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들다 우는 밤 (홍지애)
나는 늘 ‘쓰는’ 사람이었다. 내 글이 어디에선가 활자화되어 실릴 때, 책등과 표지에 내 이름이 박힌 단행본으로 나와 서가에 꽂힐 때, 그런 순간에도 나는 늘 쓰는 이의 마음만을 생각했다. 누군가 모니터를 채웠던 내 원고를 가져다가, 멋진 표지를 가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 그러니까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당연한 사실은 ‘쓰는 나’ 앞에서 늘 뒤로 밀려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쓰는 나’가 아닌 ‘만드는 이’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다. 책 한 권을 펴내기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그들. 돈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동시에 돈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그들. 출판계약서에 그들은 ‘갑’, 나는 ‘을’로 함께 도장을 찍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있었다.
사실 내가 책을 만드는 일에 아주 경험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전자책이라면 이미 다섯 권을 출간했다. 앤솔로지 형식의 계간도 두 번을 발행했다. 그러니 내가 책을 만드는 이의 마음을 아주 모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출판사’라는 이름을 걸고, 책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종이책의 출판 세계라면 엄연히 다르다. 나처럼 독립출판 형식으로 개인의 전자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글을 책으로 만들어 내는 세계를 어찌 나의 작업과 비교할 수 있을까.
물론 내가 전자책을 내는 것도 그 일부분이라 할 수는 있지만, 물성을 갖는 종이책을 만들어 내는 일의 이면을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원고를 받고, 어느 날 ‘미팅을 합시다’라고 답신이 오고, 책 만드는 이야기를 하다가, 출간계약을 하고, 그렇게 내 이름이 박힌 책을 펴낸 그 출판사들의 마음도 이러했을까.
처음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쓰는 이들만 꿈을 갖고, 희망을 품고,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구나, 만드는 이들도 그랬겠구나. 라는.
얼마 전 파주출판도시에 갔던 적이 있다. 자주 들었지만, 늘 궁금했지만, 막상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자유로를 지나 파주까지 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출판도시라니, 너무 낭만적인 이름이군.
‘파주 출판도시’라고 쓰인 조형물을 지나 그곳에 들어섰을 때 건물마다 걸린 현판들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이름들 천지였다. 책 표지, 혹은 책등 맨 아래에 박혀있는 출판사의 이름, 그 익숙한 이름을 전면에 커다랗게 내세운 건물들이 줄지어 선 사이를 천천히 달렸다. 출판사, 도서 물류창고, 혹은 인쇄소 같은 출판 관련 건물들이 이어지는 거리. 평일 오전의 인도를 지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오로지 출판사들만이 여름 뙤약볕 아래 조용히 서 있었다. 마치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처럼 출판사들이 늘어선 그 파주출판단지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책장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린 건 그날의 파주출판도시였다. 책이라고 한다면, ‘쓰는 나’로서는 도서관을 먼저 떠올려야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만드는 이의, 오죽하면 책을 만들다가 울까 싶은 이야기를 읽다 보니 먼저 떠오른 건 그날의 파주출판도시였다. 거리마다 줄지어 서 있던 크고 작은 출판사들. 어떤 이름은 너무 잘 알아 반갑고, 어떤 이름은 처음인데 싶어 갸우뚱하기도 했던.
하지만 책을 거의 다 읽어갈 즈음 만난 글귀를 읽으며 나는 다시 ‘쓰는 이’로 돌아와 나의 글과 나의 책을 떠올렸다.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 여럿은 책을 만들며 책이 가는 길을 예상하고 준비한다.
그런데 책의 길을 예측하기란 어렵다. 저자와 출판사가 한동안은 길을 터 주고 불빛을 밝혀 주지만, 책의 걸음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책은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게 멀어진다. 그렇게 떠나보내는 거다. 그러다 어느 날 저 멀리 가 있는 책의 소식을 듣고, 또 저기쯤 가 있는 책의 흔적을 만난다.
소식을 빨리, 자주 전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책이 있고, 전혀 생각지 않은 곳에서 안부를 전해 오는 책이 있다. 책은 대체로 자기의 길을 간다.>
내가 쓴 글은 내 컴퓨터의 폴더에 들어있을 때까지만 나의 것이다. 어딘가에 내보이고, 활자로 세상에 나오고, 멋진 옷을 입고 한 권이 책이 되어 서가에 꽂히는 순간, 그 글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종이책을 이야기하며 늘 ‘물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모든 책은 내 손을 떠나 책이 된 순간부터 나와 독립된 어떤 생명체가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는 내가 개입할 수 없고, 더는 나의 날개 아래 있지 않으며, 더 이상 나의 손을 잡고 있지도 않은 독립된 존재 말이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것이었다.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만드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내게도 전해져왔다. 나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일들을 생각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떠나보낸 나의 책들이 안부를 전해오는 밤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