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Jun 04. 2021

까미노 여행스케치-이레이다

작가는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 길에서 그린 그림들을 묶어서 책으로 냈다. 서점의 책들 사이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나서 전자책으로 사보아야지 하다가 그만 잊었다. 이 책을 다시 만난 것은, 책이 아니라 원화를 볼 수 있었던 작은 독립서점에서였다. 책 속의 그림들이 원화로 있었다. 종이의 질감, 색채의 질감이 느껴져서 어쩐지 이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난 책이 "까미노 여행 스케치"였다.


작가는 어느 날 문득, 산티아고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행군을 하고 싶지는 않아 함께하진 못하겠지만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다는 그의 배우자를 뒤로 하고, 그렇게 언니와 함께 떠난 산티아고 도보순례길의 기록이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은 기록을 읽으며 나도 조금은 함께 걷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그 길에서 만난이 들은 매우 다양하다. 독일의 집에서부터 도보순례를 시작해 산티아고까지 왔다는 순례객도 있었고, 오랜 아내의 간병 끝에 이별을 하고 떠나온 활기찬 할아버지도 있었다. 작가는 그가 '아내를 잃고 슬픔에 절여진 나날을 보내는 사람은 아니었다'라고 묘사했다. 

우연히 만난 일본인 할머니는 예전 산티아고 길을 걷다 '잠시 멈춤' 했었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도보여행을 중도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작가는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림을 그리고자 했지만 그림은커녕 속도전처럼 걷는데만 급급한 여행을 다시 생각한다. 그래서 중간에 버스를 타기도 하며 그림을 그릴 여유시간을 만든다. 

나 역시도 작가의 글 중 가장 오랜 시간 멈춰있던 부분이 그 일본인 할머니의 '잠시 멈춤'이야기였다. '포기'와 '잠시 멈춤'은 그 기준이 참 애매하다. 어떤 경우엔 비난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핑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럼 그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걸까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생각했다. 아마도 '다시 시작'이 그 기준이 아닐까. 다시 시작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어떤 것은 포기가, 또 어떤 것은 잠시 멈춤이 될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말했다. 여기서 내가 손해 보았다고 억울해할 필요 없다고.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로 또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 세상이라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포기하지 않고 잠시 멈추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꼭 멈추었던 그 자리가 아니어도 괜찮을지 모른다. 이곳에서 멈춘 발걸음은, 저곳에서 다시 다른 형태로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 작가 역시 일상에서 도피하듯 떠난 여행이었지만 , 그 길에서 굉장한 해탈을 하거나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고,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았고 그림으로 남겼다. 포기와 잠시 멈춤에 대해서 생각하는 여유도 가졌다. 

어쩌면 그 길을 걷는 자체가 인생의 '잠시 멈춤'인지 모른다. 여행의 끝에 해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잠시 멈춤'의 시간 말이다.

한해의 반이라는 6월을 지나고 있다. 백세 인생의 반쯤이라는 나이를 넘어서고 있다. 책장을 덮으며 산티아고 길을 그려보았다. 꼭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우기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여러 날을 걷고 또 걷는 순례길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이다. 포기와 잠시 멈춤을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나만의 산티아고 길이 있다면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정한 매일매일 - 백수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