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이란 참 묘하다. 같은 사람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의 관계며 거리가 사뭇 달라지는 기분이니 말이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 아니라면 친근하게 언니, 형님, 자기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오래 알아 온 가까운 사이라 해도 어린 시절의 친구가 아니라면 꼬박꼬박 ‘OO님!’ 이라고 이름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엄마의 지인들은 나이가 들쑥날쑥했는데 ‘형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썼다. 4, 50대의 여자들이 모여 앉아 서로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 내게 신기한 장면이었다. 조폭도, 깍두기도 아닌데 여자들끼리 형님이라니. 하지만 그 호칭은 내가 결혼하고서야 이해됐다. 시댁의 손위 동서나 시누이에게 쓰는 호칭이 ‘형님’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호칭엔 익숙해지지 못해서 여전히 낯간지럽기 이를 데 없다.
‘형님’과 비슷한 듯 다른 ‘언니’라는 호칭도 입에 붙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친언니가 아니고는 그 호칭을 쓸만한 언니들이 주변에 거의 없어서인지 아직 단련되지 못한 탓도 있다. 특히나 개인적인 호칭으로는 다정한 느낌이라 좋지만, 직장에서 ‘언니’라는 호칭은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아이 엄마가 되자 주변에서 다들 ‘OO 엄마’라는 호칭을 썼다. 때로는 아이 이름을 따서 ‘OO아!’라고 부르기도 했다. 딸을 낳고 4년을 살았던 천안에서 함께 아기 키우는 또래의 엄마들을 여럿 알았다. 하지만 그 세월을 함께 이웃으로 살았어도 나는 그녀들의 본명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녀들은 ‘OO 엄마’거나, ‘OO’일 뿐이다. 그녀들에게 나 역시도 그럴 것이다.
오카리나 수업에선 이름뒤에 ‘선생님’을 붙여 호칭한다. 이를테면 ‘전명원선생님!’ 이라고 하는 식이다. 친근하게는 ‘명원쌤!’ 이라고 호칭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름뒤의 ‘선생님’ 호칭이 참 어색하다. 심지어 실제로 오래 학원을 운영하며 들어온 호칭인데도 그렇다. 학원이 아닌, 진짜 선생님의 일이 아닌 자리에서 맞닥뜨리는 그 호칭은 그렇다.
생각해보면 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주로 관공서에서 민원인을 부를 때 쓴다. 그렇다 보니 주민센터의 문화강좌에서도 쓰는 것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 어색한 호칭이다.
오카리나 수업에서 만난 한 분은 연세가 제법 있으신데 OO 선생님! 이라는 호칭이 싫다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도 아닌데 무슨 선생님이야, 하며 웃으셨다.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고, 말 그대로 먼저 태어나신 분이라는 의미지요, 뭐. 주변에서 그랬지만 그분은 영 불편하신 눈치였다. 한 수강생이 재치 있게 받았다.
“그럼 앞으로 OO 씨! 라고 불러드릴게요. 어때요?”
그 말에 ‘OO 씨’가 된 그분은 소녀처럼 귀엽게 웃으셨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호칭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집 근처의 정형외과에 가끔 간다. 그 병원의 원장님은 진료실에 들어가 앉으면 마치 오래 알아 온 사람을 대하듯 “명원 씨! 어디가 불편해서 왔어요?”라고 한다. 초진을 받던 날엔 가뜩이나 사람 눈이 어두운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가 싶어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몇 번 드나들다 보니 그건 원장님 특유의 화술이었다. 차트를 보고 이름을 확인해서 환자가 오면 친근하게 이름을 먼저 부르는 것이다. 동시에 그건 원장님의 상술이기도 하겠다. 나는 근처에 다른 정형외과도 있지만, 동네 정형외과를 찾는 증세가 거기서 거기이므로 이왕이면 친근하고 편한 그 병원을 매번 찾게 되었으니까.
나는 글쓰기 수업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나보다 열 살넘게 어린 사람도 만나고, 반대로 한참 위 연배의 분들도 만난다. 나는 그들 모두를 이름으로 지칭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어가며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름은 자꾸 사라져 간다. 부를 일이 없으니, 마치 오래된 고어(古語)처럼 한때 존재했으나 서서히 사장(死藏)되어 가는 느낌이다. 그러니 우리의 이름은 꾸준하게 불러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름을 부르는 일엔 다소 문제가 있다. 아래 연배의 사람에겐 OO 씨! 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위 연배를 그렇게 지칭하는 건 버릇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OO님! 으로 통칭해 부른다. 나보다 위 연배이든, 아래 연배이든 무난하게 쓸 수 있는 호칭이 아닐까 싶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호칭하는 일에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겐 애칭이 되는 말이, 누군가에겐 놀리는 말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가는 호칭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만만하게 하대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런저런 다양한 호칭들 사이에서 나는 ‘이름’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름은 곧 나이며,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부를 때 이름으로 부른다. OO님! 동시에 나 역시도 그렇게 불리길 희망한다. 명원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