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을 피우는 삶을 꿈꾸며

by 전명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특히 ‘그림 같은’이라는 부분에서 내가 꿈꾼 건 거대한 저택이 아니라 뾰족한 박공지붕을 가진 작고 소박한 집이었다.


결혼을 하며 인생 첫 독립을 한 나는 열세 평짜리 신혼집을 얻으며 다른 건 몰라도 크기만큼은 집에 관한 나의 로망에 한걸음쯤 간 셈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그 위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으므로 당연하게도 나의 최대 목표는 내 집 장만이었다. 저 푸른 초원에 그림 같지 않아도 되니 내 집이 필요했다.

허리띠를 졸라맨 덕에 기어이 일 년 만에 코딱지만 한 집 장만을 했는데 5층짜리 오래된 아파트의 5층이었다. 올라가는 일이 만만치 않아 한번 올라가면 도무지 내려오기가 싫었다. 그래도 문고리 하나, 방의 조명 하나까지 직접 골라 인테리어를 했던 그 집이 내게 주었던 뿌듯함은 그 이후 만난 어떤 집들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컸다.

하지만 뿌듯함은 그저 뿌듯함이었을 뿐 살다 보면 집은 작게만 느껴지고, 보금자리라는 의미보다는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는 세월을 살아왔으니 매번 또 다른 궁리를 하며 여러 번 이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래도록 꿈꿔온 삶은 바람이 오가는 마당 한켠에 앉아 책을 읽다가 깜빡 졸다 깨곤 하는 오후였다. 손바닥만 한 작은 마당이 있는 집. 창밖으로는 푸른 나무들이 보이는 집. 낮은 담장과 대문을 가진 집. 그런 집을 꿈꾸었다.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주택살이를 하게 된 건 몇 번의 이사를 반복했던 십 년쯤을 보내고서였다. 택지를 분양받고, 설계사무소며, 건축업자를 찾아다녔다. 종이 위의 도면이 내 눈앞에서 마치 레고블록처럼 하나둘씩 쌓아 올려지는 나날을 보내고 우리 가족은 완성된 주택으로 이사했다. 1층엔 상가를, 2층엔 원룸 5세대를 임대하고, 꿈꾸던 마당 대신 우리가 거주하는 3층 내부에서만 올라갈 수 있는 옥상을 얻었다.

그래, 옥상을 마당으로 쓰면 되지!

옥상에 올라가 호기롭게 외치며 비슷비슷한 집들의 지붕이 멀리까지 이어지는 풍경을 봤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상과 현실이 같을 수는 없다. 주택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세입자들은 매번 주인을 찾아댔고, 사는 내내 소소하게 관리하며 손볼 일은 끊임없이 생겼다.

창밖으로 계절마다 다른 색과 자태를 보여주는 나무들이 선 풍경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거미줄처럼 얽힌 온갖 전선이 먼저 보였다. 마당 대신 꿈꾸었던 옥상은 그저 존재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늘 삶은 바빴고, 시간은 없었으며, 마음은 조급했다.


그래도 로망으로 남은 마음은 하와이 여행의 기념품으로 난데없이 캠핑용 바비큐 통을 사 들고 오게 했다. 하와이답게 온갖 아웃도어 용품이 즐비한 매장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작은 바비큐그릴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세일하는걸 보게되었던 것이다.

미친 짓이야, 이걸 왜 여기서 사느냐고.

마음속의 내가 말렸는데 이미 현실의 나는 그 물건을 집어 들고 있었다. 그렇게 바비큐그릴을 사 들고 오다가 기어이 인천공항 세관에서 엑스레이 검사까지 받고서야 그 물건은 우리 집 옥상에 놓였다.

바비큐그릴이 있으니 이제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자!

나는 마치 그간 바비큐그릴이 없어 옥상에 못 올라갔던 사람처럼 말했다.


이제 숯을 살 차례였다. 숯이라면 당연히 킹스 포드 숯이지. 마치 오래 아웃도어인생을 보내왔던 사람처럼 킹스포드 숯을 사고, 목장갑과 긴 집게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야심 찬 첫 옥상 바비큐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유는 단 하나. 누구 하나 제대로 숯에 불을 붙일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다 신문지로 고기를 구워 먹는 것 아닐까 싶을 만큼 끝도 한도 없이 신문지를 말아 넣어가며 부채질을 해댔다. 이웃에서 불났다고 신고하는 것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신문지 탄내가 진동하고서야 우리는 포기하고 결국 부루스타를 꺼내어 고기를 구워 먹었다. 무슨 남자가 숯불 하나를 못 피우느냐. 내가 언제 숯을 피워봤어야지. 그런 말 마라. 남자들은 기본으로 그런 것쯤은 다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말들을 양념처럼 주고받았다.


하와이에서 들고 온 바비큐그릴을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던 나는 급기야 다시 옥상 바비큐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치밀한 사전검색을 통해,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미리 숯불을 피울 수 있는 통을 샀다. 그 통에 숯을 넣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얼마 후 숯에 빨갛게 불이 붙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시뻘건 숯이 담긴 통을 옥상으로 가지고 올라가는 것도 신경 쓰이는 일인데, 바닥이 그물처럼 뚫린 그 통에선 계속 숯가루가 새어 나와 가스레인지 주변은 숯 범벅이었다.

어찌 되었든 기어이 그 숯을 하와이에서 가져온 바비큐그릴에 쏟아붓고 우리 가족은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옥상 바닥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모여 앉아 고기를 구우며 흐뭇했다. 강아지는 주변을 뛰어다니고, 선선하게 바람이 불어오고, 돗자리에 누우니 잠도 솔솔 왔다. 고기가 익으면 벌떡 일어나 한점을 입에 넣고 다시 드러누워서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걸 보며 우물우물 씹었다. 아, 이거지. 내가 꿈꿨던 거야.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십 년쯤을 살았다. 끝내 옥상을 마당처럼 쓰겠다는 내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늙은 개가 혼자 노는 놀이터일 뿐이었고, 쓰지 않는 물탱크와 에어컨 실외기가 자리 잡은 공간일 뿐이었다. 파라솔을 놓았다가 강풍에 날아다녀 식겁한 이후로 옥상엔 의자도 내놓지 않게 되었다.

하와이에서 사 온 바비큐그릴은 그 이후로 몇 번 더 쓰긴 했다. 집에서부터 숯불을 붙여가는 것이 신경 쓰여 옥상에 부루스타를 함께 갖다 두고 불을 붙였는데, 다들 이럴 거면 그냥 부루스타에 고기를 구워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흥이 사그러들기도 했다. 부루스타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숯만의 감성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하며 혀를 찼지만 이래저래 옥상 바비큐는 우리와 조금씩 멀어져갔다.


어느새 옥상이 있던 그 집을 떠나와 아파트에서 산 지도 십 년이다. 여전히 우리는 가끔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리워하기도, 지겨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직 남은 집에 대한 로망을 떠올린다.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 집. 창밖으로 푸른 나무들이 서 있는 집. 바람 속에 앉아 책을 보다 꾸벅꾸벅 조는 오후가 있는 집. 우리에게 그런 집에서의 나날이 찾아온다면 나는 또다시 킹스포드 숯을 한 상자 살 생각이다. 착화제라는 신기한 물건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예전처럼 숯불을 제대로 붙이지 못한다며 남편을 구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렇다. 나의 꿈과 로망이 마당에서 책을 보는 것이었는지, 숯을 피워 바비큐를 해 먹는 것이었는지 이쯤 되면 헷갈리지만, 그 어느 것이든 관계없다. 이제 마당 있는 집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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