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홍서가에서의 '에세이 쓰는 시간' 네 번의 수업이 끝났다. 뻔한 말이지만, 빠르다.
처음엔 뒷감당 없이 원주까지 가야 하는 수업을 덥석 하겠다고 해놓고는 뒤늦게 날씨를 걱정했었다. 겨울, 그리고 강원도라면 역시 무서운 건 눈이다. 원주가 아무리 백두대간을 넘는 강원도 깊은 곳은 아니라고 해도 자꾸 날씨 앱을 봤다.
눈이 오면 어쩌지. 약속을 못 지키면 어쩌지.
돈으로 하는 약속이든, 마음으로 하는 약속이든 일단 약속한 것은 지키지 않으면 맘이 불편한 나는 제일 걱정되는 것이 눈이었다. 운전을 한 지 이미 이십 년도 훌쩍 넘었다. 장거리 운전도 익숙하고, 밤 운전도 불편하지 않다. 구불구불한 고갯길도, 다소 속도를 올리는 고속도로도 다 괜찮은데 눈길만큼은 달랐다. 눈이 오면 아예 운전대를 잡지 않는 사람이 나였다. 무엇이든 해봐야 늘고 익숙해지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눈길 운전에는 아예 훈련이 되어있는 않은 것이다.
걱정대로 첫 수업 날은 눈이 왔다. 다행히 눈은 흩날리며 쌓이지 않고 내린 채로 녹았다. 오후 수업이었는데, 걱정되신 대표님이 오전에 확인 문자를 주셨다. 대표님도 눈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의 글쓰기 수업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글 쓰는 시간을 갖는다. 서로의 글을 나눈다. 역시 나는 이런 시간이 참 좋다. 그래서인지 매주 원주로 향하는 길도 늘 맘이 가볍고,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길이 멀지 않았던 이유는, 비단 내가 이십 년 가까이 봄가을이면 낚시를 하러 다니던 강원도를 향하는 길이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과속카메라의 위치를 대강 외울 정도로 그 길이 익숙해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글쓰기라는 특이한 활동을 하는 배경에는 다른 기술과 지식과는 다른 일종의 ’우정‘이 개입된다고 생각>하신다는 대표님의 말씀에 나는 공감했다. 아마도 그 공감하는 마음이 나를 원주까지 즐겁게 이끌었던 것 아닐까. 에세이를 쓰는 법을 배우겠다고 오신 분들께 과연 내 그릇이 맞았는가는 섣불리 자신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들이 함께 글을 쓰고, 글의 이야기를 나눈 네 번의 시간 동안 깔린 마음은 바로 ’우정‘ 그것이었을 거라 믿는다.
피드백 위주의 글쓰기 수업을 했기에 매주 과제를 빠짐없이 내주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정말 성실하게 모두 과제를 보내주셨다. 단 한 번도 과제를 보내지 않은 분이 없었다.
수업 전날 밤이면 책상에 앉아 이메일로 날아온 수강생분들의 과제를 읽고, 피드백했다. 피드백한 과제를 프린트하고, 다음날 수업교재로 챙겼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글을 읽는 것은 즐거운 독서이지만, 피드백을 해야 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남의 글에 손을 댄다는 조심스러움, 고쳐야 할 부분을 찾아내며 읽어야 하는 피곤함이 겹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를 접하는 일은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시홍서가 대표님께서 직접 구워주신 빵을 나눠 먹었다. 무언가를 함께 먹는 일의 그 따뜻함도 나눈 것이다. 상자 안에 넉넉히 구운 빵을 포장해주신 마음을 사양도 못 하고 받아들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는 촉촉하게 젖어있고, 사방은 안개에 휩싸여있었다.
집에 올 때까지 그렇게 보슬비가 계속 내리고, 오후가 일찍 저물었다. 이렇게 또 한번의 '에세이 쓰는 시간'을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