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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16. 2024

루앙프라방의 느린 시간

                               

중국의 자본이 들어간 ‘일대일로’ 사업으로 라오스엔 중국 본토까지 연결되는 고속열차가 다닌다. 길을 내고 나면, 사람들이 오간다. 사람들과 더불어 많은 것이 오고 간다. 그 오가는 것들은 모두 좋기만 할 리가 없고, 오가는 양쪽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차역은 중국에서 봤던 기차역과 거의 똑같고, 보안 검색을 마친 티켓 소지자만 역내에 들어가는 시스템도 똑같다. 분명 라오스지만, 마치 중국인듯한 그 분위기 탓에 어쩐지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는 일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거나, 감수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알지만 받아들 수밖에 없는 독배도 있을 것이며, 내가 받아든 무기를 공격에 쓸지, 방어에 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도 올 것이다.   

   

방비엥을 떠나 기차는 루앙프라방으로 향했다. 여러 해 전 중국 칭다오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취푸를 찾아가던 길의 양옆은 너른 평원이었는데, 산이 많은 라오스의 고속열차는 대부분 터널을 지났다. 터널을 얼마나 많이 뚫어 놓았는지 고속열차는 막힘없이 달렸다. 

한 시간여를 달려온 루앙프라방역은 방비엥과는 한눈에 봐도 규모가 컸다. 마치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에스컬레이터도 있어!” 외치고 나니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꽝시폭포를 찾아갔다. 물줄기가 레이스처럼 얇고 가늘게 펼쳐지듯 흘러내리고 있는 아름다운 폭포였다. 예쁘다. 첫 마디가 절로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그 하늘하늘 아름다운 폭포를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비취색의 물빛도 신비로웠고, 한번에 떨어지는 장엄함대신 군데군데 계단식의 웅덩이를 만들어내며 이어지는 폭포의 다채로움에 물길을 따라 걷는 재미가 퍽 좋았다.

메인 폭포에선 수영금지였지만 아래쪽 폭포에선 수영이 허용된다고 했다. 서양인들 몇은 과감한 비키니를 입고 이미 물속으로 풍덩 풍덩 들어가 있었다. 여행지에서 누리는 자유는 한 가지 모습일 리가 없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그들에게도, 또 그들을 바라보며 웃는 우리에게도 서로 다른 색깔의 자유로움이 함께 한다.    

  

꽝시폭포에서 내려와 우리는 커다란 생선을 통째로 꼬치에 구워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굽는 그 생선 꼬치를 먹고 싶었는데 메뉴판에서 찾을 수가 없으니 손짓으로 그 꼬치를 가리켰다. 다행히 주문을 받는 소녀가 눈치 빠르게 알아들었다. 라오스에선 꽤 어린아이들도 일을 했다. 식당에서도, 길가 오토바이 렌탈샵에서도 어린이들이 일하는 건 쉽게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야시장에 아기를 데리고 나와 좌판을 벌인 젊은 엄마도 흔했다. 삶이 신산한 것인지, 그들의 문화인지 여행자인 나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둘 다 아닐까 싶은 맘이 들었다. 소녀가 손짓으로 하는 우리 말을 알아듣고 가져다준 커다란 생선구이는 정말 맛이 있었다.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이 여전한 채로 줄지어 선 아름다운 올드타운에 숙소를 잡았다. 앞은 남칸강이, 그리고 뒤엔 메콩강이 흘러갔다. 오래된 건물은 영화에서 보던 것 같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원형 나무계단이 있고,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복도가 있었다. 그리고 방에는 덧문이 달린 창이 두 개나 있었는데 창밖에 푸른 남칸강이 하나 가득 담겼다. 

세월이 느껴지는 창의 덧문을 열고 잠시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마치 옛 시절의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텔을 나서 뒤쪽의 메콩강변으로 나갔다. 강변에는 카페며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한 곳에서 식당 앞 메콩강의 캣피쉬로 만들었다는 요리를 먹었다. 선선한 날씨의 루앙프라방에서 굳이 실내에 들어갈 필요가 없으므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강바람이 부드럽게 불었고, 남칸강보다 몇 배는 넓은 메콩강엔 유람선들이 떠다녔다. 그리고 커다란 코끼리가 배를 타고 가는 기이하고도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이곳이 라오스라는 것을 실감했다. 해가 지는 동안 루앙프라방 맥주를 마시며 메콩강을 오래 봤다.   

   

사실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새벽 탁발행렬이었다. 일찍 일어난 다음 날 새벽 여섯 시에 서둘러 나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스님들이 지나가는 행렬을 따라 작은 의자와 돗자리가 놓여있다. 그 앞의 상인에게 찹쌀밥과 과자를 사가지고 거기 앉아 탁발승에게 시주하는 것이다. 스님은 어린 동자승부터 나이가 지긋한 노승까지 다양했다. 모두 맨발이었다. 

밥과 과자를 사가지고 의자에 앉아 스님들을 기다렸다. 비닐장갑을 함께 주므로 밥을 뭉쳐서 스님들이 지나갈 때 그릇에 넣어드리면 된다. 양 조절을 하지 못해 너무 일찍 음식이 떨어져서 난감했는데, 지나가는 스님들이 오히려 탁발 그릇에서 밥을 꺼내어 빈 그릇에 놓아두고 가셨다. 

그들은 가진 그릇을 채우는 것이 목표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스님들께 받은 음식을 다시 다른 스님들께 드릴 수 있었다. 동네 개들도 무언가 얻어먹고 싶어 스님들을 따라다녔고, 어린아이들이 스님들께 음식을 얻어가기도 했다. 


탁발행렬이 끝나고 나자 순식간에 의자와 돗자리들이 치워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한 얼굴의 거리로 돌아갔다. 불교국가인 라오스는 누구나 일정 기간 승려로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그들에게 종교는 신념일까 의무일까. 주황색 승복을 입은 그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한 듯했는데, 어쩌면 하나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하나의 생각은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마음이었다.     


우리는 남칸강과 메콩강이 합쳐지는 지점까지 천천히 걸었다. 도중에 생명의 나무 모자이크로 유명한 왓 시앵텅에도 들어갔고, 남칸강을 건너는 나룻배도 탔다. 사공은 메콩강에 비하면 가느다란 남칸강을 하루종일 왔다갔다 했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건너려는 사람이 있으면 뱃삯을 받고 낡은 배를 움직였다. 

우리가 탔을 때 뭍에서 벗어난 배의 시동을 걸었는데, 한참 애를 쓰도록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배는 이미 뭍에서 멀어졌고, 아주 천천히 남칸강을 따라 흘러갔다. 사공은 난처한 얼굴로 멋쩍게 웃었다. 어쩐 일인지 우리는 걱정이 되지 않아 함께 웃었다.     


여행은 이상한 믿음을 준다. 잠깐 떠나온 것이니 다시 돌아갈 것이다. 낯설고 즐거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당연하게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실 여행지에서의 사건 사고라는 건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닌데도 늘 여행은 무탈하게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니 시동이 걸리지 않는 낡은 배가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는데도 태평했던 것이 아닐까.

사공이 한참 애를 쓴 끝에 시동이 걸리고 우리는 남칸강을 무사히 건넜다. 우리 여행도 그럴 거라는, 또 한 번의 근거 없는 믿음으로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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