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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Nov 19. 2024

캥거루와 코알라가 있는 타롱가 zoo

                            

시드니의 3일 차. 첫날 공항에서 트레인을 타고 시내로 들어온 이후 이틀 내내 걸어서 시드니의 이곳저곳을 봤다. 시드니는 걷기 좋은 도시였고, 갈만한 곳은 크게 흩어져 있지 않아 하루 만 보쯤은 우습게 걷게 된다.

나는 묵고 있는 호텔을 기준으로 하루씩 차차 행동반경이 넓어지는 일정을 짰다. 혼자 떠나온 여행자가 미친 듯 도장 깨기 여행은 취향이 아닌지라 그나마도 정해놓은 일정을 칼같이 지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세워놓은 계획에 따라 오늘은 이제 도보가 아닌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그것도 오늘 하루에 무려 세 가지의 교통수단인 지하철, 페리 그리고 버스를 번갈아 타고 타롱가 zoo로 갔다.     


사실 동물원이라면 아이가 어렸을 때나 가는 곳이었다. 이제 다 큰 딸은 더 이상 동물원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래선지 여행을 떠나도 현지의 동물원에 갔던 기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시드니에서라면 다른 마음이 들었다. 호주라면 역시 캥거루와 코알라, 그 녀석들을 보겠다고 오십 중반의 나 홀로 여행객은 동물원을 찾았다. 인형이나 사진이 아닌 실제 그들을 볼 수 있는건 역시 동물원뿐이었으므로.      


타롱가 동물원은 생각보다 엄청 넓었다. 나 같은 길치가 그 넓은 동물원에서 지도를 보고 척척 원하는 구역을 찾을 리가 없다. 코알라 하나 보고 나서 다음엔 캥거루를 보러 가야지, 하다가 길을 잃는다. 사막여우도 한번 볼까, 하다가 난데없이 물개쇼장 앞에 도착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마치 사막에서 길을 잃고 같은 자리를 뱅뱅 돈다는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나는 기린 축사 앞을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해서 지나며 지쳐갔다.     


이러다가 제자리에서 돌다가 걸음 수 이만 보는 채우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심히 안내지도와 표지판을 번갈아 보고 있을 때였다. 아마도 내 얼굴은 굉장히 심각했던 모양이다. 누군가 다가와 “도와줄까?” 물었다. 유니폼은 안 입었지만, 목에 신분증 같은 것을 걸고 있는 그는 내가 지도를 짚으며 캥거루를 보러 가고 싶다고 하자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쉬운 단어와 손짓으로 간결하게 길 안내를 해주었다. 영어가 짧은 것을 눈치챈 그의 배려였을까. 
 

그의 친절한 안내 덕에 코앞에 두고 입구를 찾지 못해 뱅뱅 돌던 캥거루 축사로 들어섰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뭐 이런 것이 여행이니까 싶어 갑자기 느긋해진 마음이었다. 그런데 더운 날씨 탓이었는지 캥거루들은 대부분 자고 있었고, 심지어 몇 마리 안보였다. 허탈해졌다. 

호주에서라면 캥거루지, 하며 그 캥거루를 보겠다고 대중교통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왔는데 너무하군. 

속상한 맘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아까 길 안내를 해주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근처에 있던 그는 가까이 다가와 내 안내 지도를 다시 받아 들더니 손으로 다른 곳을 짚었다. 그러고 보니 지도의 반대편 끝에 또 다른 캥거루 축사가 하나 더 있었다. 그곳에 가면 호주의 동물들이 많아, 캥거루도 여기보다 더 많아. 그는 말했다. 그렇지. 내 표정에 실망감이 그대로 드러났었던 게 분명하다.      


동물원의 반대편에 있는 그곳엔 그의 말대로 캥거루뿐 아니라 코알라며 호주만의 특별한 동물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캥거루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나무엔 코알라가 매달려 세상모르고 자는 중이었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내 앞에서 코알라를 보던 부인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저쪽 편에 가면 지금 먹이를 먹고 있는 코알라가 있어.

이런, 나무에 매달려 잠만 자는 코알라의 궁둥이만 보고 갈뻔했는데 반가운 마음으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코알라 한 마리가 열심히 나뭇잎을 먹고, 또 다른 코알라는 활발하게 나무를 타고 오르는 중이었다.      


코알라와 캥거루를 본 것으로 모든 것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하루였다. 동물원에 와본 것이 언제였더라, 싶었다. 잠시 아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어트랙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왁자하게 함께 떠들 동행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동물원을 찾는 경험부터가 색다른 즐거움이기도 했다.

나처럼 신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이 순간을 남기려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사람들.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베푸는 친절. 시드니의 오늘 하루도 이처럼 좋았다. 물론 코알라와 캥거루와 함께했으니 더더욱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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