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지?”
썰어온 오이를 맛있게 먹는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친구가 웃었다. 오래전부터 마이산 탑사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 건 나였는데, 막상 “가자!”라고 한 건 친구였다. 언제 한번 가야지. 갈 때 같이 가. 이런 말들을 하다가 얼결에 함께 마이산 탑사를 향하는 길이었다.
휴게소에서 우리가 서로의 간식을 꺼내놓으니 제법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과일이며, 과자, 그리고 텀블러에 담긴 커피까지 훌륭했다. 야외 테이블에 늘어놓은 간식 사이로 친구가 뚜껑을 연 밀폐용기 속엔 손가락 굵기로 썰어 담은 오이가 싱싱했다. 오이를 못 먹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내게 오이 향은 더없이 싱그럽고 시원하다.
친구는 몇 달 전 허리디스크에 문제가 생겨 아직도 몸이 편치 않다. 나는 무릎 골절로 핀을 박고 와이어를 두른 상태라 마찬가지로 뛰거나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다. 멀쩡하던 둘 다 이런 상태다 보니 마이산 탑사에 간다고 해서 우리가 등산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오랜 시간 사람의 힘으로 쌓아 올린 돌탑이 가득하다는 탑사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등산할 건 아니지만, 심지어 아직 목적지에 닿지도 않았지만, 휴게소에서 먹는 오이 맛은 꿀맛이었다.
“역시 야외 나오면 오이가 제격이네. 시원하고 상큼하다.”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오이를 먹고 있는 나를 보더니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맛있지? 그거, 남의 집 오이 서리한 거야!”
그 말에 오이를 씹던 입이 딱 벌어졌다.
“뭐어어어어? 훔쳤다고?”
결혼하지 않은 세 자매가 모여 사는 친구네 아파트에선 옥상에 주민들을 위한 텃밭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막냇동생이 주로 텃밭을 가꾸긴 하지만 가끔 친구도 그 텃밭에 가서 자기네 밭에 물도 주고, 수확을 해오기도 한다고.
마이산 탑사로 향하던 그 전날도 친구는 출근한 동생 대신 텃밭에 올라갔는데, 물을 주고 보니 싱싱한 오이가 두 개 열려있더라는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친구니 열린 오이 상태를 보곤, 오늘 따야겠구나! 직감했던 모양이다. 튼실하게 자란 오이 두 개를 따와서 저녁에 하나를 썰어 식탁에 올려놓으며 옥상 텃밭에서 따왔다고 하니 동생이 말했다고 한다.
“언니! 우리 밭에는 오이가 없는데…?”
그렇다. 친구는 그만 텃밭을 착각해서 옆집 남의 밭에 물을 주고, 그 집의 오이를 따온 것이다. 딱 적당히 자라 이제 따야지, 하고 있었을 남의 오이를 말이다.
옆 텃밭의 주민이 몇 호에 사는지 알 수 없고, 텃밭에서 만난 적도 없는데 그 이웃입장에선 난데없이 서리를 당한 꼴이다. 친구는 황금 오이도 아니고 꼴랑 오이가 몇 푼이나 한다고 그걸 알고 서리하겠느냐며 웃긴 했지만, 오이의 진실을 알고 나자, 좌불안석으로 마음이 불편해졌다며 난처해했다.
“나도 먹었으니, 이제 공범인가!”
나는 남은 오이를 마저 아삭아삭 씹으며 웃었다.
마이산탑사에 다녀온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이번에는 친구가 고향의 오빠가 재배했다는 옥수수를 잔뜩 들고 나타났다. 퇴직 후 재미 삼아 농사를 짓는다는 친구 오빠의 옥수수는 달고 맛있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여름과 퇴직, 그리고 여행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생각난 듯 친구가 말했다.
“야! 그 오이 주인, 만났어!”
어느 날인가 동생 대신 텃밭에 물을 주러 올라갔을 때 마침 옆 밭의 이웃이 나와 있더라는 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친구는 조마조마해서 속으로 망설였다고 한다. 어쩌다 동생 대신 물이나 주러 오다 보니 내가 착각해서 그 댁의 오이를 따버렸다고. 만나면 사과해야 하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으니 정말 미안하게 되었다고. 이런 사과의 말을 건네야 하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고민했다는 것이다.
친구가 맘속으로 치열한 고민을 하는 동안 그 이웃은 핸드폰을 꺼내어 주렁주렁 열린 오이며 다른 열매들 사진을 꼼꼼하게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치 “오이 훔쳐 간 것이 너인 것을 알고 있어! 내가 사진 다 찍어두었으니, 이번엔 서리할 생각일랑 아예 접어두는 것이 좋아,” 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결국 어정쩡하게 용기 내지 못하고 진땀만 흘리며 텃밭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친구는 웃었다.
“야! 진짜 죄짓고 못살아. 도둑놈들은 어떻게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거니? ”
이웃을 만났을 때 민망해도 사과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그만 그 타이밍을 놓쳤으니 이제 오이 2개의 사과는 오이 20개쯤의 사과로 어려워져 버렸다는 말을 나누며 우리는 남은 커피를 마셨다.
감사와 사과는 빠른 것이 좋다고들 한다. 그뿐 아니라 모든 것엔 때가 있는 법이다. 적절한 타이밍을 찾고, 그때를 아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고, 설령 그때를 알더라도 실행에 옮기는 일 역시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