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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05. 2024

뒷모습이 하는 말

                                    

그리 신앙심이 깊은 천주교인은 못 되는 나는, 주일엔 노느라 바쁘고 겨우 매주 평일 하루 성당미사에 갈 뿐이다. 그나마도 이런 날라리 신자의 평일 미사 참여는 부모님의 상을 한 달에 두 번 연달아 치른 2017년 이후부터의 일이다. 

유언에 따라 부모님을 물가에 묻고, 비가 오는 날이면 처량하게 울어댄다는 불효자 청개구리처럼 나 역시도 돌아가신 후에야 말 잘 듣는 딸이 되었다. 

“우리 죽거든 제사는 지내지 말고, 성당에 위령미사만 신청해라”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기일이며, 명절에 따로 제사를 지내지 않고 대신 위령미사를 신청하고 성당에 간다. 어찌 생각하면 그 덕에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성당에 다시 드나들고 있으니, 딸을 그리로 이끈 부모님의 큰 그림이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매주 평일 오전 한 시간이라도 매주 성당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 앉아 있다 오곤 한다. 처음엔 의무감이었고, 언젠가부터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 시간이다. 그 ‘언젠가’의 계기는 평소와 달랐던 신부님의 미사 끝 인사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미사가 끝났으니 돌아가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것이 통상 미사 말미의 신부님 말씀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이제 미사가 끝났으니 모두 평화롭게 돌아가십시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하지만 그 말엔 마력이 있는지, 나는 정말 그날 이후 미사에서 돌아오는 길엔 그 어떤 순간보다 평화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비록 일상은 이어지고, 생활의 파도는 넘실대는지라 그 평화가 지속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일주일에 한 번, 그 마법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은 잔잔해지고 평온해졌다.    

 

날라리 신자여도 오래 평일 미사에 다니다 보니 어느새 늘 보는 낯익은 이들이 생겼다. 물론 나는 성당의 그 어떤 공동체에도 참여하지 않고, 그저 공기처럼 스며들었다가 조용히 빠져나올 뿐이니 낯익은 얼굴과 인사를 나누거나, 말을 섞어본 일은 없다.

그중 늘 보는 뒷모습이 있다. 왜 뒷모습이냐면, 나는 늘 맨 뒤에 가깝게 앉기 때문에 거의 모든 신도들의 뒷모습만이 익숙하다. 그중에서도 낯을 익힌 그 뒷모습의 여인은 나처럼 늘 비슷한 자리에 앉는다. 대부분 내가 앉은 자리의 서너 자리 앞쯤이다. 아마 그녀도 나처럼 늘 앉는 자리에 앉아야 마음이 편한 사람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언제나 단정하게 머리를 매만지고, 요란하고 튀지 않지만 기품있는 차림으로 와서 꼿꼿하게 앉아 미사를 보고 간다. 코로나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미사를 보던 때, 그녀는 늘 진주알 같은 작은 흰 구슬로 엮은 마스크 줄을 목에 걸고 미사를 보았다. 나는 그녀의 앞 얼굴을 모르지만, 이제 단번에 신도들 사이에 앉은 흐트러지지 않은 그 뒷모습을 찾아내고 알아볼 수 있다.     


사람은 말로만 말하지 않는다. 표정이나, 몸짓이 더해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소리 내지 않고, 드러내지 않아도 많은 말을 건넬 수 있다. 뒷모습이 그렇다.      

구부정한 어깨, 부스스한 머리, 혹은 삐딱하게 짚은 다리.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희끗희끗한 머릿결, 혹은 막 가위로 다듬은 듯 간결한 머리카락. 

그림처럼 가만히 앉은, 혹은 건들건들 가만있지 못하는 어깨.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가끔 생각한다. 남들이 봐주거나, 거울에 비춰보거나 사진을 통해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내 뒷모습이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무언가를 거치지 않은 날것의 내 뒷모습은 어떤 말을 할까 가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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