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통과하는 일
이미 죽은 이는 죽지 않은 채 살아있었고, 아직 죽지 않은 멀쩡한 이는 죽어있었다. 간밤 꿈에서의 일이다.
꿈속의 나는, 죽지 않은 이가 현실에선 이미 죽은 사람인 걸 모르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혼자서 아쉬운 마음에 빠져 한동안 누운 채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만날 수 있고, 말을 나눌 수 있고, 만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 줄도 모르고 꿈속에선 왜 그리 무심하게 대했을까. 꿈속에서라도 그렇게 만날 줄 알았더라면 묻고 싶고 전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잘 지내고 있느냐고, 그곳은 어떠하냐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언제나 생각한다고 하는 말들, 떠나기 전 전하지 못했던 말들을 말이다.
현실에선 죽었지만, 꿈속에서 살아있는 건 엄마였다. 엄마는 꿈속에서도 마치 현실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병실에 누운 모습 그대로였다. 머리가 아프다고, 의사에게 약을 받아오라고 했다. 침상에 누워있는 엄마, 수척한 엄마는 낯설지 않지만 동시에 낯설기도 하다. 일 년 동안 아파 누운 엄마를 매일 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이의 엄마보다 먼 엄마가 남았다. 건강하던 엄마. 젊던 엄마. 기운 넘치던 시절의 내 엄마.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또 하나의 꿈속에선 멀쩡하게 살아있는 이가 이미 죽었다고 했다. 죽은 이는 이미 입관을 하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 사실 숨이 멎음과 동시에 그는 떠난 것이지만 남은 자들이 그를 보내는 일은 떠난 이처럼 홀가분하게 숨을 멈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법이다. 꿈속의 나는 떠난 이를 보내는 일들을 의논하고 있었다.
멀쩡히 살아있지만, 꿈속에서 떠난 이는 남편이었다. 이미 입관을 마쳤다는 남편을 두고,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담담했다. 하지만 깨어났을 때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들었다. 오래 연애하고, 그보다도 더 오래 함께 살았다. 인생의 크고 작은 부침을 함께 겪었고, 때로는 속이 상해 얼굴을 돌리고, 때로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여기까지 걸어온 사이다. 혼자 사는 게 속 편하지, 같은 소리를 우스갯소리로 하면서도 실제로 혼자된 삶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잠에서 깨어나고도 일어나지 않은 채 한동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미 죽은 이가 사무치게 그리웠고, 멀쩡하게 지금 곁에 있는 이는 새삼 애틋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아침이었는데, 잠시 후 뜻하지 않은 부고가 날아들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언이었다.
이제 친구들은 경조사에서 만나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우리 나이는 아직 자식의 혼사는 이르고, 주로 부모님들의 장례식에서 보는 일이 잦다. 고인께 인사를 드리고, 늘 명랑한 친구가 상주 완장을 차고 검은 양복을 입은 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봤다. 우리들은 말했다.
“결혼한다고 모이더니, 애들 돌잔치라고 얼굴 보고, 이제 이렇게 부모님 장례식에서 보는구나. 이런 게 나이 드는 일이고, 사는 일이겠지. 미루지 맙시다. 지금 하고 싶은 걸 합시다. 나중이 있다고 여유 부리지 말자고.”
친구들과 헤어져 주차장으로 천천히 걸었다. 아직 5월은 오지 않았는데 이미 한낮 햇살은 머리 꼭대기에서 뜨거웠다. 부모님이 떠나신 건 2017년 5월이었다. 아빠는 5월 1일에 떠났다. 아픈 몸으로 떠나는 아빠의 입관을 지키며 울던 엄마는 5월 19일에 떠났다. 그해 5월 그렇게 두 번의 장례를 치렀다. 그날 이후 연화장을 찾은 건 처음이었다.
연화장의 긴 진입로를 천천히 빠져나왔다. 백미러에 연화장의 모습이 멀어지고, 앞 유리로 광교의 아파트 풍경이 다가왔다. 이제야 간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의 아침을 맞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사는 일이란 이렇게 매 순간 생과 사의 경계 어디쯤을 통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