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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Feb 17. 2024

수도 비엔티안

                              

시골 읍내만한 방비앵보다  낫다고 해도, 루앙프라방 역시 작은 마을이었다. 남칸강과 메콩강 사이 길쭉한 올드타운은 걸어서도 얼마든지 하루에 몇바퀴를 돌수 있었으니까.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구하기 어려워, 예상했던 오후 네시 기차를 탈수 없었다. 결국 저녁 여섯시 기차를 탔는데 중국인과 라오스인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뒤섞인 거대한 인파를 목도했다. 기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데도, 그리고 승객들이 올라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처음 방비앵의 기차플랫폼을 보고 이렇게 휑할만큼 넓게 만들 이유가 있을까했는데 루앙프라방에서 기차를 타기위해 선 인파를 보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수 없으나 특히 우리가 탄 객차엔 거의 여행객들이었다. 서양인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중년의 여행객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건 서양인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자기 키만큼을 본다. 나 역시도 중년의 나이여서 그렇게 보였던 걸까.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기차는 어둠속을 달려갔다. 비엔티안으로 가고 있다는 건, 우리의 여행도 끝나간다는 의미다. 그새 방비앵과 루앙프라방이 그립고, 곧 만나게돌 비엔티안이 궁금했다.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수도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타고온 비행기도 비엔티안의 왓타이공항에 내렸었다. 공항에서 바로 방비앵으로 갔기에 비엔티안은 이제야 제대로 만났다.

가로등이 있고, 도로에 중앙선이 있다. 어쩌다가 횡단보도가 있고, 또 어쩌다가 신호등이 있다. 신호등에 이렇게 감격할 일인가 싶었는데, 사실 지나온 두 도시에 비하면 이곳 도로는 차로 가득하다. 사람이 건너려고 해도 쉽사리 양보해주지도 않기에 신호등이 없는 도로를 건널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택시앱이 있다는 거였다. 우버나 그랩은 없지만 로카앱을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택시를 탈 수 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금액이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릴 때 앱에 뜬 금액을 보여주면 그대로 결제를 하면 되는 시스템이다. 더 이상 툭툭이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역시 문명의 신세계를 새롭게 경험하는 기분이다.  

로카앱으로 부른 차를 타고 비엔티안 시내 이곳저곳을 다녔다. 중앙선과 신호등뿐 아니라 도로포장도 역시 상태가 훨씬 나았다. 역시 수도는 수도구나! 우리는 웃었다.     


빠뚜싸이 독립문을 찾아갔을 때, 여러해전 갔던 파리의 개선문을 떠올렸다. 작년 무릎골절 수술을 한 후유증이 아직 남은 나는 아래에 있고, 남편은 독립문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나는 광장을 거닐다가 한 서양인 부부를 봤는데, 남편도 거동이 편해보이지 않았고 아내는 보조기구를 밀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두세배 느린 속도로 걸으며 건물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편안하고 여유있는 표정으로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하는것이지 다리가 떨릴 때 하는 것이 아니라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다리가 떨리지만, 가슴도 여전히 떨려 여행이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행은 젊고 건강한 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속도에 맞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오스는 이제 겨울을 지나고 서서히 더워지는 시기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낮에 제법 더웠다. 씨사켓 사원을 찾아갔는데 불상들이 늘어선 회랑그늘에서 나오기 싫을 정도였다. 그 따가운 햇살아래에서 라오스 전통 복장을 입은 모델이 촬영중이었다. 그녀는 진한 화장에, 두껍고 번쩍이는 전통의상을 입고, 한뼘은 되어보이는 높은 구두를 신었다. 햇살도 뜨거운데 촬영 반사판까지 더해지니 그녀는 잠시 쉴때마다 파라솔아래에서 연신 부채질을 했다.     


씨사켓 사원만으로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지난 연말 치앙마이 여행에서 워낙 많은 사원을 봤기에 다들 비슷비슷해보이는 동남아 사원의 감흥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정작 마음을 빼앗긴건 사원내부에 있었다. 여태 본 사원들은 내부에도 금칠이 번쩍번쩍하거나 요란한 색상으로 장식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씨사컷 사원의 내부엔 벽화로 채워져있었다. 오랜 세월에 낡고 바랜 그 벽화를 오래 봤다.       


비엔티안을 떠나기전 진하고 달달한 라오스커피를 한잔 더 마셨다. 집에 돌아간 이후에도 아마 한동안 노을이 질때면 방비앵의 쏭강을 떠올릴 것 같고, 행여라도 붉은 꽃이 피어난 이름 모를 나무를 보게 된다면 루앙프라방 호텔 창가에서 흔들리던 그 꽃나무가 그리워질 것 같다. 

이렇게 나는 그리움을 안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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