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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해가 저물어갈때

by 전명원

“갈수만 있다면, 나도 스위스에 가고 싶다.”

지인은 올해 연세가 아흔다섯인 시아버지의 말을 전했다. 앞뒤맥락 없이 들었다면, 아마 스위스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으로 알아듣기 딱 좋은 말이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지나가듯 그 말을 내뱉었을 때는 텔레비전에서 스위스의 조력자살이야기가 나오고 있을때였다고 한다. 에이, 아버님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는 괜한 말씀을 하시고 그래요. 다들 한마디씩 했다는데 그의 시아버지가 덤덤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는 한마디는 이랬다.

“아무런 낙이 없지 않니.”


지인이 전하는 말을 들은 우리들 사이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굴한번 뵌적 없는 지인의 시아버지를 생각했다. 아흔다섯의 연세에도 아침마다 신문을 보시고, 요즘 베스트셀러라는 책도 간간히 읽으시며 그 평을 내놓기도 하신다는 분이었다. 다만 거동이 자유롭지는 못하시니 혼자 10층 아파트 밖으로 나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했다. 그분의 말은 어쩐지 계속 마음에 남아 오래 먹먹했다. 아무런 낙이 없지 않니.


낮에 이웃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전, 상복을 입은 그 댁의 가족을 우연히 만난 일이 있다. 평소에도 그저 간단한 날씨 인사정도나 나누던 이웃인데, 그나마 상복을 입었으니 더더욱 조심스러워 눈인사만 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심 마음이 계속 쓰였다. 그 댁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계신다. 두분중 한분이 돌아가신 걸까. 그 궁금증은 며칠이 지나고서야 풀렸다.


사람이 죽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르신의 죽음이 갑작스런 병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충격이었다. 그저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인데 그 어르신은 내게 ‘그저 이웃’은 아니었다.

물론 나는 그분의 성함도, 인생도 알지 못한다. 단지 몇번 지나치면서 인사한 안면이 있을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독 잘 알지도 못하는 그분에게 내적 친밀감을 갖는 이유는 사실 내 글에 있다. 한번도 흐트러진 차림으로 집밖을 나선 것을 본적이 없고, 건네는 인사는 늘 정중하게 받던 그 분을 떠올리며, 나는 상상력을 덧입혀 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이 과연 그 연세의 어르신에게 스스로 생을 놓게했을까. 나는 오후내내 마음이 어지러워 창가에서 서성였다. 그러다 문득, 오늘은 어쩐지 해가 지는 걸 집밖에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고 있던 옷차림에 외투만 걸치고 집밖으로 나서며 우편함속의 우편물을 집어 무심히 주머니 속에 넣었다. 도서관까지 천천히 걸어가 1층 카페의 창가에 앉아 커피한잔을 놓고 밖을 물끄러미 봤다. 짧은 겨울해는 금세 저물기시작했다. 그때 문득 주머니속의 우편물이 궁금해 꺼내보니 지인의 연하장이었다.

요즘은 우편으로 연하장을 주고받지 않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는 경쾌한 손글씨로 ‘좋은 새해를 기원한다’는 문구를 담아 보냈다. 보내는 이의 이름도, 받는 내 이름도 직접 손으로 쓴 글씨로 선명했다.


그 연하장을 물끄러미 보다 다시 이웃의 어르신을 생각했다.

내가 쓴 소설속에서 그분은 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 떠난 자리를 매일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만나면 눈인사만 하지말고 괜한 몇마디쯤 나눠도 좋았을걸 하는 후회가 스며들었다. 혹시 모른다. 좀더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그 어르신에 대한 다른 이미지를 갖고, 다른 성격의 등장인물로 만들었을지 모른다. 하염없이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거나, 말없이 매일 두고온 자리를 찾아가는 나이든 남자가 아니라, 좀더 밝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사는 명랑한 노인으로 묘사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무런 낙이 없지 않니, 라고 했다던 지인의 시아버지를 다시 생각한다.

내가 환갑이 되면 환갑의 즐거움을 찾고, 일흔이 되거든 일흔의 즐거움을 찾을 거야. 팔순이 되고, 아흔이 된다면 또 그 나이에 누릴수 있는 즐거움을 찾으면 되지.

내가 언젠가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 말은 얼마나 오만방자한 것이었는가. 물론 더 이상 갈곳없는 절벽 끝에 내몰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구나 그 자리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그것만은 절대로 하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서보지 않고는 그 마음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원할 뿐이다. 먼길을 홀로 떠나 이제 도달하신 그곳에선 이웃의 어르신이 내내 평안하시길.


카페 창밖으로 어느새 하루의 해가 천천히 저물었다. 오늘의 해가 저물어야 내일의 해가 뜬다. 연하장속 새로운 한해의 좋은 시작을 기원하는 인사를 다시 봤다. 나는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연하장의 손글씨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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