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나은지 한 달은 넘었는데 가래만큼은 없어지지 않고 있었다. 자주 물을 마셔보고, 용각산 같은 가래약도 사 먹어봤지만 대단하게 아픈 것도 아니면서 딱 불편한 상태는 오래 지속되었다. 결국 근처 병원을 찾았다. 하마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내 목 안을 한참 들여다본 의사는 내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저 감기 후의 가래겠지…. 했던 것은, 생각지도 않던 비염이었다.
“목의 점막이 다소 부어있고, 빨갛게 되어있어요. 바이러스성 염증까지는 아니지만 콧물이 넘어가는 게 보이고요.”
그는 덧붙여 말했다.
“우리가 손을 한참 마주하고 있으면 물기가 촉촉하게 생기지 않습니까? 목의 점막도 그렇습니다. 떨어져 있어야 하는 목젖이 부어서 자꾸 붙는 거예요. 그렇게 자꾸 붙어있으면 콧물 같은 물기가 생기는 거지요. 심해서 딱 붙으면 줄줄, 그렇지 않으면 딱 지금처럼 목에 가래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뭐든 듣고 나서 돌아서면 반은 날아가는 기억력이니 내가 제대로 듣고 기억하는지 묻는다면 물론 자신 없다. 그저 대충 기억하고 있는 의사의 설명은 이랬다. 내 콧속이나 목구멍의 이야기는 제쳐두고 어쨌거나 감기 후유증이 아니라 초기 비염이라는 것만이 내게는 놀라울 뿐이었다.
결국 먹는 약과 코에 뿌리는 약을 받아왔다. 내 심란한 얼굴을 읽은 걸까. 일어서려는 내게 그가 한마디를 더 했다.
“'비염'이라고 하면 환자분들이 대단히 슬퍼하십니다. 내 인생에 병명하나가 더 추가되었구나, 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약 잘 드시고, 관리 잘하면 괜찮아요.”
의사가 처방해준 대로 어제와 오늘, 약을 먹고 코에 뿌리고 나니 한결 나아졌다. 가래약을 여러 번 먹고, 도라지 물도 달고 먹어봤지만 별 차도가 없더니 비염이 맞긴 맞았는지 일단 목을 큼큼거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래, 온갖 병이 난무하는 세상에 정기적으로 처방받아 먹는 약 하나 없으면 다행인 거지 비염이 뭐 대수겠냐, 하면서도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코에 약을 뿌리고 가을이 되어 부쩍 건조해진 날씨니 비염에 도움이 된다는 가습기도 틀어두기 시작했다.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몽글몽글 수증기를 본다. 적당하면 유용한 습기지만 지나치면 방바닥에 고여 닦아내야 하는 물기가 된다. 그뿐인가. 가습기에 물을 넣다가 잘못해서 그 물통이라도 쏟는 날엔…. 상상도 하기 싫다.
나의 코 사정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콧속의 적당한 촉촉함이라면 유용하겠지만 그 역시 모자라면 건조해서 코피가 나기 십상이고, 지나치면 가래며 콧물로 사람을 괴롭게 한다.
얼마 전 지인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만의 고집이 생기고 사고가 편협해지는 것 같아서 조심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오래 남았었다. 나는 그 지인보다는 아래 연배이긴 하지만,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내가 이 나이에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해? 경험으로 따지면 내가 더 많은데 무슨 소리야! 이런 마음의 소리를 삼키는 순간이 왜 없겠는가. 삼키기만 해도 다행이다. 어떤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본심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에는 나이 든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는 걸 서운해한다. 반대로 다른 자리에선 나이 든 사람 취급한다고 맘이 상한다.
살면서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일은 참 어렵다. 지인의 말처럼 나이를 들어가면서 그 선은 두꺼워지고, 견고해진다. 좋은 버팀목 노릇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 유연함을 잃고, 쓸데없이 두꺼워져서 그늘을 만들기도 한다.
가습기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본다. 창밖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하늘이다. 곡식을 익히고, 열매를 물들이는 햇살과 바람에 습기가 가득할 리 없다. 흰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가습기의 수증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온 집안이 촉촉해지는 기분이 든다.
촉촉한 점막이 부어 들러붙으면 가래가, 콧물이 되어 흐른다고 했던가. 뜬금없이 의사의 말을 떠올린다. 막상 알아들었어야 할 설명은 가물거리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말은 이것 뿐이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