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떠났다. 흰색 바탕의 아랫부분에는 검은색 가로줄 무늬가 있고, 뒤에는 ‘낙천사’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할머니는 우리처럼 앞문이 아닌 뒷문을 통해 버스에 올랐다. 아니, 실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해 겨울은 무척 추웠다고,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어른들은 말했다. 유난히도 추웠다던 그 겨울, 12월의 끝자락에 할머니는 갑작스레 숨을 놓았다. 나에겐 사람이 죽는다는 것과,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펼쳐지는 풍경이 어떠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겨울이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장례 과정에서 어렸던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갑자기 할머니가 쓰러지고, 그 당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관사로 군의관이 달려오고, 아빠가 눈물을 훔치며 “다시 한번 보라”고 말하던 일. 나는 할머니에게 덮어줄 이불 홑청을 뜯으며 훌쩍거렸는데 옆에서 운전병 아저씨가 달래주었던 일. 그리고 다음날 꽁꽁 얼어붙은 관사 앞마당에 놓여있던 검은색 관.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저렇게 좁으면 뚱뚱한 우리 할머니가 못 들어갈 텐데 어쩌지….’하는 걱정에 밤새 사로잡혀있었다. 상청이 차려진 집안과 군용 천막이 설치된 마당엔 밤늦도록 사람들이 북적였고, 어른들은 모두 바삐 움직였다.
할머니는 먼저 돌아가신 할아버지 산소에 합장한다고 했다. 그곳이라면 어린 내게도 낯설지 않았다. 할머니 손을 잡고 할아버지 산소를 종종 찾았었다. 수원에서 발안까지, 그리고 발안에서 다시 산소가 있는 수촌리까지 가기 위해선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탔고, 지금과 달리 비포장도로이던 그 시절 덜컹대는 버스 안에서 매번 멀미를 심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을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나는 매번 따라나섰다. 산소 건너 마을로 할머니와 들어가면 동네 분들은 매번 개다리소반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도시애기가 먹을 것이 없어서 어쩌냐”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것도 좋았고, 마당한쪽의 축사에 매어둔 소들을 구경하며 마른풀을 입에 넣어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낙천사 버스에 올랐다. 관이 너무 좁아 소란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 싶던 걱정과는 달리 할머니가 누운 관이 아무 일 없이 버스 뒷부분에 실리는 것을 보며 그제야 어린 나는 안도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낙천사 버스를 함께 타고 장지로 향했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기하게도 할머니 장례의 기억은 그 버스 안의 풍경에서 딱 멈춰있기 때문이다.
일반 시내버스와 달리 뒷부분엔 창가 쪽 1열에만 좌석이 있고, 가운데 부분이 네모의 형태로 불쑥 올라와 있는 걸 보며 거기 누워있을 할머니를 생각했던 그 순간 이후로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장지까지 가는 비포장도로에서 나는 매번 멀미를 했었으니 그 낙천사 버스를 타고서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장지의 소란함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어린아이들에게 굳이 하관하는 것까지 보여주지 않으려 장지 가까이 데려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버스에 타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는 아예 장지로 가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가끔 궁금하지만 이제 세월은 많이 지났고, 그날의 이야기를 해줄 어른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할머니가 낙천사 버스를 타고 떠난 그날 이후 수십 년이 지났다. 이제 ‘장의사’라는 말은 생소해지고 ‘상조’가 더 익숙하다. 장의 버스 대신 검고 긴 리무진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일도 흔해졌다. 낙천사는 그저 기억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죽음에 관한 나의 이미지는 ‘낙천사 버스’가 제일 먼저였다.
할머니가 마지막 여행길에 타고 갔던 낙천사 버스의 한자는 ‘樂天’이었다. 그 어떤 즐거움이 하늘에 있다고 한들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검은 띠를 두른 그 흰색 버스를 길에서 어쩌다 만날 수 있던 시절, 그때마다 친구들은 “에이, 재수 없어” 라거나 “아, 무서워.” 했는데 나는 매번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낙천사 버스가 지나가는 뒤꽁무니를 보며 그곳에 누워서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을 알지 못하는 이를 잠깐 생각했다.
그 버릇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어서 나는 길에서 장의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잠깐 그 누군가의 영혼이 평안함에 이르기를 기도하곤 한다.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므로, 나는 그가 선하게 한평생을 살아왔는지, 악업을 쌓으며 살았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여행길이 편안하기를 기도한다. 삶에서 남은 계산은 도착한 그곳에서 마저 끝낼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목적지로 향하는 그의 마지막 여행이 편안했으면 하는 것뿐.