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바로 반박했다.
"철아, 인간은 그렇게 쉽게 지지 않아. 아직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의 작동 기전과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다. 경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인간은 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거든.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조합해 판단을 내려.
반면 기계들은 오직 프로그램의 논리에 따라서만 움직여. 인간이 사라진다면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될 거야. 왜냐하면 왜 뭔가를 해야 하는지 모를 테니까. 그들은 우주를 탐험하지도 않을 거고, 외계의 존재와 소통하지도 않 을 거야. 왜 그래야 하는지 전혀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지.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을 할 수가 있는 거야."
아빠의 말이 끝나자 달마는 담담하게 아빠의 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와 같은 존재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를 오래 기다려서 도서관에서 받았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기다려 펼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것이다. 부럽고, 나 역시도 그런 사람중 하나라는건 기분좋은 일이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이다. 어쩌면 책은, 이제 쓰는 사람들만 읽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내 주위에도 책을 읽는다는 사람보다는 읽은지 오래라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도 역시 꾸준히 읽는 사람들은 있으니,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책은 끊임없이 나온다. 심지어 책들도 유행이 있는 듯 하다. 힐링소설류가 연달아 나오고, 장편소설이지만 연작단편소설같은 느낌의 구성을 가진 책들도 많아졌다. 페미니즘, 퀴어등의 주제도 많다. 그리고 또 하나, SF소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오래 기다려서 받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SF류의 이야기일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이거나 여행에세이로 기억하고 있는 작가여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것은 인간의 이야기구나 싶은 맘이 들었다.
<당신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고자 합니까?">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없고, 붉게 물든 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 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채 동이 트지 않은 휴먼매터스 캠퍼스의 산책로를 달리던 상쾌한 아침들을 생각했다.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미래사회엔 정말 인간과 로봇의 세상이 펼쳐질까. 아마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미 로봇은 우리 생활깊숙히 들어와있다. 로봇가전은 낯설지 않고,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거나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형태만 다를뿐 이미 로봇은 우리와 함께 있다.
그러니 언젠가는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심지어 사람을 대신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로봇이라면 영화에서의 이미지대로 사람의 형상을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로봇은 몸 없이 존재하며, 느낌없이 사고할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사고하는 것’아 아니라 수행하는 것이 보다 맞는 표현일수도 있겠다.
이글의 주인공은 로봇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같기도 하다. 물론 그것 역시 프로그래밍의 힘일지도 모른다. 그도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입력된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팔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문장을 생각했다. 로봇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표현이다. 사람이 그러하니까.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이런 문장이 나온다. 끝이 오면 누구나 다 끝이라는걸 정말 분명히 알 수 있을까. 두려우면서도 궁금했다.
그 끝을 묘사한 책의 끝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끝이 오는 풍경이, 그처럼 늘 평온하고 아름다울수만은 없겠지만 그런 평정심을 가지고 맞이할수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런 평정심을 기르는 과정이 삶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것에 도달하고, 또 누군가는 끝내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바람이 불고 자작나무 잎들이 사각댄다. 개들은 이제 핥기를 그만두고 내 옆에 가만히 누워 나를 지킨다. 끄응 소리를 내는 녀석도 있다. 가끔 귀를 쫑긋 세우고 벌떡 일어나기도 한다. 마음의 준비는 다 마쳤는데 죽음은 쉽게 오지 않는다. 나는 하늘의 빛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것을 애써 눈을 부릅뜨며 지켜본다.
나와 인연을 맺었던 존재들은 빠짐없이 이미 우주의 일부로 돌아갔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한다. 선이가 늘 하던 이 말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파랗기만 하던 하늘이 서서히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있다.
노을이 진하니 내일은 맑을 것 같다. 그리고 난 그 내일을 보지 못할 것이다. 석양이 기세를 잃고 이제 검고 어두운 기운이 하늘 한가운데에서부터 점점 넓게 번져가며 거칠고 누른 땅을 덮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끈질기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