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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09. 2024

의리, 혹은 동지의식

                               


자려고 누웠다가 말고 벌떡 일어난 남편이 어깨가 아프다며 파스를 찾았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니 무거운 것을 들일도 없고, 운동이라면 숨쉬기 운동이 최고인 줄 아는 사람이니 과격한 운동을 했을 리도 없다. 껐던 불을 다시 켜고, 구급함을 뒤적여 파스를 찾아내 붙여줬다.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얼굴을 찡그렸다. 평소에도 엄살이 없고, 아프다고 약부터 찾는 사람은 아닌데 며칠 애꿎은 파스만 자꾸 붙이더니 그나마 파스의 개수가 늘어갔다. 급기야 세 개의 파스를 어깨에 붙였을 때 나는 더는 참지 말고 병원에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이쯤이면 파스만 붙여서 될 일은 아니지, 싶었다.     


“어깨에 석회가 꼈대. 초음파로 부수고, 주사도 맞아야 한 대.”

오후 네 시에 시술을 하기로 예약했다며, 침울한 남편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날아 들어왔다. 예약한 병원에 따라가 물리치료를 먼저 하는 동안 담당의를 만났다. 그는 엑스레이 필름을 보여주며 석회가 낀 부분과 시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꼼꼼하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운동을 전혀 안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숨쉬기만 하신다고. 그러면 안 돼요. 나이 들수록 스트레칭이랑 운동을 꼭 하셔야지 됩니다. 안 그러면 이대로 노인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운동을 해도 안 해도 나이는 먹고, 노인은 된다. 아마 담당의의 말뜻은 ‘건강하게 나이 들어야 한다’라는 것이었을 테지.     


물리치료를 마치고 시술하러 들어간 진료실에서 뭔가 갈갈갈, 하는 기계소음이 들려왔다. 석회를 부수는 소리인가 싶던 그때, 퍼뜩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오늘 남편이 입은 런닝셔츠가 깨끗한가. 벗을 일이 없다고 좀 늘어지고, 목 테두리에 찌든 때가 남은 걸 입고 나간 건 아닐까. 가뜩이나 나이 드는데 입성은 깔끔해야지, 하면서 정작 속옷은 생각을 못 했는데 싶어 내심 당황했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기계소음을 들으며 전에 친구가 했던 말을 문득 생각했다. 친구는 외출하려고 옷을 입을 때마다 가끔 ‘내가 이러고 나갔다가 죽으면 이걸 입고 죽는 거군’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왜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을까.

또 언젠가 들었던 우스개는 이랬다. 사고가 나서 환자를 병원으로 보낼 때 속옷을 세트로 입고 있으면 대학병원, 위아래 짝짝이면 종합병원, 다 늘어진 속옷을 입으면 동네병원으로 보낸다던가.     


기계소음이 멈추고, 시술을 끝낸 남편이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리는 걸 보니 초음파 검사하듯 만만한 건 아니었나 싶었다. 아파? 라고 하니 환갑이 넘은 남편은 갑자기 어린아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나는 누가 들을세라 엄청난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처럼 남편 얼굴 가까이 들이대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런데…. 오늘 런닝, 멀쩡한 거 입고 왔어?”     


어느새 남편과 함께한 세월이 길다. 온 나라가 올림픽의 열기로 뜨겁던 1988년에 만나 1993년에 결혼을 했고, 지금까지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한 인생은 무려 사십 년에 가깝다. 한창때인 이십 대에 만나 이제는 노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세월이며, 한 사람의 인생이라면 태어나 중년이 되어가는 긴 시간이기도 하다.

함께 늙어가던 나의 부모님은 찾아온 병도 함께 맞이했다. 자신도 아픈 엄마는, 아빠가 늙고 병든 것을 마음 아파했다. 불쌍하다고, 젊어선 그리 당당하던 사람이….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간경화인 엄마의 병이, 치매인 아빠의 병보다 가벼워서였을 리 없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그 말을,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와 남편이 나이를 먹어가며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깨의 시술을 마치고 비가 그친 거리를 걸어 남편과 함께 돌아왔다.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건 동지 의식이 생기는 일이고, 서로가 서로를 불쌍하게 봐주는 아량이 생기기도 하는 일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는 의리로 엮이는 시간이기도 하고. 

“오래 건강하자, 우리!”

어깨에 주사 맞는데 아팠다고 엄살이 남은 남편에게 말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듯, 근업하게 한마디 더 덧붙였다.

“내일은 런닝 깨끗한 거로 골라 입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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