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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Oct 24. 2023

오사카 시내로 들어가며

                                     

오사카를 처음 갔던 건 딸이 고1 겨울방학을 맞았을때였다. 그해 겨울 오사카 여행은 여러 가지 추억을 남겼다.      


오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선 시동생과 이혼하고 십년도 훌쩍 더 지난 옛 동서를 스튜어디스로 만났다. 앞자리 승객이 캐리어를 선반에 올리려고 애쓰는데 뒤에서 “도와드릴게요, 손님!”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목소리만으로도 나는 그녀, 그러니까 십년도 훨씬 전에 짧은 몇해를 손아래 동서로 지냈던 그녀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목소리는 지문처럼 찍어 보여주기 전에 이미 소리만으로 알수 있는 그런것이구나 싶었다.

그날 그녀는 조금 울었다. 나도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녀 인생의 서사를 내가 다 알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여자로서 이해할수있는 만큼은 안쓰러웠다. 그날이후 그녀를 또다시 만난 일은 없다.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어느날 우연히 다른 여행길에서 목소리만으로도 그녀를 다시 알아챌 날이 올런지도.

   

그 겨울 오사카의 밤길을 걷다가 뜬금없이 딸이 길에서 파는 점퍼를 사고 싶다고 했다. 길에서 파는 것을 굳이 사주고 싶지 않아 저녁을 먹고나서도 그것을 사고 싶다면 그때는 사주겠노라고 했다. 결국 밥을 먹고 다시 그 집을 찾아갔는데 옷장사는 이미 파장이었다. 고등학생이어도 아이는 아이였다. 정말 사고 싶었는데 엄마가 길에서 파는 것이라고 사주고 싶어하지 않았던 거라며 길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막 차에 오르려던 옷장사가 그 광경을 보았는지 돌아와선 상자에 넣은 옷을 다 꺼내어 가며 그 점퍼를 찾아주었다. 그의 친절은 돈벌이만 생각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에게도 인사하고, 점퍼를 사입은 딸도 순식간에 즐거운 기분이 되어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여러해동안 겨울이면 그 점퍼를 입었다. 어느날 세탁하면서보니 ‘made in korea’여서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지만 그 점퍼를 볼때마다 오사카 길거리의 그날이 생각나곤 했다. 취향을 무시한다며 울던 딸아이, 내 기준으로 아이의 눈높이를 생각했구나 싶었던 마음, 그리고 집에 들어가려다말고 상자 여러개를 다 뒤져 그 점퍼를  찾아준 일본인의 친절까지.      


그이후 오사카를 한두번 경유한 기억은 있지만 그마저도 오래전이다. 길에서 울던 고등학생 딸은 이제 서른의 나이가 되었다. 여행루트를 짜고 길안내를 했다. 그 예전에는 내가 보호자로 아이를 이끌었는데 이제 그 세월을 넘어 우리의 역할이 바뀐 기분이다. 좋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 한편 나이를 먹었구나 싶어 조금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같은 여행지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참 다른 모습이다. 가족이 함께 왔을때는 아직 어린 딸의 취향을 고려하며 가족이 함께 움직였다. 근교도시를 가기위해 잠깐 경유하던 남편과의 여행은 훨씬 단출한 기분이었다.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함께 그 소회를 공감하는 사이인 것이다. 아이는 요즘 유행하는 커피점도 많다며 이해하지 못하지만, 일본 여행길에서 우리가 늘 ‘도토루 커피’를 찾는 이유다.    

  

딸과 함께 내린 오사카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시내에서 우리는 목적지인 고베로 갈 예정이었다. 앞자리에 앉아있는데 내 또래의 여자와 머리가 눈처럼 흰 할머니 한분이 함께 차에 올랐다. 둘은 누가봐도 모녀이구나 싶게 닮았다. 딸로 보이는 이가 먼저 버스에 올라 티켓을 달라는 기사의 말에 가지고 있는 네 장의 티켓을 모두 내놓았다. 기사는 두장을 도로 그 여인에게 주며 “리턴 티켓”이라고 했다. 그들은 우리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기에 의도치 않게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해냈어, 엄마!” 

유럽도 함께 여행한 그들 모녀에게 일본은 처음인지, 리무진 타는 것까지 성공했다며 딸은 아이처럼 으쓱해하고 있었다. 그런 딸을 보며 고운 백발에 단정한 여행복장을 한 그녀의 엄마는 웃었다. 그 어머니는 그녀의 머리처럼 희고 깨끗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딸과의 여행을 준비하며 설레어 했을 그 마음같았다. 나는 그 할머니의 흰 운동화를 한동안 물끄러미 봤다.      


옆에 앉은 나의 딸은 구글로 고베가는 열차를 검색하느라 여념이 없고, 건너편 자리의 모녀는 계속 즐거워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오사카의 시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빌딩이 높아지고, 차들이 많아졌다. 곁눈으로 할머니의 그 흰 운동화를 보는 내내 어쩐지 나의 엄마가 계속 생각났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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