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작이 되는 순간
강아지는 평소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향했다. 산책도 훈련의 일부이니 견주는 개를 이끌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산책은 강아지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기에 무조건 뒤에서 따라간다. 강아지가 멈추면 나도 멈추고, 다른 길로 방향을 잡으면 나 역시도 그저 따라간다.
자기 맘이 이끄는 길로 들어선 강아지는 지나가는 머리 긴 아가씨를 보고 갑자기 꼬리를 흔들며 가까이 갔다. 행여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급하게 목줄을 당겼는데, 다행히 그녀는 강아지를 무서워하기는커녕 환한 웃음을 보냈다. 그리고 이내 우리는 눈이 마주쳤는데 그 순간, 동시에 놀란 얼굴을 했다.
“깔...마?”
“쌤...?”
‘깔마’는 내가 그 애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하도 밝게 잘 웃어서 깔깔 마녀라고 불렀는데, 아이들은 뭐든 줄여 부르는 걸 좋아했으므로 곧 그 애는 ‘깔마’가 되었다. 내가 깔마를 유독 다정하게 기억하는 건 그 아이 특유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퍽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가지 이유를 더 찾자면, 그 애의 아버지에게 있다. 중학생이던 깔마는 어느 날 수업에 와서 아주 부끄러운 얼굴로 봉투를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묵직한 그 서류 봉투 안에는 ‘우리말 해례’가 들어있었는데 그 애의 아버지가 몇 해 동안 매달린 결실이라고 했다. 놀라운 건 깔마의 아버지는 국문학과는 거리가 먼, 장례지도사의 일을 하고 계셨으며 우리말 해례 공부는 순전히 취미로 오랜 세월 붙잡고 계신다는 말에 나는 잠시 멍했다.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던 전명원 선생님께 이 책을 드립니다.- 이창규”
내 인생 첫 저자 사인이 들어있는 책을 마주하는 기분은 뭔가 이상했다. 책은 어디에나 있다. 집에도, 학원에도, 도서관에도 쌓인 것이 책이다. 하지만 저자 사인본이라니. 그 순간 책은, 그저 책이 아닌 어떤 하나의 인격체처럼 다가왔다.
깔마의 아버지가 왜 내게 책을 선물했는지 짐작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수업 중에 물었다. 쌤은 꿈이 뭐였어요?
그때 나는 잠시 망설이다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사실 작가가 되고 싶었어.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놓고 나니 갑자기 교실 공기가 더워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쌤! 지금이라도 빨리 책을 내세요. 우리 할아버지는 칠순 기념으로 책을 냈어요. 쌤도 그럼 칠순 기념으로 책을 내시면 되겠어요. 야! 쌤이 칠순때 책 내시면 우리가 싹 다 사드리자!
결국 그날 수업 중 잡담은, 내가 칠순 기념으로 책을 내면 너희들이 죄다 사줘야 한다, 인당 백 권씩이다, 뭐 이런 우스갯소리로 끝났던 기억.
그런데 깔마는 아마도 집에 가서 나의 말을 전했던 모양인지, 얼마 후 그렇게 인생 첫 저자 사인본을 받아들게 된 것이었다.
깔마가 가져온 ‘우리말 해례’는 여전히 나의 책장에 꽂혀있다. 가끔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질 때 나는 그 책을 펴보곤 한다. 여전히 나는 그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전공한 것도 아니며, 관련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데 오로지 일생의 취미로 한글 해례본 연구를 해온 저자에 대한 존경심을 넘어 매번 새로운 에너지를 그 책에서 얻는다.
오래 접어두었던 꿈에 다시 다가서게 된 계기가 된 것은 하나의 이유만은 아니다. 하지만 망설이던 순간, 그 시작의 발걸음을 내딛게 해준 격려의 말들 중 하나는 깔마 아버지의 ‘우리말 해례’였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렵다는 것은,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배우지도 않았다는 것은 모두 핑계일 뿐이야. 그 책은 매번 내게 그렇게 말했다.
길에 선 채 깔마를 꼭 껴안아 주었다. 여전히 밝게 웃는 깔마는 아버지가 지금도 우리말 해례에 빠져 산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휴학을 했던 터라 이제 졸업이라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깔마를 다시 찬찬히 봤다. 세월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 어느새 어른이 된 깔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니 문 앞에 기다리던 택배가 와있었다.
‘특별한 쓰임’
글쓰기 모임에서 모인 글들로 종이책을 내보자고 의기투합해서 만든 첫 책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여니 컴퓨터 화면 속에서 수십 번을 고민하며 수정을 거듭했던 표지가 실물이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선 채로 책의 표지를 열어 페이지를 하나하나 넘겼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
직접 내 손으로 종이책을 발간해보고 싶다는 것은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물론 출판사를 통해서라면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경험이 있지만 나는 직접 해보고 싶었다. 처음 글을 쓰던 시절의 나와 몇권의 책을 낸 지금의 내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내 이름이 ‘저자’가 되고, 내 글이 활자로 찍혀 세상에 나오는 경험을 다른 이들도 꼭 해보았으면 했다. 성큼, 또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의 느낌은 겪어본 사람만이 느끼는 희열이니까.
하지만 전자책의 경험으로 어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막상 종이책 편집을 시작하면서부터 쉽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그때 글쓰기 모임의 멤버들이 구원군으로 등장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제대로 된 결과물을 손에 쥘 수 있었을까. 내가 아는 알량한 지식을 나눠주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그들에게 배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함께 하는 일의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특별한 쓰임’을 책꽂이에 꽂았다. 지금도 남의 나라말처럼 어렵기만 한 ‘우리말 해례’ 바로 옆자리에 두었다. ‘우리말 해례’가 여러 해 전 멈춰있던 나를 다시 나아가게 해주었다면, 오늘의 ‘특별한 쓰임’은 또 다른 꿈을 꾸게 해준다. 나의 특별한 쓰임이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오래전 ‘우리말 해례’가 그랬듯 나의 글과 나의 책도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시작을 응원하며 손을 내미는 순간을 함께 했으면 한다. ‘우리말 해례’의 저자처럼, 나 역시도 그 순간을 알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누군가의 책장에 꽂혀 때로는 길잡이가 되고, 때로는 응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