두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 비하면 나는 더 오랜 시간을, 더 많이 쌓으며 지나왔으니 나의 추억이란 것은 멀리 있고, 오래전에 있는 게 당연하다. 

  그날의 수업은 선생님이 몇 장의 사진을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골라 아이들이 글을 써내는 방식으로 수업을 마무리하셨다고 했다. 같은 사진으로 아이들은 또 어떤 글들을 써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혹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먼 훗날 어느 때에, 그들 중 하나는 사진을 생각할 때면 문득, 그날의 사진 에세이 수업 시간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나 중학교 다닐 때 동아리로 사진 에세이 수업을 했었는데 말이야...."라고 하며 여러 수업시간 중 하나였던 하루를 떠올리며 이야기할 수도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특별할 것은 없다. 시간은 먼지처럼 날아가고, 물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더러 잊히지 않고, 사라지지 않은 채 쌓이고 또 쌓이는 것들도 있다. 특별해서 쌓이는 것만은 아니다. 특별하지 않은 시간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을 달고 특별해진다. 그러니 결국 당연하게 나이를 먹는 것 같지만 사실은 추억 부자가 되어가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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