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목감기
'내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이름도 다소 생소하고 발음하기 어려운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쓴 첵이다. 직업군인이었던 작가는 불법 결투를 벌인 죄로 42일간 자기 방에 연금되는 형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방에서 나가지 못한 그 기간 동안 자기 방을 여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것들의 이야기를 썼다. 읽은 지 오래라 글은 대부분 잊었으나 그 컨셉이 신선해서 기억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글의 언저리를 맴돌며 살고 있는 나는, 이제 ‘잘’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 잘 쓴다는 것은, 무언가 잘 쓸거리가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문제는 그 잘 쓸거리라는 것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에 이야기는 많다. 하나의 책이 나와서 인기도서의 반열에 오르면 그 비슷한 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그 유행의 시기는 그렇게 끝나고 또 다른 무언가가 순위에 오르내린다. 책의 세계도 이러한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았다.
늘 무엇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할까, 내가 쓴 글을 어떤 주제로 엮어야 할까 고민하는 나에게 그 책이 오래 남아있는 것은 바로 그때 내가 느낀 신선함 때문인지 모른다. 그 옛 시절에 이런 독특한 시도라니, 싶은 마음.
책의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다. 사실은 어제와 오늘 나는 그 작가의 마음과 비슷한 기분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제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억 억 끅끅... 꾀꼬리 같은 목소리랄 건 없지만, 그래도 질그릇 같은 소리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 목소리는 내가 뱉고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목구멍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기침도 가끔 나왔다. 나아가던 목감기가 다시 심해졌구나! 직감했다.
미국에 사는 언니가 잠깐 다니러 와서 우리 집에 묵은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언니가 오기 전날 목감기 증세가 있어서 부랴부랴 약을 먹었지만 잘 낫지 않았다. 목을 쓰지 않아야 좀 더 빨리 낫지 않을까 싶지만, 현실은 언니와 온종일 떠들고 신나게 돌아다니기 바쁘다. 떠들고 돌아다니느라 감기가 낫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떠들고 돌아다닐 기운이 있을 만큼의 감기였을 수도 있다. 내심 언니가 와 있는 동안 드러누울 정도로 감기가 심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럭저럭 버티던 목 상태가 확 안 좋아진 아침엔 마침 언니가 친구들과 2박 3일간의 강원도 여행을 간다며 새벽에 집을 나섰다. 나를 깨우지 않고 살그머니 나간 덕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내 상태를 보여주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언니가 여행 간 2박 3일 동안 최선을 다해서 푹 쉬고, 약을 먹고 감기가 나아야했다.
침대는,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조각배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집 밖은 고사하고 침대에서도 온종일 내려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이틀간은 침대에 독서 테이블을 놓고 책을 읽었다. 어제는 그나마 글을 쓰기도 버거워서 앉은 채로 책만 네 권을 읽었다. 그러다 피곤해지고 머리가 아파지면 잤다. 끼니는 음식 배달앱을 눌러 죽을 배달해 먹었다. 그래도 오늘은 한결 나아졌다. 목소리가 나온다. 목의 이물감이 거의 없다. 아직 가래가 뭉쳐있는 기분이지만 이만해도 살 것 같다.
살그머니 침대에서 내려왔다. 몸이 나으니 어질러진 집안이 눈에 들어왔기에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배달앱을 열어 죽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어 미뤄둔 글을 썼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봤다. 여전히 저 혼자 로봇청소기가 집안을 걸레질하는 중이었다. 식탁 위에는 배달앱으로 주문해 받아먹은 죽그릇이 놓여있다. 끼니를 챙겨 먹고 나서 먹은 약은 비대면 진료 앱으로 처방받은 약이다.
침대에서 온종일 굴러다니며, 먹고, 자고, 읽은 이틀이었다. 식구들이 퇴근해 오기 전까지 나는 온종일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만 삶을 사는 일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은 시대인 것이다.
내 몸의 상태는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도 그럴까.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했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다. 내일의 삶도 오늘의 삶보다 더 좋아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