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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23. 2021

내 나이가 어때서

 나는 인터뷰 기사를 유심히 읽는 편이다. 특히 배우나 작가처럼 주로 작품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인터뷰 기사를 좋아한다. 읽다 보면 작품이 아닌 그들 자신의 생각과 속내가 언뜻 엿보이는데, 그 느낌이 퍽 새롭게 다가온다.  

 우연히 막 드라마를 끝낸 젊은 여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아직 이십 대 후반인 그녀의 작품 속 이미지는 기자의 질문처럼 구김살이 없다. 실제 인터뷰하는 모습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사의 마무리는 이랬다.


< 그는 “마음에 구김이 없어 보인다”는 질문에 “그늘이라는 건 큰 욕심, 높은 목표가 성취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그림자 같다. 목표가 클수록 이루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도 깊기 때문”이라며 “돌이켜보면 힘들었을 때는 욕심이 컸던 시기였다. 그걸 비워내니 좋더라. 이제는 지금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고, 닥쳐오는 것에 잘 맞선다”라며 활짝 웃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하면 나 역시도 윗 연배의 어르신들에게 같은 소리를 들을지도) 일찍 철이 드는 것일까, 아니면 빨리 영리해지는 것일까. 내가 유심히 보는 인터뷰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이삼십 대의 젊은이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가 이 나이가 되어 느낀 바를 벌써 알아낸 듯 하니 말이다.


 얼마 전 종종 가는 서점에서 책을 한 권 골라 읽은 적이 있다. 책과 음료의 값을 지불하고 테이블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글의 내용상 지은이는 젊은이일 거라고 짐작은 했다. 이십 대 후반 언저리쯤일까 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가끔 튀어나오는 문장들로 미루어보건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책방지기에게 여쭤보았다. 아, 세상에나. 지은이는 고3 남학생이었다. 

 간혹 치기 어린 부분이 없지 않으나, 구사하는 어휘나 문장은 고3 학생의 것이라고는 짐작하기 힘들 만큼 충분히 좋았다. 문득, 나의 고3 시절을 생각하니 그만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뭐한 걸까.


 도서출판 강좌를 들으러 다니고 있다. 수강생들은 첫날 각자의 소개를 간단히 했었다. 듬직해 보이는 한 학생이 본인을 고3이라고 소개했다. 학교의 사서 선생님께서 강좌를 추천해주셔서 듣게 되었다고 인사를 간단히 하는데, 고3이라는 걸 빼고 들으면 참 어른스럽고 진중했다. 앞으로 본인이 쓰고 싶은 책의 기획 방향을 짧게 얘기했는데, 그 짧은 말속에 깊은 생각이 느껴졌다. 


 나이에 관한 참 많은 말들이 있다. '나이는 못 속인다' 라거나, '다들 제 나이만큼이지...'  하는 말들을 어려서부터 들어왔다. 나이가 들고 보니, '나잇값을 못한다'라는 말은 제일 무서운 말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나이에 관한 잣대는 참 여러 가지다. 나이 먹은 만큼 나잇값을 해야 한다고 한다. 또 다른 쪽에선 , 나이가 들어도 소년미가 있어야 매력이라고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나잇값도 해가며 장착해야 하는 소년미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이가 문제지만, 또 나이가 문제는 아닌듯하다. 젊은이의 사유가 나이 든 이보다 훨씬 더 깊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도 전혀 알지 못했던 깨달음을 젊은이의 한마디를 듣고 그제야 유레카! 를 외치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나이를 먹어보지 못한 자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나 역시도 지금보다 젊은 시절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 그러니 책으로, 지식으로 익힐 수는 있어도 공감할 수 없는 감성이 분명 존재한다.

 결국 나이가 문제인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나이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여기는 자세가 필요한 듯하다. 어린 사람들은 '그 나이엔 아직 경험이 미숙하니 믿음직하지 않다'라고 하는 말들에 대해 '나이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용기 낼 수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은, '너무 나이가 많아서 그렇지..'라는 말을 접했을 때에 마찬가지로 '나이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당당해질 수도 있겠다.

 그러니 오늘도 내 눈앞에, 혹은 내 속의 벽을 마주하게 되거든 어깨를 두드리며 한마디 건네봐도 좋겠다. "내 나이가 어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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