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Jul 19. 2021

코로나 백신 분투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던가. 은퇴 혹은 자발적 백수로 살았던 반년만에 몇 달짜리 고3 수업을 한 타임 맡자마자 코로나 확진자가 무섭게 늘기 시작했다. 주 2회 한 타임의 수업을 위해 나가는 학원이지만, 어쨌거나 학원 종사자이므로 내려온 행정 명령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학원 종사자의 PCR 검사 결과 의무제출이라고 했다. 

 코로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의 창궐 이후 일 년 반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그 PCR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 주변 지인들은 더러 그 검사를 받고 나서 무용담처럼 전해주곤 했다. "심적으로는 그 면봉이 뇌까지 들어가는 것 같아요." "눈물 콧물 줄줄 흘려보셔야 해요." 


 감기에 심하게 걸렸던 오래전, 이비인후과를 가야 빨리 낫는다고 해서 마침 진료받으러 가시는 엄마를 따라갔었다. 엄마 다음 차례로 진료실에 앉아있는데, 엄마 코로 기다란 면봉이 쑤욱 들어가는 걸 봤다. '저, 저렇게 깊이 넣는다고?'  엄마 진료가 끝나고는 내 차례였지만 그걸 보고는 그만 기겁해서 도망 나와버렸다. 그 이후 이비인후과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애까지 낳은 사람이 그깟 것이 뭐 무서우냐 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어쨌거나 심적으로 뇌까지 들어가는 것 같다는 그 면봉을 코에 꽂고 싶지는 않았다. 코로나 걸릴까 봐 무서운 게 아니라 그 PCR 검사가 더 무서울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제출 마감일 하루 전에서야 딸아이에게 끌려가다시피 검사를 받으러 갔다. 9시부터 업무시간이었는데 8시 반에 이미 놀이공원 줄처럼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줄은 둘로 갈린다. 해외 입국자, 사전 예약자, 유증상자와 비예약자, 무증상자의 길이 달랐다. 대부분 무증상자 쪽 인원이었고, 또 그들 중 대부분은 언뜻 들리는 말로 짐작컨대 학원 종사자였다. 줄이 가까워오면 손 소독을 하고 비닐장갑을 양손에 낀다. 그리고는 접수대에서 간단히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문진 몇 가지가 있다. 그리고 나면 면봉이 들어있는 실린더 같은 것을 쥐어주는데 검사 부스에 차례가 되어 제출한다. 마스크는 내리고 코만 내놓는다. "매워요~~ "라고 직원이 얘기함과 동시에 면봉이 쑥 들어왔다. 

 '어, 매... 매워...'라고 생각하는 순간 끝! 눈물 콧물 줄줄 흘린다는 이야기에 휴지도 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싱겁다. 휴지 꺼낼 일은 없었다. 하지만 또다시 하고픈 경험은 아니다. 비닐장갑을 벗어 버리고 세상 개운한 얼굴로 돌아왔다. 돌아오며 딸아이에게 계속 놀림을 당했다. "해보니 별것도 아닌걸 이상한 데서 겁이 많아?" 둘이 웃다가 말끝에 서로 공감한 부분은 같았다. "그런데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 너무 힘들어 보여. 더운데 방호복까지 입고 답답할 텐데.." 뉴스에서만 보던 방호복 입은 직원들을 실제로 보니 마음이 더 짠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다음 날 오전 9시가 조금 넘자 정확히 문자가 왔다. "검사 결과는 음성입니다." 의무라 받았을 뿐 증상은 없었으나, 무증상도 널린 코로나 시국이니 나도 나를 못 믿었나 보다. 혼자서, 휴우~ 했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학원 종사자들의 백신 우선접종을 예약하라고 했다. 미리 신청서를 교육청에 오피스 폼으로 제출했다. 교육청에서 모인 명단을 확인해 질병청으로 넘겼고, 질병청에서는 확정된 접종 명단을 다시 각 지자체에 내려보내는 거라고 했다. 통보된 그 명단으로 주소지 근처의 접종센터를 지정해 접종하는 방식인 듯했다. 질병청에서 명단이 확인되어 넘어온 사람은 정해진 날짜에 전화 예약하라고 시청에서 별도 문자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명단이 통보되지 않은 사람도 꽤 있는 모양이었다. 누락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고, 구제방안도 따로 없어 그런 경우는 일반국민 접종 순서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예약접수기간은 길었지만, 이미 55세 이상 신청자가 선착순으로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것을 본 사람들은 학습효과가 되어있다. 첫날 신청 전화가 폭주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학원 종사자 우선접종은 오로지 콜센터 전화로만 접종 예약을 받았다. 질병청처럼 인터넷으로 받는 것이 아니었다. 수원시의 학원 종사자가 한둘이 아닌데 콜센터는 하나뿐이라니, 전화연결은 2시간 반 동안 되지 않았다. 

 딸아이와 나는 서서히 분노 게이지가 상승했다. 둘은 전화를 계속했고, 그 와중에 학원연합회 밴드에 올라오는 소식을 딸아이가 확인했다. 주민센터에서 예약을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소식이 퍼졌다. 그 주민센터로 연락을 하니 갑자기 문의가 폭증해서 거주민에 한해 예약받겠다고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소식은 참 빨리 퍼지고. 사람들은 참 빨리 움직인다. 결국 다른 주민센터로도 민원은 빗발쳤으므로 우리는 관할 주민센터에서 예약에 성공했다.


 폭풍과 같은 예약 전쟁이 끝나고 나니 허탈했다. 맞지도 않은 백신이지만 열대쯤은 몰아서 맞은 듯 기력이 없었다. 출근도 안 했는데 마치 하루 종일 수업하고 막 퇴근한 기분이었다. 두 시간 반 동안 내가 콜센터에 걸었던 전화는 700여 통이었다. 딸아이도 비슷했다고 했다. 세상에 태어나 이리 집요하게 누군가(?)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해본 기억이 없다.  

 나의 백신예약 분투기를 보신 지인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 대격변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 듯하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 나중에 더 늙어 손주들에게 한국전쟁 얘기하듯 팬데믹 무용담을 늘어놓을 수 있으려나.


 결국 이렇게 해서 코로나 백신 1차 접종까지 마쳤다. 험난했던 예약 과정에 비하면 접종센터의 시스템은 깔끔했다. 대기인원이 많았지만 접수, 문진, 예진, 접종, 그리고 접종 후 대기 과정까지 물 흐르듯 동선이 신속하고 정확했다. 접종 후 15분 대기하는 동안 바로 1차 접종 증명이 떴고, 2차 백신예약 일정이 문자로 날아왔다.

 돌아오는 길, 우리의 일상도 코로나 이전으로 하루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바를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