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판은 24만 킬로미터를 훌쩍 넘겼다. 2009년식 기아 쏘울, 오래된 나의 자동차 이야기다. 처음 차를 살 때는 이렇게까지 오래 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주행거리가 20만 킬로에 가까워질 무렵엔 몇 번 신차를 계약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차례가 오면 매번 차를 바꾸지 못했다. 아직 잘 구르니까. 잔고장 하나 없으니까. 꼭 새 차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런 마음속 생각들이 튀어나와 매번 계약을 취소했다.
2년마다 한 번씩 자동차들은 종합검사를 받는다. 올해는 오래된 나의 차가 종합검사를 받아야 하는 해이다. 처음 새 차를 바꾸고 몇 번은 직접 자동차검사소에 가서 검사를 받았었다. 그러다 언제인가부터 다니는 정비공장에 검사를 위탁했다. 이번에도 위탁해야지, 마음을 먹었던 건 해오던 습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연식이 오래되어 불안하기도 해서였다.
계기판은 이미 24만을 훌쩍 넘겼다. 에어컨 성능도 떨어지고, 엔진음도 확실히 시끄러워졌다. 이런 것쯤이야 오래된 차니 당연하다고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혹시라도 내가 몰랐던 이상이 있어서 불합격 판정을 받거나, 여러 군데 정비를 해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불안한 마음에 이번이야말로 검사대행을 맡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다니던 정비공장에선 더 이상 자동차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검사소에 예약을 하고 가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럼 하는 수 없지. 네이버 예약 메뉴를 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엔 2개의 자동차검사소가 있고, 가까운 동탄까지 포함하면 총 3개의 자동차검사소를 이용할 수 있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 예전에 이용해 본 적도 있는 한국교통안전공단 수원 자동차검사소를 예약했다. 수원에 비해 동탄 검사소가 좀 더 여유 있는 듯해서 며칠 망설이던 와중에 마침 수원검사소에 맞는 시간대가 있었다. 누군가 취소한 모양이다.
오전 11시. 예약한 시간에 수원검사소에 도착했다. 바닥에 화살표로 표시해 두어 동선이 한눈에 보인다. 앞차를 따라 줄을 서고, 차례가 되어 직원에게 차를 넘겨주었다. 고객 대기실로 향하는 동선 역시 바닥에 안내선이 선명하다. 헷갈리지도 않을뿐더러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어 좋았다. 고객 대기실에선 생수도 무료 제공하고, 시원한 공간에서 전광판을 보고 있으면 내 차가 지금 어떤 검사를 받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내 차 번호와 함께 ‘00 검사 중’이라는 문구가 떠있는 전광판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문득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렇다. 마치 병원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도 자동차처럼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는다. 딱히 어디 아픈 곳이 있는 건 아니어도 괜히 두근댄다. 지금 내 자동차도 그러려나. 자동차와 운전자의 관계는 단순히 자동차와 차주의 관계를 넘어서 어떤 운명공동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 차를 오래 타면 그 차는 그저 쇳덩어리 기계가 아닌, 어떤 유기물처럼 다가와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치 내가 건강검진을 받는 것처럼 긴장됐다.
검사가 끝나고 나면 판정실로 오라는 문구가 뜬다. 나의 오래된 자동차는 다행히도 뒤 번호판의 라이트 하나가 나갔을 뿐 모두 정상이었다. 수원검사소 안엔 간단한 정비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곳에서 바로 전구를 갈았다. 직원이 내 차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 정도 연식과 주행거리인데 상태가 너무나도 좋아요. 이런 차는 무조건 탈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타서야 돈 버시는 겁니다. ”
그 말에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마치 내가 칭찬받은 것 같은 마음이었달까.
오래전에 키운 반려견은 열아홉 살까지 살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가끔 밖에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나이를 묻고는 다들 깜짝 놀랐다. 이렇게 아기같이 생겼는데 열아홉 살이라니요. 열아홉 살이나 된 강아지인데 참 건강하군요.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으쓱하고 뿌듯했었다.
나의 오래된 자동차를 몰고 돌아오며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래되고, 나이 먹은 것들이 이처럼 자랑스러워지는 일에 대해서. 또한 그렇게 나이 먹는 일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