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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an 06. 2023

튜브- 손원평

                                

이 책의 작가는 ‘아몬드’로 기억한다. 사실 아몬드를 읽지는 않았는데 청소년소설로 알고 있어서 이 책 ‘튜브’ 역시 청소년소설인가 했었다. 

처음부터 한 호흡으로 쭉 읽혔다. 재미있고, 어수선한 느낌도 없이. 게다가 군데군데 밑줄긋고 싶은 문장들이 얼마나 많던지. 언제인가부터 맘에 드는 좋은 문장을 읽고 공감하고 난 뒤엔, 부러움이 넘쳐흘렀다.      


<하긴절대온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날보다 얼마나 추운지가 중요한 거지그게 바로 체감온도라는 거야지금도 마찬가지지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내가 죽고 싶다고죽어야겠다고 느끼는 이 체감이 중요한 거라고.>     


주인공이 자살하고자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다. 소설이므로, 독자는 현실에서 빠져나와 방관자의 눈빛으로 장면을 보는 사람이다. 그러니 자살하려는 사람의 절박함에 공감하기 이전에, 약간의 위트가 느껴지는 문장으로 첫 부분이 시작되다 보니 느긋했다. 그러다 체감온도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참 맘에 들었다. 그렇다. 살다 보면 그 체감온도가 중요한데 말 그대로 체감온도이니 저마다 느끼는 온도가 모두 다른 것이다.    

 

<이제 그렇게 거창한 목표 같은 걸 안 세우기로 했어행동에 목표를 없애는 거지행동 자체가 목표인 거야.

-미래를 생각 안 한다는 거예요?

언젠가는 다시 생각할지도 모르지하지만 일단은 아니야네 말대로 지금은 미래 같은 거 생각 안 해충분히 많이 해봤거든근데 도착해야 할 미래의 이정표를 너무 먼 곳에다 세워놓으니까현재가 전부 미래를 위한 재료가 되더라고자세 하나 고치는 거그 자체가 목표야.

그다음그런 거 없어그냥 하나라도 온전하게 끝까지 해 보고 싶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인공은 거창한 무엇이 아닌 작고 소소한 것부터 해내기로 맘먹는다. 사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꿈꾸고 바라보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이미 완성형인 큰 것뿐일 때가 많다. 거창한 목표 없이 그저 행동 자체가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끄덕끄덕했다.     

 연말이면 새해의 계획을 세우곤 했었다. 무엇을 해야지, 무엇을 이루어야지 하는 목표는 그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크고 웅대했다. 언젠가부터 이제는 새해의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열심히 걷는 하루하루가 모여 365일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인생이 될 테니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뚜벅뚜벅 걷겠다는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그러므로 나 역시 작가의 이 부분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안 돼도 뭔가가 끝날 때까지는 해야 돼.

언제까지요?

끝까지.

끝이 언젠데요.

알게 돼누가 말해주지 않아도상황이 끝나든 네 마음이 끝나든둘 중 하나가 닥치게 돼 있으니까.

ㅡ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다시 시작해야지네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뭘요?

-되는 것부터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중 되는 것부터운동이든 공부든책을 읽는 거든하다못해 나처럼 등을 펴는 게 됐든너 혼자 정해서 너 스스로 이뤄낼 수 있는 것부터.>     


제목인 ‘튜브’가 의미하는 것은 아마도 책 속에 잠깐 나오듯이 물에 빠져도 떠오르게 하는 것, 물속에서도 가라앉지 않게 하는 것, 그런 무엇 아닐까. 인생에 누구나 튜브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나에게 튜브를 던져주는 순간도 있을 것이며, 혹은 누군가의 튜브가 되어주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미국에서도 끝끝내 운전을 배우지 못했다는 친구에게 말한다. 인생이 운전 같은 거라면, 차를 운전해보라고. 차는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네가 원하는 속도만큼 갈 테니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질주하고 싶을 때 달리라고 한다.     


<삶의 가장 큰 딜레마는 그것이 진행한다는 것이다삶은 방향도 목적도 없이 흐른다인과와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종종 헛된 이유는 그래서이다찾았다고 생각한 정답은 단기간의 해답이 될지언정 지속되는 삶 전체를 꿰뚫기 어렵다삶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진리는그것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뿐이다.>     


삶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진리가 ‘계속 진행된다’라는 것은, 삶 그 자체를 이야기해준다. 살아있으니 매 순간 끊임없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지만 사실 매 순간이 처음이며 낯선 것이다. 같은 것은 단 한 번도 같지 않다. 언젠가 인생은 반드시 멈추겠지만, 멈출 때까지는 움직이는 것이므로 인생의 튜브를 끼고 푸른 바다에서 헤엄치는 오늘 하루 동안 조금 더 움직여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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