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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an 19. 2021

잠이 늘었어

보통 하루의 일과는 이랬었다.   새벽 두시쯤 취침해서 아침 일곱 시에 기상했다.   다섯 시간을 자면 충분했다.   아프지 않은 이상 낮잠을 자본 적은 거의 없었고, 텔레비전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나는 늘 눕지 않고 앉아있었다.


아이들은 종종 자다가 수업에 늦게 왔다.   학교 다녀와서 잠깐 누웠다가 그만 잤어요,  방학이라 아침에서야 잠이 들어서  늦었어요,  다들 그렇게 말하며 멋쩍어했다.   열두 시간쯤 자야 흐뭇하다는 아이도 있었고, 어떻게 사람이 다섯 시간만 자면서 살 수 있느냐고 놀라워하는 아이도 있었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대요, 맹랑한 소리를 하는 녀석도 있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에도 늦게 자는 아이였다.  그저 밤만 되면 공부 빼고는 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없던 시절, 삐삐도 없던 시절.   그러니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쯤 되겠다.

그 시절엔 내 방에 전화기가 따로 있었으나 온 집안 전화선은 하나였다.   전화가 울리면 온 집안 전화기가 울렸다.   누군가 먼저 받으면, 내 전화야!  끊어!  소리 지르곤 했었다.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의 풍경이 낯설지 않다.

친구들과 늦도록 수다는 떨고 싶었다.   미리 약속하길, 새벽 한 시 정각에 전화하는 거야.   딱 두 번 울려서 안 받으면 그대로 끊는 걸로!

그렇게 친구들과 수다도 떨었던 밤은 길고도 재미있었다.   덕분에 아침마다 등짝을 맞고서야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언제인가부터 자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재미있어서 늦게 자는 것이 아니라,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늦게 잤다.   하루에 삼분의 일 가까이 잔다면  인생의 삼분의 일을 잠으로 날려버리는 거였다.   밤늦게까지 코피 터지게 공부하는 것도, 엄청난 구국의 사명을 이루려는 것도 아니면서 자는 시간은 아까웠다.

오후 출근을 하는 직업이면서도  일곱 시면 일어났다.   밤늦게까지 엄청난 일을 한건 아니었던 인생이므로, 이른 아침이라고 해서 완수해야 할 비장한 의무는 당연히 없었다.   침대에서 구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대거나 전날 읽다만 책을 이어 읽었다.

나는 , 잠 대신 먹는 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잠을 자지 않고 스물네 시간을,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우리는 '무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멍 때리는 밤이거나, 읽고 나면 잊을 책 몇 권이거나, 안 먹는 것이 나을 야식의 시간일지라도 말이다.   적어도  '깨어'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특별하게 바쁘지도, 특별하게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도,  특별하게 해낸 것도 없는 그 자는 시간이 왜 그렇게 아까웠을까.   젊었던 동생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살아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시간'이었다.   늘 달리는 시간이었고, 숨이 찼지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살아있었으므로, 시간은 꾸준히 흘렀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곧 늙을 나이에 다가서 있었다.

동생과의 이별 이후 그 나이의 무게를 깨달았던 것처럼, 부모님의 부재 이후 이번에는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던 시절도 있었다.   투잡을 하며 숨이 턱에 찼던 때도 있었다.

이제 일을 멈추고 주변을 본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라고,  인생에 정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만 일하고 싶은 나이, 정년이 내게는 지금이다.   


이제 새벽 두시쯤 잠드는 나는 아홉 시가 다 되어 일어나기도 한다.   오후에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전이 오롯이 편하지만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느긋하게 창밖을 보며 멍 때리기도 한다.   낮잠은 여전히 자지 않지만, 저녁엔 가끔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기도 한다.   스무 살 적 이후 인생 최대의 독서를 하고  있고, 영화를 보고 있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하고 싶은 것들은 되도록 해보려고 한다.   

잠을 자는 시간은 여전히 조금 아깝다고 생각하지만, 잠을 자기에 깨어있는 시간도 있다는 것쯤은 받아들인다.


잠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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