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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04. 2024

후쿠오카를 걸으며

                                

내게 후쿠오카는 낯설지 않은 여행지다. 사실 후쿠오카 시내만 놓고 본다면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지만, 주로 근교 소도시로 떠나는 길에 여러 번 들렀다. 미야자키, 사쿠라지마 등 규슈 남부로 갈 때도 그랬고, 후쿠오카라고 하면 대부분 먼저 떠올리는 벳푸, 유후인 쪽으로 갈 때도 그랬다.

연휴를 하루 앞둔 2월의 마지막 날. 아직 여행객으로 붐비기 이전의 새벽 공항에 앉아 창밖을 봤다. 갔던 곳을 또 가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누구와 함께, 어느 계절에, 어떤 주제로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 일에 대해서. 그리고 이번 여행에 대해서 생각하며 점점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동안 서서히 하늘 끝부터 동이 터 올라왔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딸의 이름을 따서 ‘보람 투어’라고 부르기로 했다. 딸이 근무하는 영어유치원은 3월 신학기를 앞두고 며칠간의 단기방학이라고 했다. 후쿠오카 여행을 하겠다는 딸의 말에 “나도!” 외치며 따라붙은 것이 시작이었다. 

“난 오로지 캐릭터샵만 다닐건데…?” 라는 딸의 말엔, “이미 후쿠오카에서 더 이상 볼 것은 없을뿐더러, 나도 캐릭터샵 다니고 싶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결국 3박 4일의 일정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오르며, 이름하여 ‘보람 투어’의 서막이 열렸다.     


딸의 이름을 딴 ‘보람 투어’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샵과 맛집을 사냥하듯 다니는 일정이었다. 떠나기 전날 밤, 딸이 일정표를 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A4용지가 빼곡하게 산리오샵, 포켓몬 센터, 키디랜드 기타 등등 온갖 종류의 캐릭터샵이 가득했다. 

“무조건 따라갈 테니, 모든 것은 너의 맘대로!”라고 한 나는 당연히 이의가 없었다. 게다가 나 역시 딸 못지않게 캐릭터용품을 좋아하는 편이라 은근 기대가 되기도 했다. 특히 나는 우리나라에선 흔하지 않은 ‘우사기’라는 노란 토끼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래서 신이 난 나 역시 외쳤다. 

“내 사랑 우사기를 만나러 가야지!”     


후쿠오카는 어느 거리는 낯설다가, 또 어느 거리는 익숙하기도 했다. 익숙한 곳들은 대부분 몇 해 전 남편과 다녔던 곳들이고, 낯선 곳들은 이번에 딸이 요즘 인기인 곳이라며 이끈 곳들이었다. 내게 익숙한 카페라면 도토루, 고메다 커피였지만 딸이 안내한 곳은 작은 구멍으로 곰 발이 나와 주문서를 주고받고, 음료를 내어주는 그런 기발한 카페거나 게임 캐릭터로 꾸민 카페들이었다. 

우리는 살짝 비가 오는 후쿠오카 거리를 하루 동안 이만 보도 넘게 걸었다. 남편과 여행할 때의 아날로그 감성도 좋지만, 딸의 취향대로 여행할 때의 새로움도 그 못지않게 즐거웠다. 딸 역시 뿌듯해하며 말했다.

“우리가 취향이 똑같아서 너무 좋아. ”


이틀째 되는 날, 캐널시티의 그 인파 속에서 회사 일로 뒤늦게 합류한 남편을 만났다. 일본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면서 혼자 비행기를 타고 와서 공항에서 호텔로, 그리고 다시 캐널시티로 와서 우리를 만날 일을 걱정하던 남편은 반갑다며 펄쩍펄쩍 뛰었다. 이제 보람 투어는 세 식구가 완전체로 합체하여 세 명이 되었다.

딸은 빼곡하게 적힌 일정표 속의 캐릭터샵 순례를 이어갔다. 나는 딸과 함께 캐릭터용품에 빠져보기도 했고, 남편과 함께 길 안내를 하며 앞장서는 딸을 뒤따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여긴 그때 왔던 때랑 하나도 안 변했네.” “우리 애는 이제 어른이 되었어.” 이런 이야기들.     


첫날 내리던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고, 햇살은 퍽 좋았다. 후쿠오카 이곳저곳을 걷고 또 걸으며 문득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어느 날엔가 또다시, 오늘을 이야기하며 우리들이 같은 곳에 서 있으면 좋겠다고. 지금 말하듯이 그때에도 “여긴 안 변했네.”, “ 이런 것은 새로 생겼나 봐” 같은 말들을 나누면서 추억을 떠올리고,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어쩌면 삶이란 그런 소소한 순간들을 누리고 기대하고 간직하며 사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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