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해가던 예산시장을 되살린건 요리사업가로 유명한 백종원씨의 유명세가 한몫했다. 물론 고향인 예산의 시장을 살려보겠다고 나선 그의 기획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갑자기 예산시장이 유명해지면서 사방에서 소식이 들리니 나 역시도 궁금해서 찾아갔을 때, 예산시장은 마치 놀이공원처럼 줄을 선 인파로 넘쳐났다.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좀더 지나야겠구나 싶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미국에 사는 언니가 왔다. 멀고도 먼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이른바 해외교포지만 요즘 한국에서 유명한 것은 거의 실시간으로 그곳에 전해진다. 당연히 언니도 예산시장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결국 언니와 함께 대전현충원의 가족을 만나고 오는 길에 다시 예산을 향했다.
대형마트며 백화점이 드물던 시절엔 시장이 있었다. 이제 시장은 ‘전통시장’으로 불린다. 예전의 ‘시장’이 생활이었다면, 이제 ‘전통시장’은 관광의 영역이다.
언니와 함께 예산시장을 돌아보고, 얼마 전 남편과 왔을 때 사지 못한 사과로 만들었다는 약과를 이번엔 살 수 있으려나 싶어 찾았는데 역시 오늘도 매진이었다. 아쉬운 맘에 가게 앞에서 잠시 서성이고 있을때였다. 우리처럼 약과를 사지 못한 어떤 분을 만났다. 예순 언저리로 보이는 그녀는 “먼 곳에서 왔는데 아쉽다”고 했다. 언니는 “나보다 먼 곳에서 오셨겠느냐” 며 웃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셋은 모두 여러번 놀랐다.
그녀는 언니가 살고있는 미국의 바로 옆동네 사람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머무는 곳은 우리 옆 동네인 광교라고 했다. 그녀는 광교의 언니 집에, 나의 언니는 동생인 내 집에 머무는 우연을 신기해했다. 그뿐 아니라 그녀도 예산의 부모님 산소를 찾은 길이었고, 우리도 대전의 부모님 묘소를 찾은 길이었으니 그 또한 놀라웠다. 우리 셋은 계속 “어머, 어머!” 소리를 반복하며 손뼉을 쳤다. 그런데 놀라움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언제 돌아가요?” “내달 13일이요.”
“뭐 타고 가요?” “대한항공이요.”
그렇다. 이쯤 되니 마치 짜 맞춘 것 같았지만 그녀와 언니는 귀국항공편마저 같았다.
이제 다 놀랐을까 싶었을 때 그녀는 한 번 더 우리를 놀라게 했다. 대화가 끝나고 서로 반가운 마음에 언니와 그녀가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지나가듯 나이를 물었을 때였다. 그녀가 일흔두살이라는 소리에 언니와 나는 거의 경악 수준으로 놀랐다. 그녀는 아무리 봐도 60세쯤으로밖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인상의 얼굴도 아니고, 세련되게 꾸민 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화장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곧은 몸과 활기찬 몸짓을 하는 사람이었다. 표정도 밝고, 적극적이었다. 타국에서 오래 살아온 그녀는 수원에서부터 예산의 부모님 묘소까지 너댓번의 대중교통을 갈아타고 오가는 것도 겁내지 않았다.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를 나누는 내내 한 번도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나이 들고 보니까….’ 따위의 말도 없었다.
연락처에 이름을 무엇으로 저장할까요, 라고 언니가 물었을 때 그녀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미세스 리, 라고 저장해주세요.”
미세스 리와 헤어져 돌아오며 학생 시절 백 미터 달리기를 할 때 체육 선생님이 늘 하시던 말씀을 떠올렸다.
“결승선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너머까지 전력으로 달려라.”
결승선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거기까지’라는 생각에 속도 유지가 쉽지 않은 법이니 보이는 결승선을 생각하지 말고, 그 너머까지 그대로 달려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종종 사는 일을 달리기에 비교한다. 인생이 백 미터 단거리 경주는 아니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결승선을 생각하며 스스로 한계를 두게 된다. 미세스리를 만나기 전까지 언니와 차 안에서 나눴던 대화도 ‘나이’에 관한 것이었다.
칠십이 넘으면 다들 하루가 다르다고 하더라. 세월은 빠르기만 한데 나이 드는 일도 금방이다. 사람은 칠십 세까지가 자기 기운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한계 아닐까.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일흔두 살의 나이에도 배낭 하나를 메고 저렇게 활기차게 다니는 예산시장의 미세스리를 만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나이는 어차피 계속 먹는 것이다. 우리가 굳이 어느 나이를 기점으로 인생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 필요는 없다. 나이를 생각하며 의기소침해질 일이 아닌 것이다.
생각할수록 '예산시장 미세스리'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신기하게 다가온 연결고리뿐 아니라 나이 먹는 일과 나이 앞에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예산으로 오는 길에 언니와 나누었던 말들을 다시 떠올렸다. 마치 누군가 ‘너희들의 그런 생각은 틀렸어’라고 알려주기 위해 그녀를 만나게 한 것만 같았다.
세상은 넓다지만 동시에 이리도 좁다. 그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이처럼 우연을 가장한 가르침을 얻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활기차던 예산시장의 미세스리를 생각하곤 한다. ‘결승선이 없는 듯 달려야 한다’라는 말이 어떤것인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