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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15. 2024

청춘의 방비앵

                              

‘청춘’은 어디까지일까. 분명한 것 하나는, ‘꽃보다 청춘’이 꼭 청춘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물리적인 젊은 날을 지나 온 사람일 확률이 높다.      


한국의 겨울을 뒤로 하고, 일년 내내 더운 나라, ‘꽃보다 청춘’으로 잘 알려진 라오스로 향했다.  라오스의 수도는 비엔티안이다. 그곳까지는 라오항공을 이용했는데 스튜어디스의 기내방송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영어라면 대부분의 단어에 please를 붙여서 해결보는 생존영어수준이지만 기내에서 승무원들이 하는 멘트라는건 뻔하다. 하지만 그 뻔한 멘트조차 그들의 묘한 동남아억양과 뒤섞여서 영어인지 라오어인지 애매모호해 웃음이 났다.

기내 스크린은 없으며, 충전 usb는 있지만 작동하지 않고, 기내 화장실 문이 폴딩도어가 아니라 일반 문처럼 밖으로 잡아당겨 열리는건 처음 봤다. 좌석시트는 마치 70년대 시내버스에서나 봄직한 비닐시트였다. 이래저래 신기하고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워 동행한 남편에게 슬쩍 말했다. 

“비엔티안까지 무사히 날아는 가겠지? ”

그러면서 속으로 내가 가입하고 온 여행자보험증서를 떠올렸다.     


불과 대여섯시간만에 겨울은 여름이 되었다. 비엔티안 공항에서 피켓을 든 기사를 만나 방비앵으로 향하는 내내 푸른 산, 더운 공기, 날리는 흙먼지. 건기의 동남아에 왔음을 실감했다.     


예약한 호텔방에 들어섰을 때 집어던지듯 배낭을 내려놓고 테라스로 뛰어나갔다. 바로 앞의 푸른 쏭강에 롱테일보트와 카약들이 물을 따라 지나가고, 강 건너 높고 둥근 모양의 산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풍경을 넋놓고 봤다.

2박 3일을 머무는 동안 나는 그렇게 틈틈이 발코니에 앉아 쏭강을 봤는데 작고 흥겨우면서도 어딘지모르게 고요한 기분이드는 이마을의 느낌은 바로 그 강건너 멋진 산의 풍경때문이 아닐까싶었다. 특히 해지는 시간에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으면, 둥글게 솟은 산들 뒤로 해가 조금씩 조금씩 스미듯 내려갔다.      


방비앵을 청춘의 여행지라 일컫는건 아마도 ‘꽃보다 청춘’같은 여행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 다양한 액티비티때문일 것이다. 막상 액티비티는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아침 일찍 툭툭이를 대여해 블루라군으로 떠났다. 

툭툭이는 트럭을 개조한 탈것이므로, 당연히 사람을 위한 승차감일 리가 없다. 게다가 방비앵의 도로 사정은 울퉁불퉁하기 이를데 없어, 툭툭이에 짐짝처럼 실려 기둥을 부여잡고 갔다. 그래도 창이나 칸막이 따위는 없는 트럭 짐칸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바람만큼은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동남아를 한 여름에만 갔던 나는, 지난 연말 치앙마이의 그 쾌적한 온도를 경험하고 이제 동남아의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방비앵역시 땀이 나지 않는 적당한 공기가 퍽 맘에 들었다.      


영상으로만 보던 블루라군엔 청춘들도, 청춘을 지나온 자들도 풍덩풍덩 뛰어들었다. 에메랄드빛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속에 들어갔다가 수면위로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우리는 코코넛을 껴안고 쭉쭉 빨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십대의 세 아들을 데리고 온 한국인 가족이 래쉬가드를 입고 나무 위 다이빙대에서 아래로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남편과 아들들이 뛰는 것을 보던 엄마가 용기를 내어 조심조심 다이빙대로 올라갔는데 막상 올라가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자꾸 뒤로 물러섰다. 지켜보던 외국인들이 저마다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카운트다운을 하기도 했다.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는데 막상 그 엄마는 뛰고 싶으면서도 무서워 뒷걸음 치다가, 앞으로 나서기를 반복했다. 그때였다.      


큰 아들이 뛰듯이 다이빙대로 올라가 엄마 옆에 서서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자세를 이렇게, 저 방향으로. 아들은 엄마 어깨를 잡고 설명을 해주었는데, 이제 엄마가 뛰는 걸 지켜보겠구나 하는 순간, 그 아들이 첨벙 물로 뛰어 들었다. 그러더니 물속에서 엄마에게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 걱정말고 뛰어, 엄마!”

그 소리에 망설임없이 그 엄마는 물로 뛰어들었다. 사방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지고, 아들을 따라 물에서 나온 엄마는 흥분이 책 가시지 않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블루라군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툭툭이는 여전히 덜컹거리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다. 나는 물에 뛰어들던 그 모자를 생각했다. 누구는 방비앵을 유명 연예인이 나온 프로그램으로 기억할 것이고, 또 누구는 카오삐약이나 라오비어같은 맛있는 것으로 기억할수도 있겠다. 나는 블루라군의 그 다정한 모자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막상 블루라군에서 계속 함께 시간을 보낸 남편은 그들 모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본 풍경중에서 내가 보지 못한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풍경에서 서로 다른 것을 본다. 내가 본 것은 다정한 그녀의 아들이었을까, 아니면 어느새 훌쩍 큰 아들에게 의지하는 순간의 그녀였을까. 그도 아니면 함께 손을 잡고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없는 내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방비앵을 떠나는 날, 쏭강의 푸르고 잔잔한 물을 오래 바라보다가 조용히 호텔 테라스의 덧문을 닫고 돌아섰다. 아마도 세월이 더 지나고, 그리운 것은 더 많아진 어느날이면 오늘을 추억하면서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꽃같은 청춘이었어” 라고. 하지만 한발 내딛고 뒤돌아보면 모두 지금보다 청춘인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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