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도 원피스

by 전명원

‘모라도’의 보라색 모직 원피스를 생각했다. 그 당시는 의류 브랜드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긴 했지만, 엄마는 특히 ‘모라도’의 옷을, 그중에서도 보라색 그 원피스를 좋아했다. 어린 내 눈에도 그 옷은 유난히 멋져 보였다. 목선은 라운드나 깃이 있는 평범한 모양새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름이 들어가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단색이었다면 자칫 촌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짙은 보라색 바탕에 잔잔한 체크무늬가 들어간 원단은 매끄럽고 고급스러웠다. 소매 역시 단추로 마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걷어 올릴 수도 있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허리엔 가느다란 가죽 벨트가 달려 있었다. 뱃살이 나왔다며 엄마는 늘 그 벨트를 느슨하게 맸다.

처음 살 때부터 그 원피스를 너무나 맘에 들어 했던 엄마는 아주 오래 그 옷을 입었다. 살이 쪄서 더 이상 그 원피스를 입을 수 없게 된 이후에도 버리지 못하고 옷장에 간직했다. 결국 그 옷을 정리한 건 생의 마지막 집으로 이사하며 오래 쓴, 혹은 더 이상 쓰지 않는 많은 것들을 버릴 때였다.


엄마는 장신구에도, 옷에도 자주 돈을 쓰는 일이 없었고, 무엇이든 한번 사면 오래 쓰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매번 신중하고 꼼꼼하게 물건을 골랐다.

집으로 서울 롯데백화점의 두툼한 카탈로그가 배송되어 오면, 엄마는 사고 싶은 것들을 오래 보고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놓곤 했다. 지금과 달리 서울이 멀던 시절이라 맘먹고 나서야 하는 길이었다. 엄마는 접어놓은 페이지에 있던 많은 것들에 마음을 두었더라도 비싸서, 멀어서, 혹은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이런저런 많은 핑계로 아마 밀어두며 살았을 것이다.


엄마가 젊고, 내가 어렸던 시절엔 지금은 쇠락해 버린 수원 남문이 최고의 번화가이며 핫플이고, 쇼핑의 메카였다. 나는 어른들을 따라다니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내가 따라간다고 칭얼댔던 것인지, 아니면 어른들이 흔쾌히 나를 데려가 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남문시장의 엄마 단골집들을 여럿 알고 있었다. 구름 같은 이불들을 펼쳐 보여주며 누워보라고, 덮어보라고 하던 인심 좋은 할머니가 있던 이불 가게. 어두컴컴한 매장 안에 영어나 중국어로 된 온갖 양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쌓여있어도 척척 물건을 꺼내주던 아저씨가 하던 조미료 가게. 그리고 엄마가 다니던 옷 가게들도 있었다.

엄마가 옷을 사는 매장들의 분위기는 극과 극이었다. 집에서 입는 옷을 살 때면 좁은 통로를 따라 다닥다닥 옷 가게들이 붙어있는 매장들을 찾아갔다. 얼굴을 익힌 상인들은 엄마를 끌어당기며 새로 들어온 옷들에 관해 설명했는데 그때 엄마의 표정은 무심했다. 설명도 대충 듣는 것 같았고, 심지어 주인이 권하는 것이 더 예뻐 보이는데도 다른 것을 묻기도 했다. 물론 막상 나올 때는 처음 주인이 권하는 것을 가지고 나올 때가 많았는데 엄마는 그 이유를 ‘너무 맘에 들어하는 티를 내면 값을 깎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도 엄마는 물건값 깎는 데는 도사였으므로 상인들은 매번 엄마에게 말했다. “여기서 뭘 더 깎아! 그렇게는 못 팔아!”

하지만 ‘모라도’로 먼저 기억되는 엄마의 외출복 매장에 가면 달랐다. 매장에 들어가면 ‘관사 사모님’ 오셨냐며 반색을 했는데 어쩐지 엄마는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보다 말수가 적어지고, 목소리가 낮아졌다. 시장에선 물건값을 흥정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면 ‘저러다 주인아줌마가 화내는 거 아닐까?’ 싶어 어린 마음에 조마조마했지만, 모라도에선 다른 엄마가 되었다. 엄마는 오래, 아주 신중하게 옷을 고르고 입어봤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보며 옷매무새를 확인하던 엄마를 떠올린다.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다는 걸 생각하면 어쩐지 아득한 마음이 된다.


그런데 엄마의 목소리가 달라지던 그 매장들을 내가 남달리 기억하는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다. 그건 바로 ‘할부 장부’다. 신용카드라는 것이 없던 시절에 다소 비싼 물건을 파는 가게에선 할부로 물건값을 받았다. 관사에 함께 살았던 대부분의 엄마들은 남문 시내의 몇몇 옷 가게나 피아노, 가구점 등에서 물건을 사고 할부 장부에 이름을 적어두었다. 달리 신용을 증명할 수단이 없던 그 시절에 ‘공군 관사 사모님들’은 이른바 먹튀가 불가능했을 테니 신용등급이 보장되는 손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할부 장부에 적힌 이름이었다. 엄마는 모든 할부 장부마다 내 이름을 적었다. 아빠도, 엄마도 아닌, 심지어 장녀도 아닌 내 이름 말이다. 나중에 커서 그 장부 이야기를 하며 엄마와 웃었던 일이 있다. 좋은데 쓰는 것도 아니고, 기껏 외상장부에는 왜 내 이름을 적었느냐고 볼멘소리를 했을 때 엄마가 말했다.

“이상하지. 외상장부에 아빠 이름 적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큰애 이름 적기도 그렇고, 또 막둥이 이름 적기도 그러니 그냥 매번 둘째 이름을 적는 게 습관이 됐지 뭐야.”

‘보라색’에 관한 글을 써야 했지만, 막상 보라색과의 접점이 없어 고민하던 아침이었다. 그런데 외출을 하기위해 옷을 입고 거울을 보다가 문득 엄마의 그 보라색 모라도 원피스가 떠올랐다. 어린 눈에도 멋져 보이던 원피스. 유난히 그 옷을 좋아했던 엄마. 오래전 모라도의 할부 장부에 내 이름을 적어넣던 엄마를 상상했다.

그랬다. 보라색과 나의 접점엔 ‘엄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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