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은퇴했다. 5월로 예정했던 은퇴가 다소 미뤄지면서 그저 ‘조만간 하겠구나’ 싶더니 어느 날 모니터를 들고 퇴근한 남편을 보고 알았다. 이제 일을 끝냈구나.
은퇴계획을 이야기하며 남편은 틈틈이 사무실의 물건들을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어느 날은 책이, 또 어느 날은 소소한 사무용품이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도 근무하던 사람이 토요일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이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 날은 조금씩 가까이 오고 있었다.
은퇴를 준비하며 우리 가족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서재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간 서재는 나 혼자 썼다. 당연히 서재엔 내 책상과 책꽂이뿐이다. 퇴근한 남편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노트북을 펼치곤 했는데 저녁 시간 잠깐이므로 서재를 함께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제 나 혼자 쓰던 서재에 남편의 가구를 넣어주어 책상이 둘, 책꽂이가 둘이 되었다.
달라진 서재를 물끄러미 보며 생각했다. 또 무엇이 달라질까.
일생 직장생활을 한 남편이다. 새벽이면 출근해서 일곱 시면 칼퇴근을 했다. 술도 마실 줄 모르고, 친구가 많지도 않다.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있는 걸 더 좋아한다. 하지만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것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 동시에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재를 바꾸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사무실에서 개인용으로 쓰던 커다란 모니터를 들고 조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가 들어왔다. 그리고 짐작할 것 같기도, 그 반대일 것 같기도 하던 시간이 내게도 찾아왔다.
남편은 아직 적응이 잘 안된다고 했다. 아침이 느긋해지고, 하루가 느슨해진 게 영 이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하고 좋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하며 웃었다. 나는 말할 상대가 있고, 함께 놀 친구가 옆에 있는 기분이라 나쁘지 않다. 물론, 우리의 이런 낙관적인 감상엔 단서가 붙는다.
“아직까지는!”
주변에서는 은퇴하고 남편이 집에 있으면서 자꾸 부딪혀서 힘들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남편이 집안 살림을 나눠서 하며 오히려 편하고 좋다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남편이 잔소리쟁이가 되었다고 불만이며, 또 다른 누구는 함께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도 한다.
남편이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 퇴근을 한 것은 며칠 되지 않는다. 은퇴 후의 우리 생활에 대해 뭐라 섣불리 말하기엔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몇 달 더 지내고 나서보면, 나는 다양한 말을 하는 사람 중 어느 쪽에 닿아있을까.
“이제 ‘집’이라는 새로운 직장의 인턴이 된 거야.”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동안 집은 남편에게 house보다는 home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남편에게 집이란, 그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 공간이 된 것이다. 평소에도 가사 분담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명확하게 서로의 일을 구분했다. 노화인지 직업병인지 그 둘 다인지 얼마 전부터 오른쪽 손목이 편치 않은 나 대신 남편은 설거지와 그릇 정리, 그리고 청소기를 담당하기로 했다. 말하자면 인턴의 첫 임무인 셈이다.
서재에 놓인 자신의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남편의 뒷모습을 본다. 환갑을 훌쩍 넘긴 백발, 구부정한 어깨. 뒷모습만으로도 나이를 숨길 수 없다.
일생 출근하는 삶을 삶아온 남편은 은퇴라는 커다란 삶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이제 매일 아침의 출근 행렬에 끼이지 않아도 되고, 퇴근길 밀리는 도로에서 답답해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자신의 효용가치가 다한 것 같은 마음이 없을 리 없다. 젊은 시절은 지나가고, 모두 달리고 있을 때 나만 우두커니 길옆에 선 것 같은 허탈함도 왜 없겠는가.
하지만 내 인생이 나의 것이듯, 남편의 인생도 남편의 것이다. 함께 걸어줄 수는 있으나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살아있는 동안 사람들은 길을 걷는다. 저마다 다른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그 어떤 길 위에서든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계절은 순서대로 찾아온다. 우리는 지금 인생의 어느 계절쯤을 걸어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